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허투
엔허투

[팜뉴스=김민건 기자] 올해 HER2 표적치료제 엔허투(트라스투주맙데룩스테칸)가 급여 결정 최종 관문인 약제급여평가위원회(이하 약평위)에 오를 수 있을까. 신속한 급여 등재를 위해선 전이성 유방암 생존을 개선한 혁신성을 약평위가 얼마나 인정할지가 관건이다.

오는 11일 올해 첫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약평위가 예정돼 있다. 이날 엔허투가 약평위에 상정돼 급여 적정성을 심의받을 수 있을지 업계가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

엔허투는 지난해 약평위에서 급여 적정성을 심의 받을 것으로 큰 기대를 모았지만 끝내 해를 넘기고 말았다. 공동 개발사인 다이이찌산쿄와 아스트라제네카는 급여 상정을 위해 전세계 최저가 약가를 제시하는 등 경제성평가를 빠르게 통과하는데 적극적으로 나섰지만 아쉬움을 남길 수밖에 없었다.

엔허투는 유방암 환자 1인당 연간 투약비(비급여 기준) 1.5억원으로 추정되는 고가다. 기본적으로 3주(1사이클)마다 투약해야 하며, 아직 비급여인 만큼 1사이클 투약 비용은 500~700만으로 추정된다. 

급여 심의가 늦어지는 것은 엔허투가 단순히 고가 약제라서가 아니다. 효과가 매우 뛰어나기 때문이다. 엔허투는 기존 약제 대비 무진행생존기간(PFS)을 4배 이상 늘렸다. 2022년 6월 미국암학회(ASCO)에서 발표된 엔허투 DESTINY-Breast03 연구 중간 분석에서 독립적중앙맹검(BIRC)이 평가한 무진행생존기간 중앙값(mPFS)은 28.8개월이었다.

기존 HER2 양성 전이성 유방암 2차 표준치료 요법인 캐싸일라(트라스투주맙엠탄신, T-DM1)의 6.8개월 대비 22개월을 연장했고, 질병 진행 또는 사망 위험(HR)을 72% 감소시켰다. 

지금껏 이토록 뛰어난 생존기간 연장 효과를 낸 치료제는 전이성 유방암에서 없었기 때문에 많은 연구자와 환자들로부터 찬사를 받았다. 역설적이게도 환자들이 더 오래 생존할 수 있게 되면서 경제성평가 판단이 쉽지 않아졌고, 전이성 유방암 생존기간을 획기적으로 늘린 혁신성이 오히려 급여화를 늦추게 됐다.

우리나라는 신약 급여 등재 과정에서 경제성평가를 한다. 이때 ICER(Incremental Cost-Effective Ratio, 점증적 비용-효과비) 값을 이용한다. ICER은 기존 표준 치료제와 효과를 개선한 신약 간에 비용효과성을 비교하는 것인데, 환자 1명이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는 비용을 분석해 얼마나 효과적인지를 보는 것이다.

심평원은 경제성평가와 관련해 질병 위중도, 사회적 질병부담, 삶의 질에 미치는 영향, 혁신성 등을 고려해 비용효과비를 탄력적으로 평가한다고 밝힌 바 있다.

현재 정부는 ICER 임계값을 항암제는 최대 5000만원, 일반 약제는 3000만원으로 정하고 있다. 항암 신약이 5000만원 임계값 이하로 들어올 경우 비용효과적이라고 판단한다. 엔허투는 무진행생존기간을 4배 이상 연장한 만큼 사용할 수록 약제비가 증가돼 비용효과성 입증이 어렵다.

결국 이번 약평위에서 엔허투를 심의에 올려 급여 적정성을 평가할 대 혁신성과 가치를 인정해 ICER 임계값 5000만원을 예외적으로 적용했을지가 관건이다. 현행 등재 과정에서 엔허투가 급여권으로 들어올 수 있는 방법이 제도적 유연성을 발휘하는 것 외에는 어렵기 때문이다.

업계 일각에서는 "엔허투 같은 이례적인 효과를 가진 혁신신약은 급여 평가가 어려운 국내 건보 제도 한계를 보여주는 사례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심평원은 엔허투가 가진 혁신 신약으로서 상징성과 전국민적 관심을 고려해 급여 평가를 신속하게 진행한 것으로 전해졌다. 약평위 산하 경제성평가 소위원회와 위험분담제 소위원회 모두 관련 검토를 마쳤으며, 다이이찌산쿄·아스트라제네카는 공식 결과가 나오길 기다리고 있다. 엔허투가 가진 혁신성과 건강보험 재정을 고려한 종합적인 판단이 이뤄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심평원 급여 설정 이후 건강보험공단 약가협상, 보건복지부 건강정책심의위원회 결정, 급여기준 고시가 남아 있다. 상급종합병원 등 의료기관에서 실질적인 투약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약사위원회(DC) 심의를 거쳐 처방코드를 등록해야 급여 처방이 가능하다. 

작년 12월 기준으로 OECD 상위 10개국 중 9개국에서 엔허투 급여 처방이 이뤄지고 있다. 나머지 1곳은 한국이다. OECD 전체 회원국에서 엔허투 급여율은 60%다. 영국은 한국과 동일한 제도적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 혁신신약 가치를 반영할 수 있는 예외 기준을 적용했다.

영국 국가보건의료시스템(National Institute for Health and Clinical Excellence, NICE)은 엔허투 평가 항목으로 질보정생존년, QALY, Quality Adjusted Life Year 등을 놓고 가중치를 부여해 보험급여를 적용하는 이례적인 상황을 만들었다.

다국적제약사들이 막대한 비용을 들여 항체-약물접합체(ADC) 치료제를 개발해왔음에도 엔허투 같은 독보적인 혁신성은 발휘하지 못했다. ADC 2세대인 엔허투 성공은 글로벌 제약사와 각국 정부로부터 투자를 이끌어내고 있기도 하다.

당장 보건복지부는 2023~2027년 제3차 국내 제약바이오산업 육성·지원 종합계획에  ADC 치료제를 '고부가가치 창출' 약제로 선정하고 육성 개발 지원을 약속했다.

중요한 것은 고부가가치 창출이 아니다. 국내 젊은 여성(40~50세)에서 유방암이 호발한다. 4050 여성 사망 원인 1위가 유방암이다. 한국 사회는 물론 가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엄마' '아내' '딸'이 엔허투를 투약함으로써 장기간 생존을 기대할 수 있다. 엔허투 무진행생존기간 28.8개월은 2만 시간이다.

업계에서는 "환자에게 일상을 가져다 주는 것이 진정한 혁신이다. 엔허투 같은 약제가 끼칠 수 있는 사회경제적 역향을 고려해 급여 평가가 이뤄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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