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팜뉴스=최선재 기자] WHO가 식품의약품안전처를 우수 규제기관 목록(WHO Listed Authorities, WLA)에 등재한 가운데 업계의 시선이 의약품 수출에 쏠리고 있다. 수출 대상국의 의약품 허가 심사를 받을 때 심사 면제 또는 기간 단축의 혜택을 받을 수 있는 모멘텀이 확보됐기 때문이다. 

업계가 WLA 등재를 쾌거이자 낭보로 해석하는 배경이다. 그렇다면 식약처는 WLA 등재를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였을까. WLA 등재로 업계가 얻을 수 있는 구체적인 실익은 무엇일까. 팜뉴스가 송현 식약처 의약품정책과 연구관이 '제37회 약의 날' 기념 심포지엄 발표에서 그 해답을 제시했다. 

# SRA? 이제는 WLA가 '대세'...GBT 관건

그동안 WHO는 ICH가 정한 SRA 목록을 토대로 UN 산하 기관의 의약품이나 백신 조달을 입찰할 때 품질 인증(PQ)의 예외를 적용했다. 하지만 WHO 안팎으로 새로운 우수 규제 기관 도입 목소리가 제기됐다. ICH 회원국에 기반했던 SRA 개념을 대체할 필요성도 생겼다.  

이뿐만이 아니다. 전 세계 의약품 규제 기관들은 의약품 시장의 세계화에 따라 공급망의 복잡성이 증가하고, 코로나19와 같은 신종 감염병에 의한 긴급 상황 관리로 많은 도전에 직면 중이다. WHO(세계보건기구)가 우수 규제기관 목록(WHO listed authorities, WLA) 제도를 도입한 배경이다. 

WLA의 대상은 의약품과 백신 분야다. WLA  등재를 위해서는 GBT, 즉 규제 시스템 글로벌 평가 기준을 통과해야 한다. GBT는 의약품과 백신 분야의 국가 규제 시스템을 평가하는 시스템으로 WHO가 개발했다. GBT 평가는 WLA 등재를 위한 핵심 단계다. 

# 식약처 '성숙도' 4등급 달성, 268개 지표 '통과'

GBT는 국가의 규제 시스템을 시판 허가, 약물감시, 시장 감시 등 총 9개 영역으로 구분해서 평가한다. 각 영역별 규제 능력을 평가하기 위해 268개의 평가지표로 구성된다. 평가 결과는 성숙도 1단계에서 4단계로 분류된다.

성숙도 1단계는 규제 시스템 중 일부 요소가 존재하는 것을 의미한다. 성숙도 2단계는 필수 규제 기능을 부분적으로 수행하고 규제 시스템의 개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뜻한다. 성숙도 3단계는 규제 시스템이 안정적으로 기능하고 통합된 것으로 대부분의 규제 기관이 도달해야할 목표다. 

성숙도 4는 매우 훌륭한 규제 시스템을 보유했고 지속적으로 개선 프로그램을 적용하고 있단 의미다. 식약처는 2022년 11월 의약품과 백신 분야에서 모두 최고 등급인 4등급을 달성했다. 모두 4등급을 받은 나라는 우리나라가 최초이고 최근에 사우디아라비아가 두 분야에 대해 4등급을 받았다. 

# 선제적 결정, WLA 신속 도입 계기

WLA 등재부터 신청까지 2년이 걸렸다. 먼저 WHO는 SRA를 대체하기 위한 'WLA Framework'를 발표했다. 당시 우리나라는 2016년에 ICH 정회원으로 가입해서 국제 협력 활동을 하고 있었지만 SRA엔 가입하지 않았다. WHO가 SRA 등재 신청 절차를 추가로 운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식약처는 국제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투명하고 근거에 기반한 규제시스템을 확립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 안전하고 효과적인 의약품의 적시 공급을 위해서도 WLA 등재가 필요했다.  

WLA 등재신청을 다른 나라보다 선제적으로 결정한 이유다.  2021년 11월, 등재 의향서를 제출한 이후 식약처는 자료 작성이나 현장 평가 대응을 위해 차장을 단장으로, 의약품안전국장과 부단장을 필두로 기능별 전담인력을 배정해서 신속하고 효율적으로 진행될 수 있는 등재 추진단을 신설했다. 

이듬해 2월, 식약처는 GBT 규제 역량 평가 도구 기반의 자체 평가 자료를 제출했다. 그해 4월엔 WHO가 제안한 간소화 평가를 받도록 위험기반 신속 평가 진행이 결정됐다. 식약처가 WHO 위탁 시험기관, GMP분야의 국제 교육 훈련, 바이오의약품 표준화 분야의 협력 센터 등 다양한 국제 조화 활동을 통해 규제역량을 인정받은 덕분이다.

# PE 평가 마지막 퍼즐 완성

지난해 11월 식약처는 결국 백신과 의약품 영역에서 GBT 성숙도 4등급을 달성했다. 지난해 4월부터 10월까지 WHO 평가단이 방한해서 GBT와 다양한 평가 기능에 대해 현장 평가를 수행했다. 올해 2월부터 5월까지, 나머지 시판허가와 임상시험에 대한 PE 원격 평가를 시행했다. 

PE(Performance Evaluation)는 규제 시스템의 운영 상황과 수행 능력 수준을 평가하는 것으로 총 9개 기능에 대해 현장 평가와 원격 평가로 진행한다. GBT 지표가 신청 기관의 적절한 규정이나 가이드라인, 서면 절차 보유 여부를 평가하는 것이라면 PE 지표와 도구는 해당 규제기관이 WHO 인증 제도에 참여한다.

의약품 제조 판매 증명서 발행, 교육 훈련 등 실제 운영 측면에서 수행능력에 대한 구체적인 평가를 하는 개념이다. 마지막 절차인 PE 원격평가를 시행한 후인 지난 10월 식약처의 WLA 등재 소식이 전해졌다. 

# 업계 글로벌 시장 열릴까... 참조국 지위 부여 결정적 

우리나라의 WLA 등재는 대한민국 규제시스템의 우수성을 국제적으로 인정받아 세계시장 진출 기반을 공고화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국제기구인WHO로부터 우수 규제기관으로 공식 인정받았기 때문에 국산 의약품의 글로벌 품질 신뢰도가 올라가고 우리나라의 규제 선도국 지위가 강화될 것이다. 

WLA 등재를 통해 국내 제약사들은 UNICEF 등 유엔 산하 기관에 의약품 또는 백신 조달 입찰할 때 WHO 품질인증에 유리한 조건을 부여받을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해외 조달 시장의 진입 조건이 쉬워진다는 뜻이다. 

베트남 같은 나라는 SRA 국가들에게 더욱 유리한 허가 절차를 부여한다. 이런 나라들에서 WLA 등재로 높은 신뢰도를 인정받아 각종 인허가 절차 간소화 등 우호적인 심사를 받을 전망이다. 

이뿐이 아니다. WLA 등재국은 SRA 국가와 동등한 지위를 가진다. 해외국에서 참조국 지위 부여를 협상 가능한 객관적이고 강력한 수단으로 활용 가능하다.

객관적인 규제 역량 입증을 받은 WLA를 통해 제약 시장 잠재력이 무궁무진한 동남아나 중남미 국가에서 수출 확대를 예상할 수 있는 배경이다. 식약처는 앞으로도 우리 제약 기업의 해외 진출을 돕고 국제조화를 선도하도록 노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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