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회 유재라봉사상-이준령약사]

낙도의 교사와 간호사에게 수여하던 유재라봉사상에 여약사 부분이 포함된 것은 지난 1998년. 이는 시상범위를 확대하고자 하는 유한재단의 뜻과 한국여약사회의 요청으로 이루어졌다.

유재라봉사상은 헌신적인 봉사의 삶을 실천한 유재라 여사를 기리기 위해 제정됐으며 그의 뜻을 이어받은 유한재단은 장학사업과 사회사업 등의 공익사업을 펼쳐오고 있다.

그동안 유재라봉사상 여약사부분의 수상자로는 제주 성요셉양로원장 김영숙 마리보나수녀약사, 국립소록도병원 강경애 책임약사, 아프리카어린이돕는모임 스와지랜드 김정희 이사장, 국제키베라 몬테소리어린이학교 박양미 약사, 불자약사 보리회 나청자 약사 등이 선정된바 있다.

올해로 6회째를 맞은 유재라봉사상에는 이준령 중랑구약사회 부회장이 선정됐다. 심사위원들은 봉사의 정신이 국경을 넘어 실천되고 있으며 봉사의 보람이 자기 인생의 목표라는 이준령 약사가 수상의 뜻과 어긋남이 없다며 수상 경위를 밝혔다.

인도네시아 오지교육과 의료활동 위한 경제적 지원



“하나님께 약속한 대로 봉사의 삶을 살았을 뿐이다.”

유재라봉사상 수상이유에 대한 이준령 약사의 겸손한 소감이다. 그는 이미 ‘봉사하는 약사’라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대학 시절 야학활동을 시작으로 인도네이사, 필리핀 등 국경을 넘어 해외까지 봉사의 손길을 뻗치고 있다.

이러한 활동이 이번 유재라봉사상 선정의 이유가 됐다.

이 약사는 현재 인도네시아 오지마을 사람들을 돕고 있다. 2002년 8월, 인도네시아에 방문해 문명으로부터 소외된 그들의 삶을 보고 오지마을 사람들을 돕는데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그들을 위한 크리닉 병원과 영농기술학교 건축에 투자하고 있으며 그곳의 교사와 함께 일할 수 있는 동역자들을 구하는데 힘을 모으고 있다.

그가 이일을 시작한 것은 우연이었다. 인도네시아에서 선교활동을 벌이고 있는 선교사를 통해 그 곳 소식을 들을 수 있었으며 ‘그렇게 어렵다면 크리닉 건물은 내가 세워주마’라는 약속과 함께 일이 시작됐다.

처음에는 필요한 의약품을 모아 보내주는 정도였지만 그것으로는 그들을 돕는 것에 한계가 있다고 생각하고 있을 무렵 인도네시아 선교사들의 방문 요청이 이어졌다.

의약품을 보내고 크리닉 병원을 세우는 것에 만족하고 있는 이 약사는 직접 인도네시아를 다녀온 이후에는 생각이 바뀌었다. 단지 병을 고쳐주고 의약품을 전달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들 스스로 자립하고 개혁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판단이 들었다.



이런 생각으로 그는 먼저 그들의 자립을 고민하게 되었고 자립을 위해서는 농작물로 고구마만을 재배하는 그곳에 다른 작물의 재배방법을 가르쳐 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 후 크리닉건물 외에도 영농기술학교를 지원하기에 이르렀다. 이미 건축이 마무리 단계에 있으며 9월중으로 오픈 할 예정이다. 건물부지는 인도네시아 당국에서 58,000평의 땅을 무상으로 제공했다. 조만간 이 약사는 오픈식에 참석하기 위해 인도네시아로 떠날 예정이다.

오지에 약품 보내면서 약사로서 책임감 느껴

이준령 약사는 의사가 되고 싶었다. 오지에서 봉사하는 의사를 그리며 꿈을 키워갔다. 하지만 의대에 진학 하지 못했다.

몇차례 의대 진학을 실패하고 약대에 입학했다. 처음에는 잘 적응하지 못했다. 그래서 공부도 소홀히 하고 약사가 되지 않겠다는 생각까지 했다.

대학시절 공부보다 야학활동에 전념했다.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살겠다는 다짐을 실현할 수 있는 것은 야학뿐이라고 여겼다. 야학활동에 매달리다 보니 매일 밤12시에 집에 들어가기 일쑤였고 대학 4년동안 재시험과 추가시험을 보는 것은 다반사였다.

그러던 어느 날 어머니는 “약사시험이라도 봐두지 그러냐”며 한숨을 내쉬었고 그런 딸을 바라보는 엄마가 불쌍하다는 생각에 4학년때부터 공부를 시작했다.

졸업 후 관리약사로 근무를 하면서도 이 약사는 봉사할 곳을 찾았지만 자신이 원하는 대로 일할 곳을 찾지 못했다. 약국을 개설하면서 오전 8시부터 오후 12시까지 약국 일에 매달린 10여년간은 봉사하며 살겠다는 자신의 다짐과는 동떨어진 삶을 살았다.

그러다 우연히 기아대책본부의 ‘섬기는 사람들’이라는 소책자를 접하게 되었다. 책자 속엔 ‘오지 선교지에 약이 없다’는 선교사의 보고서가 눈에 들어왔다. 이 약사는 기아대책본부에 곧바로 전화를 걸어 약을 보내고 싶다고 전했다.

기아대책본부는 마침 약을 구하기 위해 한국에 들어온 잠비아 선교사 부부와 연결시켜 주었고 이 약사는 그들에게 약국에 있던 약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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