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게티이미지
사진. 게티이미지

문재인 정부는 출범 직후, ‘병원비 걱정 없는 든든한 나라’를 지향하며 국민의 의료비 부담을 덜어주는 ‘문재인 케어’를 추진했다. 비급여 항목의 급여화를 통해 건강보험 혜택 범위를 넓히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최근 5년간 비급여 의약품 시장은 계속해서 커져만 갔고, 비급여 진료비를 적정하게 부담했는지를 확인할 수 있는 ‘비급여 진료비 확인 요청’ 건수도 증가한 것으로 집계되면서 환자들의 부담은 여전한 것으로 드러났다.

문재인 정부는 지난 2017년, 2022년까지 총 30조 6천억원의 예산을 투입해 국민건강보험 보장성을 확대, 현재 64% 수준인 보장률을 2022년까지 70%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것을 주요 골자로 하는 ‘문재인 케어’ 정책을 발표했다.

문재인 케어의 핵심은 바로 ‘비급여의 급여화’다. 선택 비급여를 제외한 모든 비급여 항목을 급여화해 국민들의 과중한 의료비 부담을 줄이고, 건강보험의 혜택 범위를 넓히겠다는 것이다. 다만, ‘등재 비급여’로 분류된 항목들은 ‘예비급여’라는 항목을 만들어 본인 부담률을 차등 적용하고(50~90%), 3~5년 주기로 재평가해 급여권 포함, 예비급여 유지, 비급여로 전환을 판단하겠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이러한 정부의 정책에도 불구하고, 비급여 의약품 공급 규모는 최근 5년간 꾸준히 ‘증가’한 것으로 밝혀졌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완제의약품유통정보통계」에 따르면 비급여 의약품 공급금액은 지난 2015년 8조 6538억원에서 2019년엔 10조 4009억원으로 5년간 무려 20.1%가 증가했다.

특히 요양기관(의료기관·약국·희귀약품센터·보건소 등)에서의 증가세가 눈에 띄었는데, 같은 기간 요양기관에 공급된 비급여 의약품 규모는 2015년 3조 7218억원에서 2019년 4조 9379억원으로 32.7%가 늘었다.

이뿐만이 아니다. 보건의료정보에 상대적으로 취약한 의료소비자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해 지난 2003년부터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시행하고 있는 ‘비급여 진료비확인 제도’ 최근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심평원에 진료비확인을 신청한 건수는 2만 9000여건에 달하고 이를 통해 환급된 액수가 19억 3000만원에 달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실제로 한 온라인 커뮤니티 회원은 “손가락이 찢어져 봉합하러 갔는데, 대뜸 실비 가입 여부를 물어서 그렇다고 답하니 파상풍 주사와 항생제 수액, 엑스레이까지 찍었다”며 “이날 치료비는 총 20만원이 나왔고, 봉합한 이후 이틀 동안 소독을 하러 갔을 때도 항생제 수액과 주사 처방 등을 받아 각각 10만원씩 진료비가 발생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진료비가 너무 많이 나와 회사 앞에 있는 병원을 방문하니, 소독비 7900원 외에는 다른 비용이 생기지 않았다”며 “나중에서야 처음 방문했던 병원의 세부 진료내역을 보니 8만원짜리 비급여 주사제 항목이 들어 있었다. 설명 따윈 전혀 없었다”고 하소연했다.

제약업계에서는 이에 대한 대표적인 사례로 해열·진통주사제 시장을 꼽았다.

익명을 요구한 제약업계 관계자는 “일부 의료기관의 경우, 약물의 효능 면에서 거의 차이가 없는데도 이해관계나 마진 등의 이유로 고가의 비급여 주사제를 사용하고 있다”며 “이에 대한 대표적인 사례가 해열·진통주사제 중 하나인 ‘아세트아미노펜 주사제’ 시장이다”고 말했다.

그는 “아세트아미노펜 주사제는 우수한 효과로 종합병원을 비롯한 다양한 의료기관에서 가장 널리 쓰이는 해열·진통주사제다”며 “이 약제는 제형에 따라 ‘프로파세타몰’과 ‘파라세타몰’로 나뉘는데 전자는 급여, 후자는 비급여 항목이다”고 밝혔다.

이에 더해 “같은 성분을 가진 의약품이므로 약효 면에서는 사실상 차이가 없다”며 “하지만 급여 혜택에 따라 환자가 부담하는 약값은 최소 10배 이상 발생한다. 제형에 따른 사용상의 차이는 있을 수 있지만, 이처럼 환자의 의료비 부담이 눈에 띄게 차이가 나는 경우에도 비급여 의약품을 사용해야 할 당위성이 있는지 의문이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업계에 따르면, 아세트아미노펜 주사제 시장에서 비급여 항목인 파라세타몰은 꾸준한 성장세를 기록하고 있다. 아세트아미노펜 시장규모는 지난 2018년 194억원에서 2019년 307억원으로 58.3% 성장률을 기록했다.

이중 프로파세타몰은 2018년 105억원, 2019년 111억원으로 5.7% 늘어난 데 비해 파라세타몰은 같은 기간 89억원에서 196억원으로 무려 120.2%가 급증했다.

한편, 현재 시판되고 있는 파라세타몰 주사제에는 우성제약의 ‘프로파인퓨전주’(대한약품공업 생산), HK이노엔(구 CJ헬스케어)의 ‘아세트펜프리믹스주’ 등이 있으며 프로파세타몰 주사제에는 영진약품의 ‘데노간주’가 있다.

비급여 의약품에 대한 목소리는 비단 이뿐만이 아니다. 실손보험업계에서도 무분별한 비급여 주사제를 꼬집고 나섰다.

삼성화재는 지난 5월 일선 개원가에 ‘비급여주사제 적정 치료 협조요청’이라는 공문을 일괄적으로 발송했다.

공문에는 처방된 비급여 주사제가 식품의약품안전처의 허가사항에 부합하지 않을 경우 실손의료비 지급이 거절될 수 있다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이러한 사실에 대해 환자들의 문의가 있을 경우, 이를 안내하도록 협조도 요청했다.

삼성화재뿐만 아니라 KB손해보험도 식약처의 허가사항 효능에 부합하지 않는 경우 실손보험금 지급을 거절하는 방침을 고수하고 있으며, 현대해상과 DB손해보험은 현재 지급하고 있지만 추후 보상 제외를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손해보험사들의 이러한 행보에는 최근 몇 년간 비급여 주사제 청구가 급증한 것이 그 배경에 있다.

실제로 2018년 121.8%이던 손해율은 지난해 134.6%까지 뛰었다. 올 상반기에는 132%로 소폭 감소했으나, 코로나19로 병원을 방문하는 사람들의 숫자가 줄어든 것을 감안하면 결코 긍정적으로 볼 수 없다는 것이 업계의 설명이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식약처의 허가사항과 다르게 일선 병원을 중심으로 백옥주사, 마늘주사와 같은 OO 주사제 품목이 남발되는 사례가 증가하고 있다”며 “단순 소견서 외에도 효과를 입증해야만 보험금을 지급할 수 있도록 보상 기준을 강화하는 중이다. 무분별한 비급여 항목이 계속해서 증가할 경우, 실손보험 가입자들의 부담을 늘려 선의의 피해자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라고 전했다.

이 같은 상황에 대해 정부는 비급여 관리체계를 강화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지난달 27일, 제22차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를 열고 ‘제1차 국민건강보험종합계획 2021년 시행계획안’을 보고했다.

계획안에 따르면, 내년 1월부터는 전체 의료기관이 비급여 진료비용을 의무적으로 공개해야 한다. 현재 일부 의료기관에서 시행 중인 비급여 진료비용 공개 시범사업을 확대‧추진하는 것이다. 또한 의료진이 비급여를 진료하기 전에, 환자에게 이에 대한 충분한 설명을 하도록 고지제도를 개선‧시행할 예정이다. 이에 대한 효과는 내년 9월 이후에 조사‧분석해 공개할 방침이다.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이 시각 추천뉴스
랭킹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