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한풍제약 고기현 이사
사진. 한풍제약 고기현 이사

MR(Medical Representative, 제약회사 영업사원)이 제공하는 의약품에 대한 새로운 정보는 국민 건강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다음에 소개하는 몇 가지 글로벌 고혈압 약물의 사례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주로 미국의 사례를 중심으로 소개하지만, 미국뿐 아니라 우리나라를 포함해 전세계적인 이야기를 포함하고 있다.

1990년대 초 ‘노바스크(Norvacs, 암로디핀 성분의 칼슘 채널 차단제)’라는 새로운 고혈압 약물이 처음 출시되었을 때, 어느 누구도 이 약물이 향후 고혈압 시장을 이끌어갈 것이라고 예상하지 못했다.

이미 같은 계열의 여러 고혈압 약물이 시판되고 있었기 때문에 노바스크는 “1일 1회 복용만으로도 24시간 혈압을 유연하게 조절해준다”라는 메시지를 강조하며 차별화했다. 처음에는 ‘1일 1회 복용으로 혈압이 조절될 수 있을까?’라며 의심도 많았고 ‘혈압 강하 효과가 다소 약하다’는 불만도 있었다.

그러나 전쟁터의 전사와 같은 MR들은 포기하지 않고 끊임없이 전파해나갔다. 다양한 학술 행사도 진행됨에 따라 인지도가 점점 올라갔고, 의사들의 처방 경험도 늘어가기 시작했다.

이와 함께 “노바스크는 기존 약물에 비해 부작용 발현이 현저히 낮으면서도 1일 1회 간편한 복용으로 인해 환자의 순응도를 개선시킨다”는 장점이 입소문을 타고 급속히 퍼져 나갔다.

결국 얼마 후 노바스크가 고혈압 시장을 평정하게 되었다. 비슷한 시기에 같은 계열의 또 다른 약물들이 출시되어 반격을 노렸지만 이미 대세는 노바스크로 넘어간 뒤였다. 정말 모든 전국의 의원에서도 노바스크를 퍼스트 초이스(first choice)로 선택하는 것이다.

그 후 20여 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암로디핀 성분은 중요하다. 이는 단순히 한 제품의 성공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수많은 의사가 제품에 대한 확신을 갖고 처방할 수 있었다는 점, 환자들 역시 종전처럼 부작용으로 인한 고통을 호소하지 않고 혈압을 조절하게 되었다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다.

즉, 우리 제약회사 영업사원이 없었다면 이렇게 빠르게 가능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1996년, 고혈압 약물 시장에 또다시 심상치 않은 변화가 찾아왔다. 바로 코자(Cozaar, 로잘탄 losartan); 레닌 안지오텐신 억제제(angiotensin receptor blocker)라는 새로운 약물이 등장한 것이다.

그때까지는 노바스크를 중심으로 칼슘 채널 차단제 성분과 레니텍이 주도하는 ACE 억제제가 대세를 이루고 있었다. 코자는 새로운 약물이었기 때문에 많은 기대를 얻었지만, 혈압 강하 효과가 기존 약물에 비해 우수하지 않아 실망이 컸다.

그러나 MR들은 코자의 대규모 임상 자료를 근거로 혈압 강하 효과와 함께 입증된 장기 보호 효과를 강조하면서 꾸준히 새로운 시장을 개척해 나갔다. 점차 대세는 코자 쪽으로 기울었다.

그 후 같은 ARB 계열의 여러 가지 약물들이 코자의 성공에 힘입어 우후죽순 시장에 출시되면서 고혈압 시장은 ACE 시장의 몰락과 함께 ARB 제제 중심으로 이동하게 되었다. 코자라는 제품 하나가 시장 판도를 바꿔놓은 것이다.

사실 여기에는 더 중요한 의미가 있다. ARB 시장으로 전환되었다는 것은 단순히 혈압 강하 효과 이외에 장기 보호end organ protection 도 중요하다는 새로운 개념이 도입되었다는 점을 시사한다.

여기에 큰 의의가 있는 것이다. MR 의 시장개척의 의의는 꽤 크다. 그리고 제한적인 정보수단에 의지하는 내과 의사 선생님들에게는 큰 정보의 채널인 것이다.
 

사진. 게티이미지
사진. 게티이미지

2007년, 고혈압 시장은 또 한 번 요동친다. 엑스포지 (Exforge, ARB 제제와 CCB 제제의 복합 성분 valsartan+amlodipine)라는 복합 고혈압 치료제(single pill combination)의 출현 때문이다.

이때까지는 두 가지 다른 계열의 약물을 따로 처방했는데, 약 한 알에 두 가지 성분이 함께 든 복합제제가 출현한 것이다. 복용하는 약물의 수가 줄어 환자의 순응도(compliance)를 증가시킬 수 있게 되었다.

이때도 역시 반대 여론이 만만치 않아, 두 가지 약물을 따로 처방해야 약물 적정(titration)에 좋다는 의견이 많았다. 그러나 엑스포지가 시장에서 큰 성공을 거두자 기업들은 앞다투어 유사 복합 제품을 출시했고 이에 따라서 고혈압 시장의 판도는 다시 복합 고혈압 약물로 옮겨가고 있다.

지금은 단순히 두 가지 제제의 복합 고혈압 약물뿐 아니라 고지혈증 치료제와 고혈압 치료제의 복합 약물도 출시되고 있는 등 복합제제의 전시장이 되는 실정이다. 바야흐로 복합제의 전성시대라고 할 수 있다.

앞서의 사례들에서 볼 수 있듯, 지난 30년간 고혈압 약물 시장의 큰 변화를 주도한 몇 개의 제품이 있었다. 의약품의 성공이 전적으로 MR의 업적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전문 의약품 촉진에서 인적 판매의 비중이 가장 크다는 점을 생각해볼 때, MR의 공헌이 가장 컸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치료제 시장의 판도가 바뀐다는 것은 수많은 환자가 복용하는 약이 달라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질환의 규모에 따라 다르겠지만 수만 명에서 수십만 명의 환자가 복용하는 약물이 교체된다는 것은 국민 건강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행위다.

일반 소비재가 그렇듯이 약물도 계속해서 빠르게 진화한다. 그러나 전문 의약품은 소비자 광고도 제한되어 있어 소비자인 환자가 의약품에 관해 많은 정보를 공유하지 못한다. 따라서 최종적으로 약물을 처방하는 의사의 선택에 모든 것이 달려 있다.

그들이 특정한 의약품을 선택하기까지 설득하는 일은 전적으로 제약회사 영업사원 MR의 몫이다. 결국 환자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해 새로운 정보를 빨리 전달하며 노력하는 것이 MR의 사회적 역할이다. 우리 MR들의 역할은 재조명되고 긍정적으로 평가 받아야 한다.

MR은 화려한 조명을 받는 직업은 아니다. 그러나 앞에서 확인한 것처럼, 전 국민이 복용하는 약물을 바꿀 수도 있는 영향력을 갖고 있다. 한 편의 작품 뒤에 보이지 않는 연출자가 있듯이 MR은 각자의 지역에서 작은 연출자이며 복음 전도사와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MR은 처방을 부탁하러 다니는 초라한 일을 하는 게 아니라 사회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는 것에 대해 자부심을 가져야 한다.

우리나라 제약회사들은 MR들에 대한 과감한 투자와 질적인 교육을 통해 한 층 업그레이드 된 정보 전달자의 역할을 더욱 가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사회에 공헌하는 길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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