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3일 식약처가 aT센터에서 '2023년 의약품 임상시험 정책설명회'를 열었다. 식약처 임상정책과 과장을 포함한 직원들이 제약 업계를 상대로 올해 시행될 정책을 소개하는 자리였다.

식약처는 이날 오후에만 진행하려던 설명회를 확대 편성했다. 업계 관계자들의 참여도가 높아 오전에도 같은 내용으로 설명에 나서기로 결정했다. 임상정책과 연구관, 사무관 등이 같은 내용으로 발표를 이어간 이유다. 

임상정책과 직원들의 발표도 상세했다. 예를 들어 임상시험 실태조사 결과를 세세히 공개하거나 올해 도입될 DSUR 관련 내용에 적극적으로 답했다. 이는 과거와 다른 모습으로, 오유경 식약처장이 강조한 '소통'행보와도 일맥상통했다.

하지만 발표 도중, 기자는 아쉬운 장면을 목격했다. 기자는 휴식 시간에 이날 연사로 나선 연구관, 주무관, 사무관 등에게 차례로 명함을 건넸다. 하지만 이들은 '명함을 가져오지 않았다"고 했다. 뭔가 이상했지만 일단 발표를 지켜봤다. 

모든 발표가 끝난 순간 또 다른 장면이 보였다. 식약처 직원들이 업계 관계자들을 상대로 같은 입장을 취한 것이다. 

제약사 관계자들은 발표를 진행한 4명의 임상정책과 직원앞에 줄을 서서 명함을 건넸다. 하지만 식약처 어느 누구도 명함에 화답하지 않았다. 식약처 직원들의 책상에는 제약사 관계자들이 건넨 명함이 수북히 쌓여갔지만 정작 식약처 명함을 받은 이들이 없었다는 뜻이다. 

처음에 기자만 명함을 받지 못했을 때는 우연이라고 생각했지만 같은 장면을 수차례 목격하면서 심증은 확신으로 바뀌었다. 

식약처 임상정책과 직원들이 '모두', '일제히' 명함을 가져오지 않은 것 이면에 의도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민원인과의 부적절한 접촉을 피하기 위해 식약처 내부적으로 그런 방침을 정한 것일 수 있다.

하지만 이날 식약처 임상정책과 직원들은 발표가 끝날 때마다 "혹시 궁금한 점이 있으시면 연락을 꼭 달라"고 당부했다.

더구나 설명회 장소는 서울 서초구 양재동이었다. 아침부터 KTX를 타고 지방에서 올라온 제약업계 관계자들도 상당히 많았다. 

그렇다면, 개인 연락처가 없더라도 자신의 부서, 소속, 자리번호 정도가 적힌 명함 정도는 건네는 것이 상식적인 모습이다. 

차라리 발표 전후로 "식약처는 공적인 행사에서 연락처를 드리지 않습니다"라고 짧게 공지만 했어도 이런 문제가 나타나지 않았을 것이다. 오히려 '명함을 가져오지 않았다'고 말한 것이 오해를 키운 이유다. 

기자만 명함을 받지 못해서 이런 문제를 거론하는 것이 아니다.

단순히 임상정책과 뿐만 아니라 다른 업계 대상 설명회를 취재해도 식약처 직원들은 명함을 주고받는 기본적인 행동에 아주 소극적이었다. 

하지만 명함은 얼굴이다. 공적인 자리에서 명함을 서로 주고받는 것은 그 사람의 신분과 소속에 대한 신뢰를 주고 받는 기본이자 예의다.

오유경 처장 부임 이후 식약처는 불통의 흔적들을 치우기 시작했다. 부서별 담당자 연락처를 공개하고 제약 업계 실무진 의견을 반영하기 위해 의약품 심사 소통단 '코러스'를 출범시켰다.

하지만 기본을 지키지 않으면 소통이란 미명 하에 만든 제도와 시스템은 사상누각이 될 수 있다. 겉으로는 '언제든 소통하겠다" 외치면서 얼굴과 얼굴을 맞대는 자리에서 정작 명함 한장조차 건네지 못한다면 신뢰에 균열이 가는 것은 순식간이다.

부디, 오 처장이 이점을 유념했으면 좋겠다. 작은 오해가 눈덩이처럼 불어나 식약처가 소통을 위해 쌓아온 신뢰가 일순간에 무너질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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