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팜뉴스=최선재 기자] 코로나19 팬데믹을 계기로 세계 곳곳에서 원료 의약품 수급 문제가 촉발됐다. 글로벌 공급망 붕괴로 해외에서 원료약을 들여오지 못한 결과는 참담했다. 각국 정부는 국민들에게 반드시 필요한 의약품 품절 이슈에 직면했고 희귀 필수약 수급이 막혀 환자들이 죽어나갔다. 

미국 등 선진 제약 강국들이 앞다투어 자국산 원료약 자급률을 높이기 위해 다양한 정책을 내놓은 배경이다. 중국과 인도에 의존한 원료의약품 시장을 탈피하지 않으면 감염병, 전쟁 등 위기 상황에서 안보주권이 위협당할 것이란 위기 의식의 발현이다. 

우리나라 역시 국산 원료약 자급률이 급감하면서 10~20%대를 수년째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안보 주권이 위협받는 상황이지만 보건당국은 사실상 손을 놓고 있다. 제약 강국들이 재빠르게 움직이는 모습과 대조적이다. 

그렇다면 원료의약품 자급률을 어떻게 높일 수 있을까. 원료의약품 자급률이 극적으로 감소한 계기는 뭘까. 한쌍수 한국제약바이오협회 원료의약품 전문위원회 위원장이 9일,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약바이오 글로벌 중심국가 도약을 위한 정책 토론회" 현장에서 그 해답을 제시했다. 

# "2012년 일괄 약가 인하"= 자급률 감소 '트리거' 

원료의약품 자급률 수치를 발표할 때 보통 20% 후반이란 수치가 나온다. 하지만 주사제 원액도 원료약으로 분류한 것이기 때문에 그것을 제외하면 사실상 10% 초반이다. 그만큼 원료의약품 자급률 문제는 심각하다. 

제약 산업에 계신 분들은 자급률 저하의 근본적인 원인을 알고 있을 것이다. 트리거는 2012년에 실시된 일괄 약가 인하제도다. 약가 인하 제도 시행을 기점으로 완제 의약품 제조사들이 손실을 보전하기 위해 저가 원료를 찾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 발생했다. 수입산 저가 원료들이 시장을 빠르게 선점한 원인이다. 

즉, 국가가 시장 경제에 개입했다.

자유 시장 경제에서는 승자 독식이다. 우수한 기업이 시장을 이끌고 그렇지 못한 기업은 도태되는 것이 맞지만 국가가 개입했다. 물론 정부가 개입하는데 정당한 이유들이 있어서 산업계도 약가 인하를 받아들였다.

하지만 저는 지금 시점에서 "산업을 보호하는 정책이 따라왔느냐"라는 질문을 던지고 싶다. 그런 부분이 여전히 아쉬움으로 남는다. 

# 가장 확실한 해결책= 약가를 올리는 것 

그렇다면 이런 상황을 어떻게 타개할까.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약가 지원이다. 

특히 국산 원료약을 사용한 완제의약품의 약가를 우대해주는 정책이 효과적일 것이다. 수요자가 사용을 확대하도록 유도하는 정책만큼 시장에 통하는 정책은 없다. 

한 가지 예를 들겠다. 보통 제네릭 의약품에서 원료의약품(API)이 차지하는 원가 비중은 약 20%다. 여기서 원료약의 가격 10%를 낮췄다고 생각하면 품목별로 영업이익이 증가할 것이란 계산이 가능하다. 

반대의 가정도 할 수 있다. 약가를 2% 올린다고 가정하면 똑같이 영업이익이 증가한다. 이는 약가를 2% 올리면 원료약 가격을 10% 낮춰도 영업이익이 늘어나지 않는단 뜻이다. 즉, 약가를 올리는 것이 원료약의 가격을 낮추는 것보다 5배 정도의 효과가 있다는 추론을 할 수 있다.

정부는 "통상 이슈도 있는데 국산 원료약을 사용한 의약품의 약가를 도대체 얼마나 보전해달라는 것이냐"라고 물을 수 있다. 하지만 상당한 부분을 지원하지 않아도 당장 효과가 일어날 수 있다고 말씀드리고 싶다. 완제의약품의 용량과 원가 구조에 따라 조금씩 상이하겠지만 이런 효과는 비슷할 것이다. 

# 현행 제도 비효율적...중국 여파로 '기울어진 운동장'

물론 제도적 지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지금도 제약사가 자사 원료를 합성해서 완제의약품을 만들면 오리지널 대비 약가 68%까지 주는 제도를 시행 중이다. 하지만 원료 합성 기능과 완제 합성 기능을 전부 가진 회사에 적용된다. 그런 회사는 몇 곳 없을뿐더러 실효성이 없다. 

예를 들어 A 완제의약품 제조사가 원료약을 직접 제조한다. 하지만 원료약을 경쟁 회사에 팔 수가 없다. 자신이 쓰는 사용량만큼 밖에 소진을 못한다. 규모의 경제가 안 된다는 뜻이다. 결국 약가를 보전해줘도 원가가 너무 높아서 효과가 반감된다. 이런 측면에서 현행 약가 우대 정책도 효과적이지 않다. 

앞서 말씀 드렸듯이. 정책적 지원 방안 중 가장 효과적인 것은 약가를 보전해주는 제도인 이유다.

또 다른 이유도 있다. 중국 때문에 세계 각국이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입찰을 진행 중이다. 지금 우리 기업들이 해외에 나가서 의약품을 입찰하면 중국 기업들이 써낸 가격이 절반 수준이다. 우리나라 뿐 아니라 전 세계가 겪는 문제다. 그래서 다른 나라들은 중국 정부에 보조금을 주지 말라고 했다.

하지만 중국 기업들과 국민들을 컨트롤 할 수 있는 가장 큰 무기가 보조금이다. 중국 정부가 보조금 정책을 포기하지 않는 이유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국가 제약사들도 마찬가지로 자국 정부에 '우리도 보조금을 주세요'라고 이야기하는 것이다.

특정 분야의 혜택을 줄 수 있는 정책을 펼친다는게 쉽지 않겠지만 제 주장에 이같은 배경이 있다는 점도 인식했으면 좋겠다. 약가를 올려달라는 산업계의 주장에 충분한 명분과 설득력이 있다는 뜻이다.

# 원료약 투자? 생태계 조성해주면 스스로 한다

저희가 이같은 정책을 요청하면 정부는 "기업은 무엇을 하고 있나, 스스로 경쟁력을 갖추고 자구책을 마련해야지!"라고 말한다. 하지만 제약 산업이 성장하고 회사가 돈을 벌면, 저희는 하지 말라고 해도 투자한다. 

스스로 경쟁력도 갖춘다. 대량 생산 시스템으로 규모의 경제를 만들면서  중국 인도와 경쟁할 수 있는 몸집을 키운다. 정부가 시키지 않아도 할 것이다.

당장 자구책을 만들라고 하면 실행에 옮길 수도 있다. 수백억을 들여서 대형 설비를 갖다 놓고 수백톤씩 한꺼번에 만들면 가격은 싸진다. 하지만 "전부 어디에 팔 수 있나"라는 질문에서 막히는 것이다.

정부가 투자할 여력과 생태계를 조성해야 기업이 투자를 선행한다. 그것이 정부의 역할이다. 자구책은 스스로 알아서 마련할 수 있기 때문에 굳이 설명은 따로 드리지 않겠다. 

다만 마지막으로 당부하고 싶은 점이 있다. 원료약은 대부분 합성이다. 원료약 제조 회사는 제약 회사이면서 화학 제품 합성 회사다. 하지만 모든 기초 원료를 우리가 만들 수 없다. 

기초 원료를 공급해줄 후방 산업이 탄탄해야 하고 우리를 끌고갈 전방 산업, 즉 완제사들이 신약도 개발하면서 시장을 리딩해나가야하는 선순환구조 생태계를 만들어야 한다.

원료약 제조사 뿐 아니라, 중간체 출발물질 제조사들한테도 지원이 들어가야 지속 가능한 생태계를 구축하고 원료약 자급률 감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점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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