서울고등법원.
서울고등법원.

[팜뉴스=김민건 기자] 약국을 운영한다는 얘기에 돈을 빌려줬지만 약정서를 작성하지 않아 원금을 돌려받지 못하는 약사 간 분쟁 사례가 확인됐다. 돈을 빌려준 약사와 도움을 받아 약국을 운영한 사람이 별도인 경우여도 실질적 하나의 '조합(동업 관계)'으로 봐야 하며, 폐업 후 잔여 재산은 별도 특약이 없는 이상 '각 조합원 출자 가액에 비례해 분배해야 한다'는 법원 판단이다.

11일 팜뉴스 취재 결과 지난 2월 서울고등법원은 A약사와 B약사의 '약국 동업 사건'에서 1심 판결을 취소하고 피고가 원고에게 5억원 상당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당초 A약사는 1심에서 B약사에게 빌려준 10억원을 빌려준 '대여금'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1심에서 주의적 청구 등 기각으로 패소했고 항소심에서 예비적 청구를 '동업계약 종료에 따른 잔여 재산 분배 청구'로 변경함으로써 승소할 수 있었다.

평소 친하게 지내던 A약사와 B약사는 왜 법정에서 만나게 됐을까. 막대한 금액을 빌려줄 정도로 신뢰(?)하는 사이였지만 돈 앞에 갈라서게 된 두 약사의 복잡한 이야기를 보도한다.

▶"약국 임대차보증금 좀 빌려달라"

판결문에 따르면 사건은 지난 2018년 8월 B약사가 "약국 임대차 계약을 맺어야 한다"며 A약사에게 보증금 등 명목으로 10억원 가량을 빌리면서 시작했다. 당시 A약사는 기존 약국 임대차 계약 문제로 새로운 장소를 찾고 있었기에 B약사의 제안을 받고 공동 경영할 생각을 가지게 됐다.

약국 운영은 B약사가 하기로 했으며 A약사는 빌려준 10억 원에 대한 이익만 받기로 하고 경영에는 일체 관여하지 않았다. A약사는 B약사에게 약 10억원(연이율 6%)을 빌려주었고 B약사도 인테리어 비용 1억원 가량과 3억원을 대출받아 약국 운영에 사용했다. A약사는 기존 운영하던 약국에서 B약사에게 의약품 납품도 발주했다.

그러나 약국 간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운영에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었고, 결국 폐업 논의를 하면서 갈등이 일어나게 됐다. A약사는 수익이나 이자를 전혀 받지 못한 상황에서 10억 원을 돌려달라고 했지만 B약사는 약국 운영을 위해 준 돈이라며 거절했다. 

결국 A약사는 B약사를 상대로 민사소송을 제기했고 1심에서 주의적 청구로 '약국 운영을 위해 10억 원을 대여해준 것, 의약품·물품 대금 반환'을 주장하고 예비적 청구로 '10억 원에 대한 부당이득금 반환'을 요구했다. 그러나 1심 재판부는 "대여금이나 부당이득금으로 볼 증거가 부족하다"며 청구를 기각했다.

항소를 결정한 A약사는 예비적 청구를 변경해 '동업 약정에 의한 동업 관계(조합 관계) 종료로 정산 청구'를 주장했다. 반면 B약사는 동업계약서나 손익분배 약정이 존재하지 않아 동업약정이 있었다고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A약사는 재판에서 "약국을 공동 경영하기로 사실상 동업약정을 하여 조합관계에 있었다"며 "폐업에 따른 잔여 재산 분배를 청구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잔여 재산가액 중 자신의 지분에 해당하는 9억5700만원에서 이미 받은 5억600만원을 제외한 4억5090만원과 지연손해금을 지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B약사는 재판에서 "A약사 명의를 빌려 임대차 보증금 등을 출연, 실질적으로 자신이 운영하는 약국을 개설한 것에 불과하며 대여금 또는 물품 구입 약정을 체결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이어 "동업 계약서, 손익 분배 약정이 없어 약정이 있었다고 볼 수 없다"며 "설령 동업 약정을 했다고 해도 잔여 재산가액은 50대 50으로 나눠야 한다"고 했다.

문제는 A약사가 B약사에게 돈을 빌려줄 때 차용증 등 증거가 될 만한 계약서를 작성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법원은 어떻게 판결했을까. 첫 번째 쟁점은 '조합(동업) 관계'로 볼 수 있느냐다. 민법 제703조(조합의 의의)를 보면 '조합은 2인 이상이 상호 출자해 공동사업을 경영할 것을 약정함으로써 효력이 생기며, 앞서 출자는 금전 기타 재산 또는 노무로 할 수 있다'고 돼 있다.

법원은 A약사는 의약품 현물 출자, B약사는 노무 출자 형태로 경영에 참여했다고 보고, A약사가 주장한 주의적 청구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다만 예비적 청구(동업 관계 종료에 의한 정산)는 인정하며 민법상 일종의 조합(동업) 관계로 봤다.  

그 이유에 대해 법원은 "B약사 명의 계좌를 통해 약국 수입과 지출이 모두 관리됐고 폐업 당시 잔여 재산 분배 비율을 초과해 보유한 부분이 있어 A약사가 분배 청구를 할 수 있다"고 밝혔다.

▶10억원 빌려줬지만 실질적 이득 없이 손해 본 A약사

A약사가 빌려준 돈은 약국 임대차 보증금 등 10억2000만원이다. B약사가 약국을 운영하는 과정에서 손실액은 6억9000만원에 달했다.  B약사는 약국 운영을 위해 대출받은 3억원에서 인테리어 총 비용 20%에 해당하는 2354만원과 의약품 자동조제기(JVM) 5440만원을 뺀 2억2206만원이 정산 대상으로 인정됐다.

최종적으로 폐업 당시 약국의 잔여 재산은 임대차보증금, 카드포인트 적립액, B약사 출자 잔존 금액, 약품포장기 금액, 약국 손실 등을 모두 포함해 12억1278만원이 됐다. B약사는 인테리어 철거비, 컴퓨터, 에어컨, JVM 값 등을 A약사에게 줄 정산금에서 제외해야 한다고 했지만 법원은 인정하지 않았다. 

A약사와 B약사는 조합 관계로 인정받았기에 출자 금액에 따라 잔여 재산 분배 비율이 75대 24로 정해졌고, 법원은 A약사가 받아야 할 금액 9억1989만원 중 이미 받은 것으로 인정된 5억695만원을 뺀 4억1293만원과 지연손해금을 B약사가 지급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법원은 "당사자 간 손익 분배를 전제로 공동사업 경영을 약정했다면 민법상 일종의 조합(동업) 관계라 할 것"이라며 "조합 관계가 종료된 경우 별도 약정이 없는 이상 청산 절차를 밟아야 하나, 잔여 재산 분배만 남았을 때는 따로 청산 절차 필요가 없고, 잔여 재산은 별도 특약이 없는 이상 각 조합원 출자 가액에 비례해 분배한다"고 판단했다.

▶A약사, 이중약국 개설 혐의 받았지만 무죄

B약사는 A약사를 약사법 위반에 따른 이중약국 개설 혐의로 고소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잔여 재산 분배를 청구하는 것은 불법원인급여(민법 제746조)의 반환 청구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A약사는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그 이유는 A약사가 B약사 면허를 대여받아 조제, 판매 등 약국 운영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히려 B약사가 실제 근무하면서 운영하였고 수입과 지출 모두 본인 계좌로 관리한 점, 직접 폐업 신고를 한 점 등이 인정됐다.

A약사를 대리한 법무법인 규원의 우종식 변호사는 "동업의 경우 계약서를 쓰지 않는다면 분쟁이 발생하더라도 해결하는데 시간과 노력이 많이 필요하다"며 "하지만 이 사건과 같이 계약서를 쓰지 않아서 반환을 거부하더라도 폐업 시 자산을 청산하고 배분하는 것은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우 변호사는 "이에 더해 약국 개설을 위한 금전 대여 자체는 문제없으나 대여금이든 투자금이든 금원 성격을 입증하기 위한 해당 약정서 등을 작성하시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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