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대웅제약과 메디톡스의 보툴리눔 톡신 제품

길고 길었던 메디톡스와 대웅제약 간 보툴리눔 톡신 분쟁이 대웅제약의 ‘21개월 판매 정지’로 일단락됐다. 제약업계는 우선 오랜 분쟁이 마무리돼 다행이라는 입장이다. 하지만 누가 승자인지에 대해서는 업계의 의견이 갈렸다. 질병관리청이 최근 진행한 보툴리눔 톡신 균주 관련 조사와 맞물려, 업체마다 이번 소송을 어떻게 받아들이는 지가 달라졌다.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는 16일(현지시간) 메디톡스와 대웅제약 간 보툴리눔 균주 영업비밀 침해 소송에 대한 최종판결에서 대웅제약의 보툴리눔 톡신 제제 ‘나보타(미국명 주보)’가 관세법 337조를 위반한 제품이라 판결하고, 향후 21개월 간 수입 금지 명령을 내렸다. 예비판결의 10년보다는 기간이 많이 축소됐지만, 판매정지 자체는 그대로 유지된 것.

최종판결문에서 ITC는 “대웅 나보타의 21개월 수입 금지 및 미국 파트너사 에볼루스가 보유한 나보타 재고 중 어떤 것도 미국에서 21개월간 판매할 수 없다”며 “미국 대통령 심사 기간 중 나보타를 수입·판매하려면 1바이알당 441달러의 공탁금을 내야 한다”고 말했다.

소송 당사자인 메디톡스와 대웅제약은 각자 자신들이 승리했다는 입장이다. 메디톡스는 대웅제약이 유죄판결에 대해 사과하고 도의적 책임을 져야 한다고 밝힌 반면, 대웅제약은 ITC가 예비판결을 뒤집고 균주가 영업비밀이 아니라고 판결했다는 반응이다.

메디톡스 관계자는 “이번 판결로 대웅제약의 유죄판결이 확정됐다”며 “미국 대통령의 승인 절차만 남겨뒀는데, 미국 대통령이 ITC 최종판결을 거부한 사례는 지난 33년간 단 1건에 불과했다”고 말했다.

이어 “대웅제약은 법적 책임 외에도 그동안 오랜 기간 허위주장을 한 것에 대한 도의적 책임을 져야 한다. 대웅제약이 미국 연방순회법원에 항소하더라도 혐의가 바뀔 가능성은 거의 없다. 한국 법원과 검찰에서도 동일한 결론에 도달할 것으로 확신한다”고 했다.

대웅제약 관계자는 “이번 판결에서 수입 금지 기간이 줄어든 건 메디톡스가 최초에 문제를 제기했던 균주의 영업비밀 침해 여부에 대해, ITC가 균주는 영업비밀이 아니라고 판결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21개월 수입 금지의 경우 공정 기술의 유사성으로 인해 내려진 판결인데, 최근 메디톡스가 원액 성분 및 약효실험 조작 등으로 문제를 일으킨 반면, 우리는 FDA 실사 이후 국제규격 인증과 FDA 판매 허가를 받았다”며 “공정이 같다면 자사가 결코 미국 규제당국의 허가를 받지 못했을 것이다. 우선 대통령거부권 추이를 본 뒤 연방순회항소법원 항소 등을 진행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제약업계도 이번 분쟁의 승자가 누구인지에 대해 각기 다른 시각을 드러냈다.

제약사 관계자 A씨는 “우리는 메디톡스의 승리로 보고 있다. 대웅제약은 자신들이 뒤집었다고 했지만, 훔쳐갔냐 안 훔쳐갔나 여부는 결국 훔쳐간 것으로 결정됐다고 본다”며 “메디톡스가 식품의약품안전처의 판매중지 처분으로 시장을 일부 빼앗겼는데, 판매중지에 대한 집행정지 가처분 인용과 이번 ITC 승소를 무기로 시장을 되찾아올 가능성이 있다. 메디톡스의 주가나 실적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이어 “미국 수입사인 에볼루스의 경우 주주들이 소송을 진행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며 “에볼루스가 이에 대한 대책으로 대웅제약에 소송을 걸 가능성도 있다. 소송비용이나 손해배상 처리를 해줘야 할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대웅제약 측은 “현재 미국에서 진행 중인 에볼루스 소송의 경우 주가가 떨어져서 진행된 소송인데, 이번 ITC 판결 이후 오히려 에볼루스의 주가는 올랐다”며 “소송 문제는 자연스럽게 해소될 것으로 보인다. 대웅제약과 에볼루스의 협력체계는 현재도 공고히 가져가고 있다”고 해명했다.

또 다른 제약사 관계자 B씨는 “이번 판결은 대웅제약의 승리라고 생각한다. 메디톡스는 처음에는 균주를 놓고 문제를 제기헀는데, ITC가 이번 판결을 통해 균주는 영업비밀이 아니라고 못을 박았다”며 “기술 공정 유사성 관련 문제의 경우 만약 대웅제약이 실제로 메디톡스 기술을 도용했다면 최근 메디톡스에서 발생한 문제가 대웅제약에서도 터져야 했는데 그렇지 않았다. 아마 대웅이 항소를 한다면 이 부분을 집중 공략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결국 최종 승자는 앨러간과 애브비라고 본다. 이들이 메디톡스를 앞세워 대웅재약의 미국 시장진입을 막은 것”이라며 “메디톡스는 이번 기회로 균주 도용을 내세워 국내 시장의 독점을 도모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최근 질병관리청이 보툴리눔 톡신 관련 회사를 전수 조사중인 것도 메디톡스의 문제 제기에서 시작된 일”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질병청은 최근 보툴리눔 균주를 보유한 국내 업체 20여곳을 대상으로 ‘2020년 보툴리눔균 보유 현황 조사 협조 요청’ 공문을 보냈다. 이번 조사에서는 보툴리눔 균주 취득 경위, 보안 관리 현황, 병원체 특성 분석 여부 등을 확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이번 조사에서는 기존에 묻지 않았던 균주 취득 경위나 염기 서열 등을 조사해 논란이 됐다.

질병청의 전수 조사에 대해서도 업계의 입장은 엇갈렸다. 앞서의 A씨는 “국가 차원에서 보툴리눔 톡신 균주에 대해 정확하게 보겠다는 것”이라며 “메디톡스가 주장하는 바와 같은 맥락으로 가고 있다. 국내 보툴리눔 톡신 취급 업체에 대한 균주 출처 검증 문제가 본격적으로 부각될 것으로 보인다”고 예상했다.

앞서의 B씨는 “이번 조사는 원래 정례적으로 균주 관리 및 보안 부분을 확인하는 절차인데, 메디톡스가 계속 균주 도용을 주장하니 정부에서 균주 출처까지 조사에 나선 것”이라며 “지금까지 전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균주 정보를 공개한 일이 없고, 메디톡스조차도 유전자은행(GenBank)에 타입A라는 사실을 입증하기 위해 일부 서열만 공개했을 뿐이다. 메디톡스가 어떤 생각으로 계속 문제를 주장하는지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한편 ITC가 메디톡스와 대웅제약의 보툴리눔 톡신 균주 분쟁과 관련 메디톡스의 손을 들어준 뒤, 대웅제약은 17일 주식 시장에서 전날보다 가격제한폭(30.00%)까지 뛰어오른 17만5500원에 마감하면서 52주 신고가를 새로 썼다. 반면 승소한 메디톡스는 5.60% 내린 20만4000원에 거래를 마쳤다.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이 시각 추천뉴스
랭킹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