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8월, 기자는 '제약사에서 마약이 샌다' 제하의 기사를 단독 보도했다. 제약사 직원들이 자사가 생산한 향정신성 의약품을 외부로 반출했고 이를 윗선에서 묵인했다는 의혹이었다.

기사는 대형 인터넷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삽시간에 퍼졌다. 제약 업계의 관심도 상당했다. 제약사에서 마약이 샌다는 내용은 지금껏 언론 매체를 통해 보도된 적이 없는 초유의 사건이었기 때문이다.

보도 이후, 기자는 이곳 저곳에서 연락을 받았다. 

먼저 보건복지위 야당 국회 의원실 측 비서관이 "너무 충격을 받았다. 기사 내용이 사실인가"라고 물었다. 하지만 관심 정도에 불과했다. 

두 번째 연락도 국회였다. 이번엔 보건복지위 여당 의원이었다.

의원 측 비서관은 "10월 국정감사에서 공식적으로 문제 제기를 하고 싶다"며 "물증 확보를 위해 제보자를 설득해달라"고 읍소했다. 

앞서 의원실보다 구체적이고 간절한 제안이었기 때문에 고민을 거듭했다. 최초 보도 이후 제약사 마약 반출 사건이 이대로 묻힐 수 있다는 생각은 점점 커져갔다.

특히 식약처가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제약사 직원들이 마약류 의약품을 외부로 반출한 범죄였지만 식약처는 침묵으로 일관했다.

핵심 물증을 토대로 관련자들을 조사했다면 처벌이 가능한 문제였지만 식약처 측은 연속 보도 과정에서도 기자에게 단 한번도 연락하지 않았다. 

단순히 기사를 넘어서서, 마약을 반출한 제약사를 단죄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바로 국회를 통한 문제 제기라고 판단했던 이유다. 마약을 반출한 제약사를 일벌백계하고 식약처의 관리 부실을 지적할 수 있는 기회였다.

결국 제보자를 설득해서 구체적인 물증과 자료 등을 의원실에 전달했다. 당시 비서관은 "제보자가 제공한 물증과 자료가 확실하다"며 "국감 현장에서 충분히 문제 제기가 가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국감 날짜가 다가올수록 기대감이 커졌다. 

하지만 국감 당일 뜻밖의 소식을 들었다. "의원이 부담을 느낀다"는 연락을 받은 것이다. 기자가 핵심 물증을 제공했는데도 그 의원은 망설였다. 윤석열 정부의 여당 의원이 오유경 식약처장을 상대로 질의를 한다는 사실 자체가 부담으로 느껴진 듯 했다.

그러나 '제약사에서 마약이 샌다'는 보도를 뒷받침하는 물증과 각종 장부는 확실한 증거였다. 심지어 국감 최대 이슈는 마약이었다. 하지만 의원은 더욱 망설였고 결국 국정감사를 통한 이슈 제기는 질의 직전 무산됐다. 

기자의 좌절감은 컸다. 수차례 제보자를 설득해서 자료를 전달했는데도 무용지물이 됐기 때문이다. 그때부터 기자는 직접 수사기관 관계자들과 접촉하기 시작했다. 이대로 포기할 수 없었다.

먼저 경찰 정보라인을 통해 "경찰청 정보라인에 첩보 형태로 보고하면 수사가 가능하다"며 "물증이 확실하기 때문에 즉각 내사에 들어갈 수 있다"는 답변을 들었다.

하지만 제보자 신분 노출이 문제였다. 경찰 측은 "가담하지 않았더라도 수사를 받을 수 있다"고 밝혔다. 제보자는 의욕적인 모습을 보였지만 '신분 노출'이란 단어가 주는 중압감을 견디지 못했다.

경찰 수사도 무산됐다. 그렇게 수개월이 흘렀지만 마음을 꺾지 않았다. 

이번에는 검찰이었다. 검찰 관계자는 "물증이 확실하기 때문에 제보자를 보호하면서 수사가 가능하다"며 사건을 넘겨달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경찰과 마찬가지로 검찰이란 무게도 제보자를 짓눌렀다. 제보자는 검찰의 신원 보장을 신뢰하지 못했다. 구두 약속에 불과하다는 게 이유였다.

결국 제약사에서 수백 알의 마약이 외부로 반출됐다는 내용의 보도 이후, 수많은 곳에서 연락을 받았지만 별다른 진전이 없었다. 점점 지쳐갔다. 

그러던 와중에 새해를 맞이했다. 포기하고 싶은 마음 뿐이었다. 하지만 1월 1일부터 수많은 소식이 들렸다. 마약 사범들에 대한 솜방망이 처벌이 이어지고 있었다. 

심지어 유명 연예인은 필로폰을 수차례 투약했는데도 집행유예를 받았다.  혹시나 하는 마음이 마약을 반출한 제약사를 포털 사이트에 검색해봤다. 여전히 그 제약사는 국민을 상대로 버젓이 약을 팔고 있었다.

오히려 승승장구하면서 판매 품목을 늘려나가고 있었다. 누구나 알 수 있는 제약사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처벌은커녕 어떤 피해를 입지 않고 살아남은 것이다. 

충격을 받은 기자는 마음을 다잡았다. 돌이켜보니, 추가 제보를 통해 더욱 강력한 물증과 팩트를 확보하지 못한 점이 사건이 더 나아가지 못하는데 영향을 미쳤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욱 꾸준하고 집중적인 취재로 강력한 물증을 확보했다면 제보자들을 보호하면서 수사기관을 움직일 수 있을 것이란 생각도 들기 시작했다.  

기자는 신발끈을 다시 고쳐매고 취재 수첩을 새로 장만했다. 더욱 발로 뛰면서 제약사들의 마약 범죄를 낱낱이 기록하기 위해서다. 

팜뉴스 독자 여러분께도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다. 수많은 제보로 기자를 응원해 주셨으면 좋겠다. 새해에는 털 끝만한 단서라도 끊임없이 추적해 정의를 바로세울 것이다.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이 시각 추천뉴스
랭킹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