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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스케어 영성] 구원의 노래
[헬스케어 영성] 구원의 노래
  • 신용섭 기자
  • toyzone@pharmnews.com
  • 승인 2021.02.08 06: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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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양 신부 (가톨릭대학교 교수, 교황청 국제신학위원)
건강과 영성 11
사진제공=오상일 교수

작년 12월 초, 서울의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 <구원의 노래>(Song of Redemption)라는 제목으로 개최된 오상일 교수의 기획전시회에 다녀온 일이 있다. 제목에서 드러나는 바와 같이, 그 전시회는 인간의 실존적이고도 매우 심오한 주제를 다루었기에 필자는 큰 관심 속에 주의 깊게 작품들을 살펴보았다. 이번 전시회에서 드러난 작가의 작품 세계에는 자연을 파괴하는 인간의 탐욕과 더불어 인간의 근원적인 고독, 소외, 불안 그리고 슬픔과 한(恨) 등에 대한 예리한 통찰이 담겨 있었다. 아마도 이는 작가가 한국전쟁이 발발한 1950년에 태어나 분단과 이산의 아픔을 직, 간접적으로 겪으며 살아온 삶의 배경과도 연관된 것인지 모른다. 사실, 삶의 매서운 시련과 고통 속에서 인간의 본성과 그 운명에 대한 통찰이 더욱 깊어지는 법이다.

거기에서 특히 필자의 눈길을 끈 것은 전시의 기본적이며 전체적인 구도가 실낙원(失樂園)과 복낙원(復樂園)의 대비 구조를 통해 이루어진 점이었다. 영국 시인 존 밀턴(John Milton, 1608-1674)이 쓴 동명의 대서사시를 떠오르게 하는 이 대비 구조에 입각해 각기 전시된 작품들은, 인간의 탐욕과 그로 인한 파멸의 내러티브를 인간의 유토피아적 이상에 대한 희망과 교차시켜 잘 묘사한다. 그리고 실낙원과 복낙원이 교차되는 사이에는 바로 ‘심판’이란 작품이 자리하고 있었다. 즉, 심판은 실낙원과 복낙원의 매개 역할을 하는 것이었다.

‘실낙원’에 위치한 작품들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은 <나무를 위한 레퀴엠>으로서, ‘개발’이란 미명 하에 인간의 탐욕에 의해 파괴되어가는 생태 위기의 심각한 문제를 드러내고자 한 것이었다. 그래서 이는 ‘나무’라는 소재를 죽음의 주제와 연결시켜 형상화하고 있다. 그리고 바로 그 옆에는 <가리옷 유다>라는 작품이 있었다. 자신의 배신에 대한 죄책감으로 인해 스스로 목매달아 자살하는 유다의 모습을 형상화시킨 것이었다. 어쩌면 언젠가 자기 생애의 모든 결과를 보면서 괴로워하는 것 자체가 인간에게는 하나의 심판일 수도 있다.

‘실낙원’은 인간의 잘못으로 인해 깨어진 본래의 아름다운 상태에 대한 그리움과 안타까움을 암시한다. 어쩌면 이는 우리가 잘못된 행동이나 습관으로 인해 건강을 해치고 병이 든 다음에야 건강했던 시절을 그리워하는 것과도 같은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그처럼 괴로워하는 것 자체가 일종의 ‘심판’이라 한다면, 우리는 이제 다시 찾은 낙원, 즉 ‘복낙원’을 갈망하게 된다. 다시 예전처럼, 혹은 그보다 더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기를 갈망하는 마음이 ‘복낙원’의 이상에 담겨 있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작가인 오상일 교수는 말한다. “모든 인간의 존재는 실존의 감옥에 갇혀 있는 죄수와 다름없다, 우리는 죄, 가난, 질병, 증오, 불평등으로부터의 해방을 희구한다.”

여기에서 인간 실존의 구원 문제에 대해 모두 논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질병으로부터의 해방을 갈구하는 것 역시 구원을 향한 인간의 희망 중 하나라고 말할 수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신약 성경 복음서에서는 치유 기적의 구원론적 의미가 잘 드러난다. 즉, 병마로부터의 치유를 체험하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 구원을 앞당겨 체험한 것과도 같은 것이라 할 수 있다.

오상일 교수의 전시회에서는 이러한 ‘복낙원’ 주제를, 천사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여러 흰 말들이 뛰노는 조각 작품으로 묘사하였다. 천사는 물론이고, 흰 말이라는 인상과 개념 역시 환상과 꿈을 암시하는 소재일 수 있다. 흔히 말하는 ‘백마 탄 왕자님’이란 표현처럼 말이다. 필자는 이 작품을 감상하면서, 문득 몇 년 전에 제주올레 14-1 코스를 홀로 걷던 때가 기억났다. 제주 중산간에서 나무와 덩굴이 마구 엉클어져 돌과 함께 어수선하게 된 수풀 같은 곳을 ‘곶자왈’이라 부르는데, 예전에는 농사를 지을 수 없어 쓸모없는 땅으로 여겼다가 지금은 생태계의 보고로 간주된다. 올레 14-1 코스는 제주의 그러한 여러 곶자왈 지역 중 저지 곶자왈을 지나가게 된다. 곶자왈 속 좁고 어두운 오솔길을 한참 걸어 마침내 사방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문도지 오름에 올라서게 되었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에 보았던, 오름의 정상 주변에 방목되어 있던 여러 흰 말들의 모습이 전시회에서 반추되어 떠올랐다. 제주의 하늘을 휘감는 거친 바람과 흩날리는 안개 속에서 아름다운 곶자왈을 배경으로 한가로이 풀을 뜯던 흰 말들의 모습은 마치 신비로운 낙원의 모습을 연상케 하였다. 사실, 잃어버린 낙원을 그리워하는 것은 모진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꿈이기도 하다. 그때 그 순간만큼은 마치 그 다시 찾은 낙원에 서 있는 듯 초현실적인 황홀한 느낌에 사로잡혀 한참 동안 발길을 옮길 수가 없었다. 그리고 오상일 교수의 전시회에서 복낙원의 <말> 작품을 보는 순간, 바로 그러한 느낌이 다시 떠올랐던 것이다.

인간은 노화의 과정을 거치면서 필연적으로 상실의 체험을 할 수밖에 없다. 현대 의과학의 놀라운 발전으로 인해 어느 정도 복구가 가능해진 경우도 있지만, 그 상실이 물리적으로 회복되지 않는 비가역적 경우가 더 많다. 하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잃어버린 낙원의 회복을 꿈꾸어볼 수 있으며, 그것을 ‘온전함’(wholeness)이라 표현할 수 있다. 이 ‘온전함’이 곧 모든 전인적 돌봄(holistic care)의 최종 목표인 것이다. 현재의 질병의 고통을 넘어서 온전함을 향해 나아가는 것은 모든 환자들, 아니 모든 인간의 꿈과 이상이라 할 수 있다. 그 온전함을 향해 나아가는 것은, 땅 위를 힘겹게 걸어가는 물리적인 여정인 동시에, 하늘을 바라보며 나아가는 영적(spiritual) 여정이 될 것이다. 그 아름다운 여정 가운데 우리가 함께 나누는 모든 선한 생각과 마음들이 모여, 마치 전시회의 주제처럼 하나의 ‘구원의 노래’가 되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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