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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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팜뉴스=최선재 기자] 2023 계묘년(癸卯年). 제약 업계에선 씁쓸한 사건들이 일어났다. 어느 제약사는 불미스러운 일로 공정위와 검찰에 이름을 오르내렸다. 또 다른 제약사는 품질 규정 위반을 반복적으로 저질러 급기야 GMP가 취소된 일도 겪었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동시다발적인 의약품 재평가로 업계는 곤혹을 치렀다. 수십년 동안 써오던 약들이 느닷없이 살생부 명단에 올랐다. 적응증이 삭제됐고 급여에서 퇴출됐다. 매출에 직격탄을 맞은 제약사들은 소송도 불사했다. 

팜뉴스는 이런 내용으로 아듀 기획을 채울 심산이었다. 부정적이고 자극적인 키워드가 난무할수록, 더욱 많이 읽히고 기억에 오래 남기 때문이다. 

하지만 취재진은 제약 업계에 일어났던 사건들을 천천히 곱씹어본 이후 생각이 바뀌었다. 업계에 고생한 사람들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신약, 제네릭 개발은 물론 영업, 생산 공장, 수출에서 인사,재무, 홍보 파트 등 모든 분야 의 관계자들이 고생을 했다. 성과를 내기 위해 수십통의 전화를 돌렸고 구둣발이 닳도록 전국 방방곡곡을 다니면서 파트너사와 정부를 설득했다. 

한 해가 저무는 지금, 팜뉴스가 업계를 향해 "한 해 동안, 참 고생 많으셨습니다"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은 이유다. 그런 의미에서, 본지는 기획으로, 2023년 동안 업계의 갈증을 해소한 '오아시스 5대 뉴스"를 정했다. 5가지 뉴스에 담긴 넘치는 샘물로, 새해에도 고군분투하기를 기원한다.

# 식약처 '닫힌' 소통의 벽, 균열이 생긴 계묘년

약 2년 전, 식약처는 부서별 전화번호를 비공개로 일관했다. 하지만 오유경 식약처장 이후, 식약처는 업계와 소통을 위한 실험을 시작했다. 지난 3월, 식약처 의약품심사부와 제약 업계가 '코러스(의약품심사 소통단)'를 출범한 것이다.

코러스는 식약처와 업계 관계자들이 수시로 모여 규제 개선을 위한 어젠다를 발굴하고 해결 방안을 모색하는 협의체다. 출범 당시 식약처는 각 분과 별로 총 150명을 소통단으로 선정했고 분고장과 간사는 식약처와 업계가 1명씩 맡았다. 

그로부터 약 9개월이 났다. 지난달 28일, 코러스는 꽤 의미 있는 성과물을 내놓았다. 유한양행 이병무 이사(분과장) 주축의 허가심사 지원 분과는 업계의 숙원인 표제기 적응증 확대에 대해 업계의 목소리를 대변했고, 식약처가 마련한 개정 고시안에 해당 내용이 담겼다.

대원제약 김주일 부사장이 포함된 코러스 전주기 관리 심사 분과도 다르지 않았다. 수개월 동안 업계의 애로사항을 모아 식약처에 전달한 결과,'CTD 제조방법 최초 반영 심사 방안'이 마련됐다. 식약처 심사와 업계 애로사항의 갭(차이)을 줄일 수 있는 전기가 마련된 것이다. 

무엇보다도 분과별 발표가 이어질 때마다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연출됐다. 업계를 대신한 분과 위원들은 수개월동안 식약처 관계자들과 동고동락하면서 상당한 친분을 쌓은 듯했다. 서로 사진을 찍을 때도 미소가 가득했다. 심지어 식약처 주무관들은 "모르는 부분이 있다면 저에게 무조건 연락해달라"고 자리에서 일어날 정도였다. 닫혀있던 식약처의 빗장이 활짝 열린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대웅제약-씨에스파마슈티컬스(CSP) 계약 체결 사진(왼쪽부터 전승호 대웅제약 대표, 다렌 멀서 CSP 대표)
대웅제약-씨에스파마슈티컬스(CSP) 계약 체결 사진(왼쪽부터 전승호 대웅제약 대표, 다렌 멀서 CSP 대표)

# 지형도 변했다! 대웅 '시작'하고 종근당 '끝'냈다

계묘년 벽두부터 대웅제약이 낭보를 전했다. 대웅은 지난 1월, 세계 최초 혁신 신약(First-in-class) 폐섬유증 치료 후보물질 ‘베르시포로신(Bersiporocin, DWN12088)’을 기술 수출했다. 계약 규모만 3억 3600만 달러(약 4천130억 원)에 달하는 빅딜이었다. 

2월에는 브라질 제약사 목샤8를 대상으로 당뇨 신약 엔블로를 8436만 달러(약 1천100억 원)에 체결했다. 비탈리바이오에 경구용 자가면역 치료 신약 후보물질 ‘DWP213388’의 글로벌 개발 및 상업화에 대한 권리도 이전했다. 로열티 수익을 제외한 계약규모만 4억 7,700만 달러(약 6,391억 원)에 달한다. 기술 수출 규모를 합치면 1조를 뛰어넘는 수준이다. 

연말의 주인공은 종근당이었다. 종근당은 최근 놀라운 기술 수출 소식으로 업계 분위기를 한껏 끌어올렸다.글로벌 빅파마 노바티스과 희귀질환 신약 후보물질 ‘CKD-510’에 대한 13억 500만 달러 규모의 기술수출 계약을 체결한 것이다. 

계약금만 8,000만 달러(약 1,061억원)에 달하는 빅딜이다. 이를 계기로 종근당은 비로소 기술수출 강자 대열에 합류한 것이다. 당시 상위 제약사 임원 사이에서는 "계약 규모, 후보물질의 성격을 고려했을 때 상당히 부러운 계약"이라고 목소리까지 나왔다.

업계에서 그동안 기술하면 떠오르는 제약사는 한미약품과 유한양행이었다. 한미는 2015년부터 기술 수출 포문을 열어젖힌 개척자로 평가받는다. 유한은 오픈이노베이션 전략으로 화제를 뿌린 기술 수출 명가로 불린다. 하지만 올해 대웅과 종근당이 한미와 유한과 어깨를 나란히 하면서 강자 대열에 합류했다. 

게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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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 '1조'는 가뿐...업계 체급 '확장' 

제약사들의 2023년 매출 추이를 정리할 수 있는 핵심 키워드는 '상전벽해(桑田碧海)'다. 지난 11월 제약 바이오 기업들의 3분기 누계실적이 발표됐을 때 유한양행, GC녹십자, 종근당, 한미약품, 대웅제약이 1조 클럽을 달성을 확정했다. 

약 9년 전인 2014년, 유한양행이 업계 최초로 매출 1조를 기록한 점을 고려하면 놀라운 변화가 일어난 셈이다. 전통제약사들이 불과 3분기만에 가뿐히 매출 1조를 달성한 것은 업계의 쾌거였다. 

유한양행은 2023년 3분기 누적 매출액 1조 4218억원, 영업이익 508억원을 기록하며 전통제약사 가운데 가장 높은 매출액을 기록했다. 사업 부문 전반에 걸쳐 고른 성장을 기록했는데, 처방의약품(ETC)과 생활유통사업, 해외사업 영역에서 성장했다. 

GC녹십자는 같은 기간 매출 1조 2216억원, 영업이익 4284억원을 기록했다. 종근당은 2023년 3분기 누계 매출액 1조 1647억원을 기록했고 영업이익은 1322억원을 달성했다. 종근당의 이상지질혈증 치료제 '아토젯', 골다공증 치료제 '프롤리아', 고혈압 치료제 '딜라트렌' 등의 주요 품목 매출이 급증했다. 

대웅제약은 매출액 1조 135억원, 영업이익 939억원을 기록했다. 대웅제약의 실적은 전문의약품 부문의 활약이 영향을 미쳤다. 위식도역류질환 치료 신약 '펙수클루'와 SGLT-2 저해제 계열의 당뇨병 치료제 '엔블로'의 매출 증가가 결정적이었다. 

흥미로운 점은 업계 포진한 1조 클럽 후보군들이 무궁무진하다는 점이다. 보령의 3분기 누적 매출은 6284억원으로, 올해 실적이 약 8000억 수준으로 예측된다. 특히 젬자 등 특허가 만료된 항암제의 판권을 사들이는 LBA 전략이 성공을 거두면서 매출이 급성장했다. 내년 보령의 1조 클럽 달성 여부에 초미의 관심이 쏠리는 이유다. 

한덕수 국무 총리
한덕수 국무 총리

# 한덕수 총리 주축'바이오헬스 혁신 위원회' 전격 설치

지난 10월 17일 '바이오헬스혁신위원회'를 설치하는 대통령 훈령이 제정됐다. 복지부는 "의약품, 의료기기 및 보건의료기술 등의 제품 및 서비스와 관련된 바이오헬스 업무가 부처별, 분야별, 단계별 칸막이로 가로막혀, 정부 정책이 분절적이라는 지적에 따라 범정부 컨트롤 타워를 설치했다"고 전했다. 

‘바이오헬스혁신위원회’의 위원장은 국무총리다.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을 주축으로 기획재정부, 교육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외교부, 산업통상자원부, 중소벤처기업부, 국무조정실, 개인정보보호위원회, 식품의약품안전처, 특허청 및 질병관리청 등 12개 정부 부처의 장차관이 모인다. 현장과 학계 전문가들이 위원으로 활동할 전망이다. 

'범정부 컨트롤타워'는 업계의 숙원이었다. 원희목 전 한국제약바이오협회 회장(서울대 특임교수)는 임기 내내 대통령 직속 컨트롤타워 설치에 대해 목소리를 높였다. 원 전 회장은 지난 2월 퇴임 직전에도 "정부의 R&D 투자가 기초연구 단계에 집중되는데 신약 후보 물질의 전임상(동물임상)으로 전환하는 비율이 약 10% 밖에 안 된다. 이는 상당히 문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기초연구 선정 단계부터 잘못됐다"며 "산업계 인력이 함께 움직이지 않고 연구하는 사람들끼리 모여서 선정하니까, 정부의 R&D 비용이 주로 여기에 쓰이고 있다. 비효율적이다.대통령 직속 컨트롤 타워를 만들어 처음부터 후보 물질의 인허가 여부를 함께 고민해야 한다"라고 덧붙였다.

물론 이번에 설치된 ‘바이오헬스혁신위원회’는 대통령 직속이 아니다. 하지만 업계는 정부가 제약 바이오 기업들의 목소리를 외면하지 않았다는 측면을 주목하고 있다. 바이오헬스혁신위원회가 이달 중에 1차 회의를 열고 장기적으로 제 역할을 한다면, 흩어지고 분리된 R&D 지원 방식을 바로잡고 체계적인 시스템이 마련될 것이란 기대 때문이다. 

# '인동초' GC, 13년의 도전 마침내 결실을 이루다

GS녹십자가 지난 15일(현지시간) 미국 식품의약국(FDA)로부터 자사의 혈액제제 '알리글로'(ALYGLO)의 품목 허가를 획득했다고 18일 밝혔다.

알리글로는 선천성 면역결핍증으로도 불리는 일차 면역결핍증에 사용하는 정맥투여용 면역글로불린 10% 제제로 지난 2020년 북미에서 일차 면역결핍증 환자를 대상으로 임상 3상을 진행해 FDA 가이드라인에 준한 유효성 및 안전성 평가 변수를 만족시켰다.

충북 오창공장 혈액제제 생산시설에 대한 실사가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지연됐지만 결국 녹십자는 지난 4월 FDA 실사 일정을 마쳤다.

녹십자는 그 이후 7월 14일(현지시간) 생물학적제제 허가신청(BLA)를 다시 제출했다. 회사 측은 FDA에서 '처방의약품 신청자 수수료 법'(PDUFA)에 따라 내년 1월 13일(현지시간)까지로 고지했던 기한보다 약 1개월 가량 빠르게 승인 소식을 보내왔다고 설명했다.

FDA 품목허가는 바이오 기업들의 전유물이었다. 전통 제약사들이 주춤할 동안 SK바이오팜은 뇌전증 치료제 엑스코프리와 수면장애 치료제 수노시를 내세워 글로벌 시장에 빠르게 침투했다.

하지만 한미약품이 2022년 호중구감소증 신약 ‘롤론티스’로 FDA 허가 관관문을 넘어서면서 전통 제약 업계에 낭보가 들렸다. 업계가 이번 GC녹십자 사례를 롤론티스에 이은 또 하나의 쾌거로 평가하는 배경이다.

GC의 FDA 도전은 201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알리글로와 주성분 함유 농도가 다른 'IVIG-SN 5%' 허가를 신청했지만 두 차례에 걸쳐 제조공정 관련 자료 보완 요청을 받았다. 이후 함유 농도 10% 제품으로 전략을 바꿨지만 지난해 허가 신청 이후 FDA는 다시 한 번 서류 보완을 요구했다.

결국 GC는 8년 간의 노력 끝에 알리글로를 통해 FDA 관문을 뚫어냈다. 롤론티스가 미국 시장에서 순항 중인 것처럼, 알리글로가 연착륙할 경우 돌아오는 새해에는 K-제약이 세계 시장을 호령하는 해로 기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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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듀 #녹십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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