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팜뉴스=최선재 기자] "리딩(Reading)해야 리딩(Leading)한다"는 말이 있다. 조직을 이끄는 리더가 엄청난 양의 텍스트를 읽어내야 한다는 뜻이다.

직원들이 올리는 보고서 뿐만 아니라 매순간 직무 관련 책과 최신 뉴스를 탐독해야 조직을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 수 있다. 

'리딩(Reading)하는 리더'가 중요한 이유다. 공부하는 리더의 지시는 구체적이고 세밀하다. 다가올 미래를 예측하고 있기 때문이다. 치열하게 리딩(Reading)하는 리더를 향해 직원들이 존경과 찬사를 보내는 배경이다. 

그런 의미에서, 노연홍 한국제약바이오협회 회장은 언제나 리딩(Reading)에 골몰한다. 새벽부터 신문기사를 달달 읽고, 서점에서 읽고 싶은 책을 수시로 고른다. 제약·바이오 업계의 최신 동향을 빠짐없이 챙기기 위해서다.  

글자와 활자를 집요하게 파고드는 습관 덕에, 미래 기술에도 남다른 식견을 갖췄다. 한국제약바이오협회가 최근 AI 신약 개발 생태계를 만들기 위해 AI신약융합연구원 조직을 확대하고 K-멜로디 프로젝트를 주도하는 것도 노 회장의 리딩(Reading) 루틴과 무관치 않다. 

그렇다면 한국제약바이오협회에 AI 광풍이 확산된 근본적인 이유는 뭘까. AI 신약개발에 대한 노 회장의 소신과 철학은 어떤 것이 있을까. 약사신문(팜뉴스)이 지난 6일, 서울 서초구 방배동에 있는 제약 회관에서 노 회장을 고견을 듣고, 창간 특집 기획으로 전한다.

최선재 기자(우) 노연홍 한국제약바이오협회 회장과 인터뷰하는 모습(협회 제공)
최선재 기자(우) 노연홍 한국제약바이오협회 회장과 인터뷰하는 모습(협회 제공)

오전 11시경, 인터뷰가 시작됐을 때 노연홍 회장은 '특이점이 온다(레이 커즈와일)'라는 책을 언급했다. 

그는 "오래 전부터 AI를 굉장히 관심있게 지켜봤다"며 "몇 년 전에도 '특이점이 온다'는 책을 봤다. 책에는 '인공지능과 인간의 뇌가 연결되기 시작할 때 지식의 양이 폭발적이고 기하급수적(exponential)으로 팽창해서 더 이상 팽창할 수 없는 단계로 간다'고 언급한 대목이 나온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곡선이 이렇게 올라가기 때문에 지식이 더 이상 팽창하지 않는 극지점에 도달한다는 얘기"라며 "그것이 바로 특이점이고 2045년에 특이점이 온다고 해서 당시 많은 사람들이 황당해했다. 저도 시점이 너무 빠르다고 생각했지만 요즘 일어나는 변화를 보면 더욱 일찍 올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레이 커즈와일은 세계적인 미래학자다. '특이점이 온다'에는 인간을 초월한 인공지능이 광속을 뛰어넘어 지능을 우주로 전파하는 세상이 온다는 내용이 등장한다. 

책의 발간 시점은 2007년, 그때는 알파고와 이세돌이 바둑을 두고 맞붙어 전 세계에 충격을 줬던 2013년의 약 6년 전이다. 무려 17년 전, 노 회장의 시선이 AI를 향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노 회장이 특이점이 일찍 도래할 수 있다고 강조한 이유는 뭘까.

그는 "최근 AI와 관련된 굵직한 사건들이 있었다"며 "구글 딥마인드와 스탠포드 연구원들이 개발한 로봇팔이 그렇다. 지난 1월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가전박람회(CES) 주제가 인공지능이었는데 구글 딥마인드가 같은 시간대에 로봇팔을 촬영한 영상을 공개했다"고 밝혔다.

이어 "전 세계인들의 시선이 CES보다 로봇팔로 쏠린 계기"라며 "영상 속에서는 AI로 학습시킨 로봇팔 두 개가 병을 따고 커튼을 걷고 계란 프라이를 했다. 심지어 계란 프라이에 케찹도 뿌리고, 접시를 건조기에 넣었다. 접시가 건조되면 선반에 집어넣고 옷도 세탁기에 집어넣고 작동시켰다. 건조가 끝나면 옷을 개서 옷장에 집어넣을 정도"라고 강조했다. 

당시 로봇팔 영상을 목격한 순간, 노 회장은 "정말 망치로 머리를 맞은 것 같은" 충격을 느꼈다고 한다. 그는 "그때 AI를 가장 예민하게 작용할 수 있는 분야가 바로 제약산업이라는 확신이 들었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이어 "AI는 결국 제약 산업에 굉장히 큰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며 "이런 변화를 강 건너 불 보듯이 여겨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우리 AI 기술은 전 세계에서 6위다. 미국이나 중국이 뛰어나지만 우리 기술도 뛰어난 수준"이라며 "AI를 제대로 활용할 수 있다면 우리 제약산업의 신약 개발 속도를 굉장히 빠르게 끌어올릴 가능성이 있다"고 언급했다.

노 회장은 "회원사들에게 그런 것들을 지원하려면 우리 협회부터 바뀌어야겠다고 생각했다. AI신약개발지원센터를 AI신약융합연구원으로 격상한 이유도 이와 무관치 않다"고 덧붙였다.

노연홍 한국제약바이오협회 회장과 인터뷰하는 모습(협회 제공)
노연홍 한국제약바이오협회 회장과 인터뷰하는 모습(협회 제공)

실제로 한국제약바이오협회는 지난 1월 기존의 AI신약개발지원센터를 AI신약융합연구원으로 확대 개편했다. 초대 원장으로 김화종 강원대 교수를 임명했다.

노 회장은 "모양만 갖추기 위해 격상한 것은 아니다"라며 "모양이 갖춰져야 그 모양에 따라서 담기는 내용이 달라질 수 있다. 사고가 행태를 결정짓기 때문에, 조직을 바꾸면 사고가 바뀌고 사고가 바뀌면 행동이 바뀔 수 있다. 큰 규모는 아니지만 조직과 인사를 AI 중심으로 끌고 나가야겠다는 나름의 결단"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회가 제약사 한 곳 한 곳을 리딩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며 "하지만 우리가 산업계와 회원사들을 돕는 방법은 여러 가지다. 특히 미래 기술과 관련된 세상의 트랜드를 선제적으로 파악해서 방향성을 제시하고 기업들이 전열을 가다듬어 나갈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은 협회의 역할"이라고 덧붙였다.

이뿐만이 아니다. 지난 12일 업계에 낭보가 날아들었다.

한국제약바이오협회가 수년간 집중해온 ‘연합학습 기반 신약개발 가속화 프로젝트(K-멜로디)’가 첫 출발을 알린 것이다. 복지부와 과기부는 김화종 한국제약바이오협회 AI신약융합연구원장을 K-멜로디 신임 사업단장으로 선임했다. AI신약융합연구원을 주축으로, 협회는 오는 4월부터 세부 과제 기획, 공모·선정 등 본격적으로 추진할 예정이다. 

K-멜로디 프로젝트는 유럽의 AI(인공지능) 신약 개발 연합체 '멜로디'(MELLODDY)'를 벤치마킹한 사업이다. 멜로디는 2019년부터 3년간 암젠, 바이엘, GKS 등 글로벌 빅파마와 유럽의 주요 대학, 바이오스타트업이 3년간 공동 참여한 프로젝트다. 

노 회장은 "K-멜로디 사업이 다루는 연구 주제는 ADMET다"며 "약물 동태 분야로 이는 신약개발 R&D 비용의 22%를 차지한다. 신약 허가를 위한 임상 시험의 성공 확률을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약물 동태 실험은 신약개발 과정에서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과정으로, In-Vitro, In-Vivo, In-Human(임상 1상)에서 모두 실험이 진행된다"며 "AI 활용을 위해서는 데이터가 중요한데 이같은 실험 데이터는 제약기업, 연구소, 병원, 규제 기관, CRO, 대학 등 다양한 기관에 분산된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이어 "하지만 데이터 소유권, 유출 시 책임 소재, 정보 보호법 등의 문제로 그동안 데이터 간의 통합이 어려웠다"며 "하지만 K-멜로디 사업의 목표는 이런 문제를 해결하고, 데이터를 AI 학습에 활용할 수 있는 연합학습 기반 플랫폼을 개발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K-멜로디 사업의 목표는 연합학습 기반의 ADMET AI 예측 모델을 개발하는 것이다. 즉, In-Vitro 실험값으로 In-Human 실험값을 가깝게 예측하는 중개연구가 가능하도록, AI 신약 개발 플랫폼을 만드는 것이 핵심이다.  

노 회장은 "AI 기술이 약물 발견 단계의 신약 개발 과정을 효율화하는 가장 중요한 부분이며 단일 실험값만 성공적으로 예측해도 국내 AI 신약개발에 큰 성과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노연홍 한국제약바이오협회 회장과 인터뷰하는 모습(협회 제공)
노연홍 한국제약바이오협회 회장과 인터뷰하는 모습(협회 제공)

더욱 주목할만한 사실은 K-멜로디 사업이 ‘연합학습(Federated Learning)’ 기반이라는 점이다. 

각 회사들이 보유한 데이터를 중앙서버에 직접 공유하지 않고 AI를 통해 '연합학습'을 거친 뒤 다시 각 기업에 뿌리는 방법이다. 데이터 유출, 지적 재산권 문제를 회피할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다. 

노 회장은 "K-멜로디 사업은 협회가 기업들이 함께 플레이어로서 협동작업을 수행하면서도, 데이터를 한 곳으로 모으지 않는다는 것이 핵심이다. 프로젝트 설계 자체가 지적 재산권 등의 문제를 회피하도록 설계됐다. 사업의 실질적인 과제가 진행되면서 점점 성과를 낸다면 AI 신약개발 생태계 조성을 위한 중요한 이정표가 만들어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렇다면 AI를 통한 신약 개발은 '선택'일까. '필수'일까.

약 1시간 가량의 인터뷰가 끝난 뒤 취재진이 던진 마지막 질문에 노 회장은 이렇게 답했다. 

"AI를 활용하면 신약 개발 시간과 비용과 대폭 줄어든다. 신약 개발을 꿈꾸는 제약사들이 하지 않아야 할 이유가 있을까. 선택의 문제가 아니고 신약 개발을 위해 반드시 가야 하는 필수 요건이란 뜻이다. 더구나 국내 업계는 부족한 자본력과 신약개발의 역사가 짧다. 글로벌 빅파마들과의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여러 데이터베이스를 활용한 인공지능의 도움이 절실하다.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고 있는 AI 기술을 산업계에 녹여 낼 수 있는 기업만이 살아남을 것이며, 이에 따라 기업의 옥석이 가려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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