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메디헬프라인 수석연구원 성은아 박사
사진. 메디헬프라인 수석연구원 성은아 박사

코로나 바이러스 팬데믹 때문에 과거에 일어났다는 스페인 독감 팬데믹도 그리 생소하지 않은 역사의 한 장면이 되었다. 스페인 독감은 20 세기 초반, 좀더 정확하게 1918 년에 인플루엔자 바이러스가 원인이 되어 세계적으로 유행했던 호흡기 질환이다.

유행병은 그보다 이른 1916 년 경에 유럽에서 시작되었다. 독감은 당시 치루고 있던 제 1차 세계대전을 통해서 유럽 전역으로 확산되었다. 독감이 미국으로 전파되면서 '스페인 독감'이라는 이름이 붙었는데, 사실 스페인은 이름을 잘못 빌려준 셈이다.

스페인 독감이 유행했던 20 세기 초에 우리에게는 다소 생소한 또 다른 팬데믹이 있었다. 뇌염이 1920 년대 초반에 세계적으로 유행했다. 1916 년에 장 르네 크루세라고 하는 프랑스의 병리학자가 1차 세계대전에 참가한 프랑스 군인들 사이에 뇌염이 유행하고 있음을 처음 학회에 보고했다.

다음 해에 폰 에코노모라고 하는 오스트리아의 신경정신과 의사가 비엔나에 무기력증을 동반하는 뇌염이 유행함을 학회에 보고하면서, 환자들의 특이한 증상들에 근거하여 '기면성 뇌염'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뇌염은 유럽 전역과 북미, 중남미로 1920 년대 초반에 유행처럼 퍼져 나가서 1백만 명 이상의 환자가 발생하고나서 갑자기 잦아들었다. 이후 기면성 뇌염이 간헐적으로 발생하기는 했지만, 다시 집단 유행한 적은 없었다.

폰 에코노모의 보고에 따르면 환자들은 급성으로 뇌염에 걸려서 과도한 수면, 의식이 몽롱함, 무기력함, 운동 실조, 근육 움직임이 부자연스럽거나 경직됨, 불수의적 운동, 경련과 떨림, 우울증 또는 조울증 등의 정신질환의 발작, 기억 감퇴 등 다양한 증상을 나타냈다.

뇌염은 이후 만성으로 진행되어 정신질환이 되거나, 파킨슨병이나 치매의 증상으로 발전했다. 특히 증상의 추적이 비교적 용이한 파킨슨병은 당시 뇌염의 동시성 또는 후발성으로 생기는 동반 질환으로 흔히 함께 언급된다.

결론부터 말하면 스페인 독감이 1920 년대 초의 뇌염의 유행을 초래했다는 직접적인 증거는 없다. 요즘처럼 진단 기술이 발달하지 못했으므로, 뇌염이 어떤 원인 때문에 유행했는지조차 밝혀진 적이 없다. 단지 정황상 독감과 뇌염의 유행이 서로 연관되었을 거라는 추측은 아직까지 이어진다.

▲환자들이 독감에 걸린 후에 뇌염 증상을 보였다는 점 ▲스페인 독감의 유행과 뇌염의 발생이 시기적으로나 지역적으로 서로 맞물린다는 점 ▲이 시기에 발생한 파킨슨병 환자들의 발병 나이가 평균 30대로 다른 시기의 환자들에 비해서 현저하게 낮아서 이들의 파킨슨병이 환자의 내재적 요인에 의해서가 아니라 어떤 특별한 외부적 원인에서 기인했을 것이라는 정황들이다.

당시 남태평양 한 가운데 사모아 제도에도 스페인 독감이 퍼졌다. 1918 년 사모아 섬에 스페인 독감이 퍼져서 많은 환자들이 죽었으며 이후 기면성 뇌염 환자들이 속출했다. 반면, 여기에서 불과 64 km 떨어진 미국령 사모아 섬에서는 방역이 철저해서 스페인 독감이 유행하지 않았으며, 뇌염도 그리 발생하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스페인 독감과 뇌염의 유행을 서로 연관시켜 보는 가장 큰 이유는 이런 정황상의 추측보다, 바이러스 감염이 실제로 뇌염, 즉 뇌의 염증을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뇌에 염증이 있으면, 뇌에 있는 신경 세포나 면역 세포가 자극받는다. 염증이 병을 일으키는가, 병이 염증을 일으키는가에 관한 논의를 떠나서, 염증이 있으면 신경이 쇠약해진다. 쇠약해진 신경들이 기능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신경계가 교란되면서 진행되는 병들이 파킨슨병이나 치매와 같은 퇴행성 뇌질환이다.

파킨슨병은 근육을 조절하고 운동을 담당하는 신경계가 퇴행하여 기능을 하지 못하고 교란되어 생기는 병이고, 치매는 인지, 기억, 판단을 담당하는 신경계가 퇴행하여 기능을 하지 못하고 교란되어 생기는 병이다.

그래서 20 세기 초에 뇌염과 그에 따른 파킨슨 병이 한동안 세계적으로 발생했다가 가라앉은 이유를 바로 직전에 있었던 스페인 독감 팬데믹과 연결시키는 가설의 논리적 근거가 여기에 있다.

굳이 백 년전의 이야기를 되새기는 이유는 코로나 바이러스의 폭풍이 지나간 후 시간이 경과하여 뒤늦게 다른 증상들이 나타날 가능성, 특히 뇌신경계에 후유증이 있을까하는 우려 때문이다.

코로나 바이러스는 호흡기를 감염시켜 질환을 일으키지만 환자는 흔히 두통, 어지러움, 근육통, 무기력증, 미각 감퇴, 후각 감퇴, 후각 이상 등 신경계와 관련된 증상도 호소한다. 코로나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증상이 심한 경우, 뇌혈관계의 미세 출혈이나 부종, 염증, 발작, 뇌졸중, 혼수, 섬망 등이 나타난다.

그러나 경미한 증상만을 겪은 환자에게서도 뇌신경의 손상이 있을 수 있다는 보고가 있다. 경증의 감염 증상을 겪고 완치되었으나 이후에도 후각 이상이 계속된 젊은 환자가 있었는데 뇌영상 (기능성 자기공명영상) 촬영을 통해 뇌에서 후각을 담당하는 신경계가 반응하지 못하고 기능이 손상되어 있음을 확인했다고 한다.

미각 감퇴나 후각 감퇴는 고열, 기침과 함께, 코로나 바이러스에 감염된 환자들이 경험하는 가장 흔한 증상이다. 환자들 절반 이상이 스스로 후각 감퇴를 경험한다고 진술하며, 병원에서 후각 기능 검사를 해 보면 그보다 훨씬 많은 환자에게서 후각 기능이 떨어져 있다.

다른 감염 증상들이 발현되기 전에 먼저 환자가 미각 감퇴나 후각 감퇴를 자각한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대부분의 환자는 시일이 지나면서 후각을 회복하지만, 위에서 말한 환자의 경우와 같이, 완치 후에도 후각을 회복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후각 마비는 경미해 보이는 증상이지만, 감각 신경이 둔화되었다는 뜻이다.

신경이 일시적으로 기능이 마비되었다가 회복될 수도 있으나, 신경이 무디어져서, 즉 문자 그대로 뭉툭해져서 손상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후각 신경 뿐 아니라 다른 신경도 손상되었을까 우려하는 것이다.

물론 후각 마비나 미각 마비가 곧 신경계의 손상을 뜻하지 않으며, 비염 등 다른 기저 원인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기도 하다. 하지만, 신경계의 퇴행성 질환이 진행되는 가장 초기의 변화가 이런 감각의 저하로 표출되기도 한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환자의 뇌를 직접 침투한다는 증거는 분명하지 않다. 감염되어 사망한 환자의 뇌에서 바이러스 관련 물질들이 검출된 경우가 있으나, 일반적인 경우인지, 예외적인 경우인지 명확하지 않다. 대부분의 사망한 환자는 즉시 화장되거나 매장되고, 사후 부검을 하는 경우는 드물기 때문에 데이터가 많지 않다.

그러나 바이러스가 뇌를 직접 침투하지 않아도, 바이러스 감염은 여러 가지 경로와 방식으로 뇌에 염증을 일으킬 수 있다. 코로나 바이러스에 감염된 경우, 적어도 일부 환자의 경우에 뇌에서 염증이 생긴다는 직접 간접적인 증거들이 있으며, 혈액이나 뇌척수액에서 뇌의 염증을 시사하는 물질들이 검출된다.

코로나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중증의 증상을 겪고 회복해도 환자들의 삼분의 일이 지속적인 후유증을 겪는다고 한다. 호흡기의 후유증을 호소하기도 하고, 피로감, 인지력 감퇴, 기억력 저하, 집중력 저하, 수면 장애, 무기력증, 졸리움, 머리가 멍함 등의 뇌신경계 관련 후유증을 호소하기도 한다.

단지 이런 후유증 때문만은 아니라 코로나 바이러스에 감염된 많은 환자들이 미각 이상, 후각 이상을 나타낸다는 점이 다른 뇌신경계 증상을 혹시 늦게라도 나타낼까 특히 우려하는 이유이다.

코로나 바이러스의 감염에 따라 뇌에 염증이 생기거나, 뇌신경의 손상이 진행되면서, 장기적으로 파킨슨병이나 알츠하이머병 등의 뇌신경계 질환으로 발전할까는 아직 미래 진행형의 의문일 뿐이다. 하지만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회복한 환자들을 모니터링함으로써 혹시 있을지도 모르는 후유증을 선제적으로 대응할 필요가 있다.

팬데믹으로 인해서 장기적으로 나타날 후유증은 이제부터 직면하게 될 문제이다. 그래서 세계보건기구 WHO를 비롯해서 의학계가 코로나 바이러스 펜데믹의 장기적 후유증을 논의하기 시작했다.

△ 성은아 박사 약력

이화여자대학교 약학대학 학사
미국 뉴저지 주립대 박사
1998-2011 미국 반더빌트 대학교/ 예일 대학교- 뇌신경계 작용 약물 기전 연구
2011-2015  한국과학기술연구원-뇌신경전달 회로 연구
2018-현재 메디헬프라인(주) 약물 개발 연구, 메디헬프라인 수석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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