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성은아 박사
사진. 성은아 박사

[팜뉴스=이석훈 기자]  면역관문억제제라는 특이한 이름의 항암제들이 있다. 관문억제제라고도 한다. 항체 약물의 일종이다. 억제제라는 이름과 달리, 실제로는 면역 활성화제이다.

면역관문은 면역 세포의 활성화를 억제하는 브레이크와 같은 기능이다. 면역관문억제제는 면역 브레이크를 억제하여, 면역 세포를 활성화시켜서 암세포를 파괴하게 하는 항암제이다. 

관문억제제 (checkpoint inhibitor)에서 관문은 체크포인트를 번역한 단어이다. 관문은 과거에 성벽을 높이 쌓아서 경비를 하던 때에 관에서 지키던 통로나 성문이었고, 요즈음에는 경비소라는 단어를 대신 사용한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하고 엄중하게 관리되는 체크포인트는 판문점이다. 늘 닫혀 있고, 대통령이나 국가 정상 정도는 와야 열린다. 경비가 완전히 뚫린 체크포인트도 있다. 과거 동 베를린과 서 베를린의 경계에 있던 체크포인트 찰리가 그 예이다.

이제 경비 기능은 사라지고 이름만 남은 역사의 현장이다. 대부분의 체크포인트는 이런 양극단에 있지 않고, 특정한 조건에 따라 열고 닫는다.

면역 세포에 있는 체크포인트도 마찬가지이다. 면역세포의 체크포인트는 ‘자기’라고 인식하면 브레이크를 걸어서 면역 세포의 활성을 막고, ‘침입자’라고 인식하면 브레이크를 해제해서 세포의 면역 기능을 회복시킨다.

면역세포에 체크포인트가 있는 이유는 면역 기능의 과도한 활성을 막기 위해서이다. 우리의 면역계에는 세포독성을 가진 세포들이 있다. 이들은 침입자를 파괴하여 제거하는 기능을 한다. 면역세포는 ‘자기’와 ‘침입자’를 구별하는 장치를 가지고 있다.

체크포인트는 이들 장치와 연동하여 작용한다. 면역세포가 ‘자기’에 대하여 독성을 발휘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CTLA-4, PD-1, PD-L1 등이 체크포인트, 즉 면역관문 단백질들이다.

암세포는 생존 전략 중의 하나로서 면역세포의 체크포인트에 ‘자기’라는 위장 신호를 보내어 면역세포 활성에 브레이크를 걸어서 면역 작용을 회피한다. 면역관문억제제는 이러한 위장 전략을 해소하고 브레이크를 해지하여 면역세포의 암세포 파괴 기능을 활성화시킨다.

항체 기술이 처음 등장했을 때, 제약회사들은 암세포에 특이적으로 발현하는 항원에 대한 항체를 개발하면 암세포만 선택적으로 공격함으로써, 효과적이고 부작용이 적은 항암제를 개발할 수 있으리라고 기대했다.

암세포에 집중적으로 발현하는 항원들이 다양하게 발굴되었고, 이러한 표적에 대한 항체로서, 리툭시맙 (상표명 리투산, 암항원 CD20에 대한 항체, 1997 년 FDA 허가), 트라스투주맙 (허셉틴, HER2 항체, 1998년), 세툭시맙 (얼비툭스, EGFR 항체, 2004년) 등이 개발되었다. 하지만 기대와 달리, 그 이상의 표적항암제의 개발은 부진했다.

항체들의 항암 효과가 대체로 좋지 못했다. 이미 개발된 항체 약물들조차 내성이 문제가 되었다. 환자들은 치료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암을 재발하곤 했다. 암세포는 생존 전략이 뛰어나서, 표적항원의 기능을 우회해서 살아 남고 증식하는 방법을 강구하기 때문이다.

암 표적항원에 대한 항체를 ‘마법의 탄환’으로 사용한다는 신개념이 항암제 개발을 주도하는 동안, 신체의 면역기능을 활성화시키는 방법은 진부하게 여겨졌다. 인터페론을 비롯하여 싸이토카인들이 암 환자들에게 오랫동안 사용되어 왔다.

이들은 면역 세포를 활성화시키는 작용을 했는데, 효과가 제한적이고, 면역세포를 비특이적으로 활성화함에 따라 부작용을 나타냈다. 싸이토카인을 대신하여 항체를 이용해서 면역세포를 직접 활성화시킨다는 아이디어는 표적항암제에 비해 특이성의 면에서 매력이 덜했다. 개발한다고 해도, 과도하게 면역세포가 활성화됨으로써 오는 부작용이 우려되었다.

그런 상황에서, 면역세포에 있는 CTLA-4에 대한 항체 (이필리무맙, 상표명 여보이)가 악성 흑색종에 적용하도록 2011 년에 최초의 관문억제제로 허가를 받았다.

막상 개발해 보니 관문억제제는 효과가 좋을 뿐 아니라, 표적항암제와 달리 항암 효과가 지속적이어서 환자의 장기적 생존률도 높았다. 등소평의 흑묘백묘론이 빛을 발해서, 고양이가 검든 희든 쥐만 잘 잡으면 되고, 항암제도 진부한 기전을 사용하든 참신한 기전을 사용하든 효과만 좋으면 될 일이다.

상황이 바뀌어서, 제약회사들의 관심이 관문억제제로 쏠리게 되었다. 그리고, 관문억제제는 가장 혁신적이며 항체 치료의 주종을 이루는 항암제가 되었다.

면역관문억제제로는▲이필리무맙(상표명 여보이, CTLA-4 항체, 2011년 FDA 승인) ▲니볼루맙(옵디보, PD-1 항체, 2014년) ▲펨브롤리주맙(키트루다, PD-1 항체 2014 년) ▲아테졸리주맙(티센트릭, PD-L1 항체, 2016년) ▲아벨루맙(바벤시오, PD-L1 항체, 2017년) ▲더발루맙(임핀지, PD-L1 항체, 2017년) ▲세미플리맙(리브타요, PD-1 항체, 2018년) ▲도스탈리맙(젬페릴, PD-1 항체, 2021년) 등이 있다.

2021 년 가장 큰 매출을 올린 항암제 10 개 중에 키트루다, 옵디보, 티센트릭 등이 순위에 오르고, 특히 키트루다는 가장 큰 매출을 올린 약이며, 옵디보가 이와 최고 순위를 경쟁한다. 또한, 항암제 개발 임상시험의 삼분의 2를 면역세포의 활성을 조절하는 약물 개발이 차지하고 있다.

관문억제제는, 단독으로 사용하거나, 다른 항암제와 함께 사용하여 치료의 효과를 나타낸다. 관문억제제는 이전에 치료가 어려웠던 암에도 효과를 보인다.

관문억제제는 적용증을 계속 확대하여, 단독으로, 혹은 복합 치료제로서 50 개 정도의 암에 사용한다. 효과가 지속적으로 작용하여, 환자의 5 년 생존률이 높다. 관문억제제도 부작용이 있다.

예측한 대로, 면역세포가 과도하게 활성화되어, 환자는 자가면역과 같은 부작용들을 나타낸다. 대부분 비교적 가벼운 부작용을 겪지만, 일부는 심각한 증상을 겪는다. 또한, 같은 암에 적용해도 모든 환자가 관문억제제에 반응하지는 않는다. 암환자들의 일부에서만 효과가 있고, 어떤 환자에게는 효과가 없이 부작용을 나타낸다. 

관문억제제는 최근 또 하나의 혁신을 기록한다. 키트루다의 효과가 좋은 환자들의 특징을 조사한 결과, 그들이 가진 암세포에 유전자 변이 정도가 특히 높은 경우였다.

암세포는 정상세포가 변질된 것인데, 유전자의 변이가 특히 심하면 변이 단백질의 발현이 많아지고, 따라서 키트루다로 활성화시킨 면역세포가 변이 단백질이 많은 암세포를 침입자로 쉽게 인지할 것이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그래서 다양한 종류의 암 환자에 대하여 그들의 암세포에 유전자 변이 정도가 아주 심한 경우를 선별해서 키트루다의 효과를 보는 임상시험이 수행되었고, 가설에 부합하는 환자의 반응을 얻었다.

이를 근거로 2017 년 FDA는 키트루다를 ‘유전자 변이가 특히 심한 고형암’ 환자들에게 사용하도록 최초의 ‘애그노스틱’ 항암제로 허가했으며, 2021년 젬페릴도 유사한 적용을 위해 허가되었다.

‘애그노스틱’ 항암제란, 암의 종류에 근거하지 않고, 암을 일으키는 기전에 입각하여 적용하는 항암제이다. ‘애그노스틱’은 신학 용어이다. 유신론은 특정 신이 존재한다고 한다. 무신론은 신이 없다고 한다. 애그노스틱은 신이 있는지 없는지 모르고 상관하지 않는다고 한다.

항암치료의 세계에서 신은 암이다. 애그노스틱 항암제는 폐암이냐, 유방암이냐, 직장암이냐가 중요하지 않다.

전통적인 항암제는 암이 어느 조직, 어떤 세포에서 기원하는지 병리학적 특징에 따라서 적용하지만, 애그노스틱 항암제의 경우에는 암을 일으키는 원인이 특정 분자생물학적 변화 (키트루다와 젬페릴의 경우 유전자 변이가 특히 높아지는 변화)와 관련이 있는가에 따라 적용한다.

암세포의 분자생물학적 특징이 부합되면 치료제를 적용할 수 있게 되므로, 약물 개발이 현실적으로 어려운 희귀암의 경우에도 애그노스틱 약물에 의한 치료의 기회가 있게 된다. 분자생물학적 병인이나 바이오 마커의 정보에 따라 적용하는 약물의 등장은 항암치료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변화를 예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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