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팜뉴스=최선재 기자] 건강사회를위한약사회(건약)이 식약처의 국가 필수의약품 목록 퇴출 시도를 멈춰야 한다고 입장을 냈다. 

건약은 지난달 31일 "정부는 최근 국가필수의약품 중 4분의 1에 달하는 125개 품목을 필수의약품 목록에서 퇴출시킬지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며 "이번 국가필수의약품 지정 철회는 2016년에 처음 목록을 지정·관리한 이후 대규모로 해제하는 첫 시도이다"고 전했다.

이어 "식약처가 밝힌 퇴출 사유는 보건의료 필수성 및 공급 불안정에 대한 전문가 평가를 받았거나 다수의 허가품목 공급이 되고 있어서 또는 국내 미허가 및 최근 5년 내 긴급도입·특례수입 이력이 없기 때문이다"고 덧붙였다.

건약은 또 "하지만 이번 정부의 대규모 국가필수의약품 퇴출 시도는 마땅히 책임져야 하는 의약품 공급관리 문제를 회피하기 위한 술책에 불과하며, 퇴출 이유 또한 기존 필수의약품 지정 목적과 반한다"고 말했다. 

아래는 건약 성명 원문이다.

[성명] 식약처는 국가필수의약품들의 대량 퇴출시도를 멈춰야 한다.

국가필수의약품 지정제도에 대한 평가 및 보완을 위한 노력이 먼저다

정부는 최근 국가필수의약품 중 4분의 1에 달하는 125개 품목을 필수의약품 목록에서 퇴출시킬지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국가필수의약품 지정 철회는 2016년에 처음 목록을 지정·관리한 이후 대규모로 해제하는 첫 시도이다. 식약처가 밝힌 퇴출 사유는 ‘보건의료 필수성 및 공급 불안정에 대한 전문가 평가’를 받았거나 ‘다수의 허가품목 공급’이 되고 있어서 또는 ‘국내 미허가 및 최근 5년 내 긴급도입·특례수입 이력이 없’기 때문다. 하지만 이번 정부의 대규모 국가필수의약품 퇴출 시도는 마땅히 책임져야 하는 의약품 공급관리 문제를 회피하기 위한 술책에 불과하며, 퇴출 이유 또한 기존 필수의약품 지정 목적과 반한다. 건강사회를위한약사회는 다음의 이유로 이번 정부의 국가필수의약품 대규모 감축을 원점에서 다시 검토해야 할 것을 주장하며, 검토 과정에 이러한 의약품 접근권 관련 시민사회의 목소리를 반영할 것을 요구한다.

첫째, 허가되어 있지 않다고 해서 국가필수의약품의 조건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미허가 의약품은 정부가 책임져야 하는 의약품 접근권의 공백에 해당한다.

진료상 최우선적으로 선택이 필요한 의약품이더라도 의약품 접근이 어려우면, 의료현장에서는 이를 대체할 수 있는 차선의 의약품을 선택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실제 의료인이 국내 허가되지 않은 의약품의 긴급도입을 당장 요구하지 않더라도 대체 약제를 통해 치료가 이뤄지게 된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최우선으로 선택해야 할 의약품이 존재한다는 사실자체를 수정할 수 없다. 지난 2016년 첫 국가필수의약품으로 지정된 약제 109품목 중 당시 미허가 의약품은 34품목에 달했다. 여러 이유로 당시 국내에 도입이 되지 않았지만, 종국에는 도입이 필요했던 약제로서 고려되었기 때문에 지정된 것이다. 하지만 7년 만에 식약처는 미허가 의약품이라서 필수의약품 지정을 해제하겠다고 주장하는 것은 애초에 국가필수의약품 지정을 검토했던 취지를 무색하게 만드는 결정이다.

식약처는 여러 법령을 통해 미허가 국가필수의약품의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대체의약품이 없는 국가필수의약품에 대하여 시험검사 등의 성적서를 다른 방식으로 갈음’하게 하기도 하고, 허가 신청과정에서 중앙약사심의위원회를 통해 안전성, 유효성이 충분히 확보된 의약품의 경우 안전성·유효성에 대한 자료를 일부 면제받을 수 있게 하고 있다. 이러한 정책들은 제약사들이 아직 허가되지 않은 국가필수의약품을 하루속히 생산할 수 있도록 규제상 편의를 제공하는 노력의 일환이었다. 미허가의약품을 공급하기 위해 제약회사들의 생산을 독려하고 있는데 갑자기 미허가 의약품이기 때문에 국가필수의약품의 지정을 철회하겠다는 것은 식약처가 정책의 일관성을 상실한 조치이다.

둘째, 국가필수의약품 지정에 관한 제도에 있지도 않은 지정해제를 어떤 과정에서 결정했는지 소상히 밝혀야 한다.

국가필수의약품은 식약처 등 관계부처 및 의료현장, 약국 등 약업단체에서 필수의약품 지정을 추천하면, 한국희귀·필수의약품 센터(이하 센터)의 사전검토 및 ‘국가필수의약품 안정공급 협의회’의 논의를 통해 보건의료상 필수성 및 안정공급 관리의 필요성 등을 검토하여 지정이 된다. 하지만 이번 지정해제는 관련 제도 및 규정을 찾을 수 없으며, 그 과정 또한 불투명하게 진행되고 있다. 투명하지도 체계적이지도 않은 방식으로 검토되는 과정에서 특별한 대체치료제 마련 논의는 이뤄지지 않은 채 퇴출을 논의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할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오피오이드 중독 치료제 관련하여 유일하게 포함되어 있는 날록손 주사제를 퇴출 품목에 포함시켰다. 하지만 대체할만한 의약품은 현행 필수의약품 목록에 마련되어 있지 않다. 날록손이 안정적으로 공급해야 하는 치료제가 아니라면 어떤 품목을 지정할지를 검토한 후에 날록손 지정해제를 검토하는 것이 우선일 것이다. 또 다른 예로 독시사이클린 캡슐제, 시프로플록사신 정제, 시프로플록사신 시럽제가 이번 퇴출 품목에 포함되었다. 만약 탄저병 같은 대규모 감염증이 터졌을 때를 대비하여 이를 치료하기 위한 의약품이 필요할텐데, 보다 최우선적인 의약품은 어떤 것이 있을지에 대한 고려 또한 사전에 진행되어야 하는 것 아닌가? 식약처는 갑작스럽게 국가필수의약품 퇴출품목을 검토할 것이 아니라, 필수의약품 지정해제에 관한 제도나 총체적인 목록 관리에 관한 정책을 우선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

셋째, 식약처는 국제사회 결정과 반대로 지정이 철회되는 국가필수의약품 목록에 대하여 최소한의 경위설명을 내놓아야 한다.

이번 식약처가 내놓은 퇴출 의약품 다수는 세계보건기구(WHO)의 필수의약품 목록에 포함되어 있거나 많은 국가들의 필수의약품 목록에 포함되어 있는 품목이다. 그럼에도 식약처는 해당 의약품의 지정 철회를 검토하고 있다면, WHO 및 다른 국가와 한국의 처해있는 상황이 어떻게 다른지, 또는 WHO의 견해와 달리 다른 약을 최우선 치료제로 고려하고 있다면 그것은 무엇인지를 충분히 해명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건약에서 자체적으로 조사한 결과 WHO 필수의약품 목록에 포함되어 있음에도 이번 지정철회 약물에 포함된 품목은 모두 48개에 달했다. 이는 전체 퇴출 품목 중 약 40%에 달하는 규모이다. 또한 131개 국가의 필수의약품 목록 중 80% 이상 국가에서 지정되어 있음에도 이번 지정철회에 포함된 약물은 모두 20개(품목으로는 25개)에 달한다(자세한 결과는 하단에 첨부). 다음 조사에 포함된 약물에 대해 식약처의 지정철회가 필요한 상세한 설명이 필요하다.

넷째, WHO 및 다수의 국가에서 필수의약품으로 지정되어 있는 미프진의 국가필수의약품 지정을 요구한다.

낙태죄가 폐지되기 전부터 수많은 여성들은 안전한 약물임신중지를 위해 꼭 필요한 미페프리스톤(이하 미프진)의 도입을 요구해왔다. WHO는 2005년부터 필수의약품 목록으로 지정하여 국가별 필수적으로 공급해야 하는 의약품으로 인정하고 있다. 또한, 임신중지가 어느정도 자유화된 대부분의 국가에서 미프진의 구매를 건강보험 등의 방법으로 지원하고 있으며, 스웨덴을 포함한 다수 국가의 필수의약품 목록에 미프진이 포함되어 있다. 한국도 낙태죄가 폐지된 지 이제 2년이 넘었다. 식약처는 당장 미프진을 도입해야 한다. 만약, 부처 특성상 도입 자체를 진행하지는 못하다고 변명하고자 한다면, 최소한 국가필수의약품에라도 지정하여야 한다. 미프진은 보건의료상 필수적이며, 안정공급이 달성되어야 하는 약물임을 식약처가 인정해야 한다.

식약처는 지난 국정감사에서 국가필수의약품 대응에 대한 컨트롤타워 역량이 부족하다고 비판을 받은 바 있다. 왜 공급되거나 비축되는 물량 파악이 제대로 되지 않았으며, 공급이 불안정한 경우를 대응할 역량을 갖추기 위해 노력을 다하지 않느냐는 지적이었다. 그리고 5개월이 지나서 식약처는 다수 품목의 국가 필수의약품 퇴출안를 내놓았다. 지난 국정감사에서의 지적에 대한 결과로 식약처가 이번 퇴출안을 내놓은 것은 아닌지 의심되는 것이 자명하다. 컨트롤타워 역량을 마련하기 위한 노력조차 시도하기 전에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국가필수의약품을 최소한으로 관리하겠다는 것은 아닌지 의심된다. 식약처는 이러한 의심을 지울 수 있도록 국가필수의약품 지정철회를 원점에서 다시 재검토해야한다.

이제 국가필수의약품 지정제도를 운영한지 6년이 지났다. 그동안 지정제도가 국민들의 의약품 접근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를 평가할 수 있는 시간이 된 것이다. 식약처는 지정철회를 멈추고, 국가필수의약품 지정제도를 다시 평가해야 한다. 그리고 문제가 있었다면, 이를 보완할 방안을 연구할 것을 요구한다. 연구를 통해 논의된 결과를 국민들에게 투명하게 내놓은 다음, 다시 지정해제를 검토하는 것이 국민들이 안심하고 의약품을 사용할 수 있게 해야 하는 식약처의 책임을 다하는 태도일 것이다.

2023년 3월 31일 건강사회를위한약사회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이 시각 추천뉴스
랭킹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