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팜뉴스=신용수 기자] 우리가 일상에서 접하는 약은 대부분 ‘먹는 약’이다. 이같이 먹는 약은 대부분 위나 소장에서 흡수되는데, 기존 기술로는 소장에서 약물 흡수가 어떻게 이뤄지는 지 정확하게 평가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 하지만 우리나라 정부출연연구기관 연구팀이 해당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찾아냈다. 새로운 소장 상피 모델을 개발하는 데 성공한 것.

한국생명공학연구원(이하 생명연) 연구팀은 소장의 약물 흡수도를 평가할 수 있는 인간 전분화능줄기세포(iPS) 유래한 인간 소장 상피 모델을 세계 최초로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해당 연구 관련 논문은 미국과학진흥회(AAAS)가 발행하는 저명 국제학술지 ‘사이언스 어드밴시스’(Science Advances) 6월 2일자에 게재됐다.

소장 상피 모델은 신약개발의 정확도를 높이는 데 있어 필수 과제 중 하나였다. 후보 약물의 흡수‧분포‧대사‧배설(ADME)에 대한 약물 동태평가가 필요한 까닭이다. 특히 경구 투여제의 경우 상당수가 소장을 통해 흡수되는 까닭에 인체 소장 환경을 정확히 재현할 수 있는 모델 개발은 신약개발 활성화를 위한 중요한 관문이었다. 

그동안 소장에서 약물 흡수도 평가에는 대장암 조직에서 유래한 장 세포를 활용했다. 하지만 인체 소장 환경을 동일하게 구현할 수 없는 까닭에, 소장에서 발생하는 약물 흡수 과정과 1차 대사를 평가하고 예측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 이에 iPS를 이용해 소장 세포를 분화하는 연구가 전 세계적으로 활발하게 이뤄졌지만, 분화도가 낮고 세포 다양성이 모자라 기능성이 떨어진다는 문제점이 있었다. 또 대량 증식에도 어려움을 겪었다. 

학계에서는 해당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3차원 오가노이드(장기유사체) 기술을 집중적으로 연구해왔다. 3차원 오가노이드 기술을 활용하면 실제 인간 장 상피 세포를 구조적‧기능적으로 높은 수준으로 모사한 모델을 만들 수 있다. 

하지만 장 오가노이드는 상피세포와 세포 외 기질로 둘러쌓인 구 형태로, 장 상피세포가 노출된 오가노이드 내부의 내강(lumen)으로 접근이 어려워 약물 평가 모델로 활용하기 어렵다는 태생적 약점을 지니고 있었다. 

생명연 연구팀은 소장 상피전구체를 활용해 이 문제를 해결했다. 연구팀의 설명에 따르면 이번 소장 상피세포 모델은 단순 배양과 오가노이드의 장점을 합친 것이다. 

논문의 제1저자인 생명연 줄기세포융합연구센터 소속 권오만 박사는 팜뉴스 취재진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기존 2차원 단순 배양은 줄기세포의 분화도가 낮고 약물 대사 효소도 적어 효용 가치가 부족했다”며 “이를 개선한 것이 3차원 오가노이드 기술을 통한 배양인데, 이 배양법도 닫힌 구조로 이뤄져 있어 약물 침투가 어렵다는 단점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연구팀이 개발한 기술은 이 3차원 오가노이드를 2차원화한 장 상피세포를 만드는 것”이라며 “실제 사람 소장 세포와 유사한 형태로 제작하는데 성공했다. 3차원 오가노이드를 2차원으로 바꿀 수도 있고, 또 2차원 형태로 곧바로 제작하는 것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생명연의 소장 상피 모델은 대량배양 및 동결보관도 가능하고, 새롭게 발굴한 분화인자를 이용해 높은 수준으로 인간 소장 조직을 모사할 수 있다. 또 환자에서 유래한 역분화줄기세포(유도만능줄기세포)를 이용한 맞춤형 소장 모델 제작도 가능하다. 환자 별로 맞춤형 모델을 제작해 미리 약물 효용성을 확인할 수 있다는 뜻이다.

연구팀은 이번 기술이 단순히 약 흡수 평가를 넘어 앞으로 제약업계에서 무궁무진하게 활용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앞서의 권 박사는 “우리가 경구 투여하는, 소위 먹는 약들은 상당수 소장에서 흡수 및 대사가 일어난다”며 “장에서 작용하는 약뿐만 아니라 대부분 경구제에 대한 흡수 및 대사 과정을 이번에 개발한 상피 세포 모델로 확인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약뿐만 아니라 건강기능식품 평가에도 쓰일 수 있다”며 “제약사들이 건강기능식품 시장에 뛰어들면서 흡수율을 높이는 연구를 활발히 진행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 이번에 연구한 소장 상피 모델이 소장 내 흡수 과정을 시뮬레이션하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