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팜뉴스=최선재 기자] 전근대 왕조국가 연좌제의 피해는 백성들에게 돌아갔다. 국왕이 무소불위 권력으로 칼춤을 추면, 죄 없는 백성들은 피눈물을 흘렸다. 범죄자와 연고가 있다는 이유로 휘두른 칼은 점차 무고한 백성에게 향했다. 마을 곳곳에서 진혼곡이 퍼질 때마다 민심이 들끓었지만 억울한 백성들은 마땅히 하소연할 곳조차 찾을 수 없었다. 

제약 업계에서 최근 나오는 '현대판 품목 연좌제(위탁사의 행정처분 기준 수탁사 동일 규정)'도 이와 무관치 않다. 연좌제 피해의 종착역이 우리 국민들이 될 것이라는 지적이 들리기 때문이다. 수탁사가 잘못했다는 이유로 위탁사의 동일 제형 제품까지 제조 정지를 내린다면 대규모 의약품 품절 현상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는 목소리다. 

게티
게티

팜뉴스는 지난 18일 "식약처는 왕조 국가? '품목 연좌제'가 웬 말이냐!" 제하의 보도를 통해, 수탁사가 제조기록서 허위 작성 등 GMP 위반을 했을 경우 위탁사도 수탁사와 동일하게 처벌하는 취지의 입법 예고안에 대한 업계 목소리를 전했다. 

특히 임의 제조를 저지른 품목뿐 아니라 전혀 관계 없는 위탁사의 동일 제형 제품까지 제조 중지를 하는 것이 연좌제와 같다는 지적을 담았다. 위탁을 줬다는 이유만으로 무한 책임을 지기 때문에 억울한 제약사가 속출할 것이란 점도 꼬집었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업계 관계자는 "지금 품절약 대란이 1년째 이어지고 있다"며 "위탁사의 품목마저 같은 제형이란 이유로 제조 업무 정지 1개월 처분을 받는다면 의약품 품절 사태가 더욱 장기화할 수 있다. 수탁을 맡긴 위탁사들이 많을텐데 해당 수탁사의 잘못으로 위탁사들의 제품까지 날아가면 공급 대란이 일어날텐데 이에 대한 책임은 누가 질 것인가"라고 반문했다.

실제로 코로나19 팬데믹을 기점으로 기관지 확장제, 항생제, 해열제부터 알레르기 비염조절제 등을 중심으로 의약품 수급 불안이 이어지고 있다. 팬데믹이 끝난 지금 이 순간에도 약국에 약이 없어 대다수 국민들이 발을 동동 구르는 상황이다. 더구나 소아 청소년 중증 질환 필수약 역시 장기간 품절 대란에 휘말리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수탁사뿐 아니라 위탁사의 동일 제형 제품까지 모조리 '제조 업무 정지' 처분을 받는다면 의약품 수급 불안 사태가 가중된다는 게 업계 중론이다. 

예를 들어 A 수탁사에 B,C,D 제약사들이 항생제(제형:정제)를 위탁 생산을 맡긴 이후 A 수탁사가 제조기록서를 허위로 작성했다면 당초는 B,C,D가 위탁을 맡긴 해당 품목(항생제 제품)에 대해 3개월 제조 업무 정지 처분을 받았다. 

반면 식약처 입법 예고안에 따르면 B,C,D 제약사들의 정제 전체 품목까지 1개월 제조 정지 처분 대상이 된다. 대다수의 제약사가 다양한 품목을 수탁사에 맡긴 현실을 생각하면, 위탁사들의 품목이 동일 제형이란 이유로 행정처분을 맞을 경우 품절약 대란이 반드시 일어난다는 것.

익명을 요구한 수탁사 관계자는 "우리는 과거와 같이 하던대로 하면 되지만 국민들이 걱정된다"며 "약이 동날 경우에 식약처는 어떻게 책임을 질 것인가. 의약품의 안정적인 공급이란 장기적인 계획이 있었다면 이런 식으로 입법 예고를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밝혔다.

또 다른 관계자 역시 "수탁사는 위탁사가 더욱 깐깐하게 나올수록 위탁 계약 자체가 꺼려질 수 있다. 위탁사가 마음에 들지 않고 해당 품목이 돈이 안 되면 수탁사는 그 약을 포기하면 그만이다. 잘못이 있다면 분명 처벌받아야 하지만 위탁사의 동일 제형 제품까지 처분하는 것은 이런 점을 간과했다. 이렇게 되면 행정 처분 기준 변경으로 번진 품절약 사태가 국민들의 발목을 잡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뿐만이 아니다. 위탁사 대부분이 중대형 제약사이기 때문에 의약품 공급 문제가 장기화될 것이란 예측도 들린다.

앞서의 수탁사 관계자는 "일반적으로 위탁사 중에는 대형 제형사가 많다. 입법 예고안이 현실화된다면 수탁을 맡긴 이들 회사들은 그야말로 멘탈이 붕괴(?)될 것"이라며 "이제 와서 수탁사를 상대로 실사를 나가도 잡아낼 것이 마땅히 없다. 대다수 위탁사 제품이 동일 제형이란 이유로 도미노처럼 쓰러질 수 있다는 뜻이다"라고 경고했다.

이어 "심지어 100개 이상의 약이 한꺼번에 품절 될수도 있다. 장기화 국면에 돌입하는 것"이라며 "이는 국가적으로 소아과 의사가 부족해서 어린이들이 피해를 입는 것과 같은 이치다. 식약처의 위수탁사 동일 처분의 화살을 죄 없는 국민들이 맞는다는 뜻"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팜뉴스는 식약처발 "위수탁 동일 처분 입법 예고"를 둘러싼 업계의 또 다른 목소리를 후속 보도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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