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메디헬프라인 수석연구원 성은아 박사
사진. 메디헬프라인 수석연구원 성은아 박사

항암제 킴리야가 보험 혜택을 받게 됐다. 노바티스 킴리아의 약값은 대략 5억 원이다. 킴리아뿐 아니라 항암신약은 비싸다. 면역항체이든 경구용 약물이든 대부분 연간 1억 이상의 약값을 필요로 한다. 항암제뿐만이 아니다. 다른 전문치료제도 비슷한 수준이어서 미국의 경우 처방약의 가격이 연간 평균 1억 원이 든다는 통계가 있다.

한 알에 120 만 원짜리 간염 약 (소발디. 한국에서는 보험 급여가 되어서 한 알이 13만 원)이 있고, 한 알에 10 만 원짜리 류머티스성 관절염 약 (젤잔즈. 한국에서는 보험 급여가 되어서 한 알에 1만 2천원~ 2만 2천원)이 있다. 약값은 왜 그렇게 비싼가.

먼저, 신약 개발의 패러다임이 과거와 다르다. 질병의 진행과 직접 관련되는 바이오마커 (생체지표)에 대한 정보가 많아지면서 신약 개발은 질병 관련 바이오마커를 직접 공략하는 데에 집중한다.

면역 제제, 생물학적 제제, 유전자 치료, 맞춤형 신약, 정밀 의학 등의 신기술이 약물 개발에 사용된다. 치료 효과가 높고, 부작용이 상대적으로 적다. 발달된 진단 방법을 이용해서 필요한 환자만을 가려서 투약함으로써 치료의 효율을 높이고, 불필요한 투약을 막는다. 신약 개발은 시간도 오래 걸리지만, 성공률도 낮다.

초기 개발 단계부터 시작해서 세 차례의 임상시험을 통과하여 최종적으로 신약 승인을 받는 약물은 일부에 불과하다. 신약 개발의 비용은 해마다 증가한다. 과거 10 년 동안 미국 FDA 승인을 받은 신약의 평균 개발 비용은 1조 원에서 1.5조 원에 이른다고 추정한다.

항암제를 예로 들어 보자. 최근의 항암제는 암 특이 표적 중심, 환자 맞춤형의 특화 전략으로 개발된다. 암세포를 포함하여 증식하는 세포를 무차별 사멸시키는 방식이 아니라, 특정 암세포에 공격을 집중하는 방식이다.

비유하면, 2차 세계 대전 당시 피아를 가리지 않고 융단폭격하던 방식이 아니라, 걸프전 당시 쪽집게처럼 적을 가려서 타격하는 전략이다. 특정 암세포에만 밀집된 암 표적 항원을 공격하거나, 암세포를 공격하는 면역세포를 활성화시키거나, 암세포만 선택적으로 사멸시키거나, 암세포와 관련된 특정 신호전달을 억제시켜 증식을 막는 등, 방법은 다양하다.

특정 환자, 특정 암에 대하여 특화하여 투약하니, 수혜 환자 수가 상대적으로 적다. 적은 수의 환자가 개발 비용을 부담한다.

킴리아는 항암제 중에서도 가장 비싸다. 킴리아는 환자 맞춤형 치료약이면서 유전자 치료법이다. 환자의 면역 T 세포를 유전자 조작해서 면역 능력을 증강시키는 방법이다.

특정 환자가 치료를 받기로 결정하면, 환자의 혈중의 면역 T 세포를 분리해서, 유전자 조작하여 암세포를 잘 인지하고 공격하도록 성질을 바꾼 다음, 다시 환자에게 주입함으로써 환자가 암세포와 싸울 수 있는 면역 능력을 증강시킨다.

생산부터 품질 관리 과정까지 시설과 장비, 인력이 특정 환자 한 사람만을 위해서 투입된다. 환자 한 사람만을 위한 방법이니, 대량 생산은 아예 불가능하다. 약값이 비쌀 수 밖에 없다.

킴리아가 비싼 또 다른 이유는 킴리아의 혜택을 받을 수 있는 환자의 수가 적기 때문이다. 킴리아를 투여받는 대상은 혈액암 중에서도 '재발성 또는 불응성의 급성 림프구성 백혈병' 환자와 '재발성 또는 불응성의 미만성 거대 B 세포 림프종암' 환자이다.

한국의 경우 급성 림프구성 백혈병 환자와 미만성 거대 B 세포 림프종암 환자의 수는 모두 합해서 수천 명으로 추산된다. 환자는 먼저 화학 요법, 방사능 요법, 이후 면역 제제 등으로 치료받으며, 대부분 치유가 된다. 재발하는 경우, 골수 또는 줄기세포 이식이 필요하기도 하다.

이상의 치료 방법으로도 낫지 않거나 재발하여 다른 치료의 여지가 없는 경우가 있다. 이 때에 킴리아를 시도한다. 소수의 환자가 킴리아의 개발 비용을 감당해야 하니 치료비가 비싸다.

지난번 글에서 아두카누맙의 약값에 대해서 썼다. 바이오젠이 아두헬름이라는 상품명으로 출시한 이 약의 1 년치 약값은 2만 8200 달러, 우리 돈으로 대략 3천 3백만원이다. 그나마, 처음 5만 6000 달러로 책정되었다가, 최근 절반으로 낮춘 가격이다. 그동안 치매약 개발에 워낙 많은 돈이 투입된 탓이다. 그래도 치매신약의 값은 항암제 가격에 비하면 아주 저렴하다. 대상 환자 수가 많아서 개발비 보전의 부담이 분산된다. 언젠가 꿈의 치매약이 마침내 개발되면, 상당한 가격표를 달고 나올 수 밖에 없다. 치매약 개발이 늦으면 늦을 수록 누적된 개발비가 반영되어 약값은 높아진다. 해마다 늘어나는 치매 환자 숫자와 필요한 약값을 계산하면, 치매 국가 책임제라는 말은 역설적이게도 치매 신약이 나오기 전까지만 할 수 있는 말일지도 모른다.

희귀병에 쓰는 약값은 비싸다. 개발비를 부담할 환자 수가 적기 때문이다. 바이오젠의 스핀라자는 선천적으로 유전자 이상이 있는 척수성 근위축증 환자에 쓰는 약이다. RNA 약물을 투여하여 환자의 변이된 유전자도 제대로 된 단백질을 만들어 내도록 보정한다.

첫 해에 6억 원, 이후 매년 3억 원의 약값이 든다. 평생 투약해야 한다. 국내 건강보험 적용을 받는 가장 비싼 약이다. 노바티스의 졸겐스마는 세계에서 가장 비싼 약물이다. 한국에서도 허가를 받았다. 역시 선천적으로 유전자 이상이 있는 척수성 근위축증 환자에 쓰는 약이다.

변이된 유전자를 대체하여 기능할 수 있도록 정상 작동하는 유전자를 추가적으로 환자에게 넣어 주어 손상된 기능을 근본적으로 교정하는 유전자 치료법이다. 치료비는 25억 원이지만, 치료 효과가 장기적으로 지속되니 스핀라자와 경쟁이 가능하다.

약값은 신약의 혁신성에 대한 보상을 반영하여 책정된다. 다시 말하면, 경쟁 약이 없으면 비싸다. C 형 간염은 희귀병과는 거리가 멀다. 한국에서만도 해마다 수만 명이 치료를 요하는 병이다.

길리어드의 소발디는 C 형 간염에 대하여 다른 항바이러스제와 비교하여 월등한 치료 효과가 있다.  한 알에 1000 달러 (120 만 원)이고, 12-24 주 투여가 필요하며, 이에 따라 필요한 약값은 1억 원에서 2억 원이 든다. 한국에서는 제약회사의 공급가가 그보다 낮고 보험급여도 되어, 1 정당 13만 원 치료를 위해서 총 1천만 원 정도가 든다.

약물 개발이 표적 특화형, 환자 맞춤형, 정밀 의학으로 바뀌고, 새로운 치료 방식이 개발되면서, 신약 가격은 브레이크 고장난 자동차처럼 폭주한다. 접근이 불가능할 정도로 비싼 약값은 한국뿐 아니라 모든 나라가 공통으로 직면하고 있는 문제이다.

경제 규모, 규제 방식과 의료 보험 체계에 따라 각국은 나름의 방식으로 대응한다. 환자에게 있어서 투약의 기회는 생과 사 또는 삶의 질이 걸린 문제이다. 의사는 치료를 해야겠는데 약값 때문에 하지 못한다. 보험 당국은 의료 비용을 관리해서 다수의 환자가 혜택을 보게 해야 한다.

제약회사는 개발비를 보전하고 혁신에 대한 보상을 받아야 신약 개발에 투자할 수 있다. 치료 기회의 확대냐, 비용의 규제냐를 고민하는 동안에도 신약 개발의 패러다임은 거침없이 진화하고, 의료 환경은 계속 바뀐다.

△ 성은아 박사 약력

이화여자대학교 약학대학 학사
미국 뉴저지 주립대 박사
1998-2011 미국 반더빌트 대학교/ 예일 대학교- 뇌신경계 작용 약물 기전 연구
2011-2015  한국과학기술연구원-뇌신경전달 회로 연구
2018-현재 메디헬프라인(주) 약물 개발 연구, 메디헬프라인 수석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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