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부가 허를 찔렸다." 

'빌베리 건조엑스' 1심 판결을 분석한 법조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상당수 변호사들은 '재량권 일탈 남용'의 숨은 의미를 주목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법원이 절차적 하자로 인한 처분 취소 판결이 아닌, '일탈 남용'이란을 판단을 했다는 이유에서다. 

법무법인 반우의 장덕규 변호사는 "절차적 위법성을 이유로 처분이 취소되면 절차를 다시 밟을 수 있다"며 "복지부가 제약사를 상대로, 청문 기회를 주지 않았다면 청문과 의견 청취의 기회를 다시 주면 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하지만 이번 판결은 재량권 일탈 남용을 지적한 것"이라며 "권위 있는 학회와 저명한 교수들이 빌베리건조엑스 성분을 매우 중요한 약제제로 반드시 의료 현장에서 써야 한다고 하는데, 합리적인 이유 없이 급여를 삭제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실제로 서울행정법원 1심 재판부는 "여러 사정들을 종합하면, 빌베리건조엑스의 임상적 유용성이 '불인정'된다고 단정 짓고, 비용효과성 및 사회적 요구도에 대한 별도의 검토 없이 요양급여 대상에서 제외한 처분은 사회통념상 현저하게 타당성을 잃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1) 임상적 평가요소, 2) 임상문헌 배제기준, 3) 임상적 유용성 평가, 4)비용효과성과 사회적 요구도, 5) 공익과 사익의 불균형이란 5가지 근거를 들며 복지부와 심평원의 주장들을 조목조목 반박했다. 

주목할만한 사실은 재판부가 빌베리건조엑스 급여 삭제 처분이 건보 재정절감이란 공익적 효과를 달성하기는커녕 오히려 '국민보건의 향상'이 저해될 가능성이 있다고 언급한 점이다. 

재판부는 "당뇨망막병증을 앓고 있는 환자들은 처분에 따라 비급여로 전환된 약제(빌베리건조엑스)를 복용하려면 기존 비용의 약 3배 이상을 지불해야 하거나 순환기용제인 대체약제를 처방받아야 하는데 대체약제의 효능에 관하여 아무런 자료가 없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한국망막학회의 의견을 재차 인용했다. 

판결문에 따르면, 한국망막학회는 서울행정법원에 "임상적으로는 혈류 개선을 위해 혈관순환제 일부가 망막 질환에 처방이 되고 있는 경우가 있지만 이는 초기에 병의 발생에 기여하는 산화 반응을 억제하여 돌이킬 수 없는 시력 손실을 가져오는 심각한 합병증 발생의 예방에 기여하는 타겐에프의 사용 목적과는 다른 것으로 생각된다"고 의견을 냈다. 

이에 대해 재판부는 "한국망막학회 의견을 고려할 때 국민건강보험법이 목적으로 삼는 ‘국민보건의 향상’이 저해될 가능성도 있다"며 "더구나 해당 처분을 통해 빌베리건조엑스의 요양급여 지위를 배제하더라도 건강보험 재정 절감에 미치는 효과가 크다고 보이지도 않는다"고 덧붙였다. 

심지어 재판부는 제약사들의 사익이 상당히 침해됐다고 결론을 내렸다. 재판부는 "피고(복지부)는 원고들이 제출한 임상문헌 외에 SCIE급 RCT이상 임상문헌 등 신뢰도 높은 근거자료를 준비할 기회를 부여하고, 이 사건 각 약제에 대해 조건부 급여결정을 하거나 상한금액을 인하하는 등의 대안을 충분히 제시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그런 조치 없이 곧바로 약제의 요양급여 지위를 박탈하였는데, 이로 인해 침해된 원고들의 사익이 상당히 크다"고 덧붙였다. 

빌베리건조엑스 급여 삭제 처분이 복지부가 외쳐온 '건보재정절감'이란 대의명분 없이 진행됐다는 뜻이다. 당뇨병 환자들의 치료 접근권과 제약사들의 처지를 전혀 고려하지 않은 일방적인 행정이라는 얘기다. 

익명을 요구한 변호사도 "복지부와 심평원은 재량권 일탈을 하지 않을 다른 수단도 함께 찾아야 할 것"이라며 "대법원 최종 결론을 지켜봐야 하겠지만 1심 재판부의 논리가 워낙 탄탄하기 때문에 마냥 무시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더구나 복지부의 약제급여 적정성 평가로 수많은 약제들이 급여 삭제됐고 각종 소송도 제기된 상황"이라며 "복지부가 향후 관련 소송에서 만반의 준비를 하지 않는다면 또 다시 일탈남용으로 패소할 수 있다. 이번 판결문의 의미를 곱씹어봐야 하는 이유"라고 강조했다.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이 시각 추천뉴스
랭킹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