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팜뉴스=최선재 기자] 백전백패. 제약사들과 정부의 약가 소송을 상징하는 키워드다. 간신히 집행정지만 인용될 뿐 본안에서는 승소한 사례가 전무했다. 소송 전략을 촘촘히 짜고 대형로펌을 선임해도 연패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올해는 승전보가 울렸다. 급여 적정성 평가로 빌베리건조엑스 제제의 급여 고시가 삭제됐지만 제약사들이 복지부를 상대로 1심에서 이겼다. 업계가 정부를 상대로 연패를 이어가다가 사상 처음으로 1승을 거둔 것이다. 

물론 혹자는 1심 승소(약제 급여 목록 및 급여 상한금액표 일부개정 고시 취소 소송)가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말할 수 있다. 대법원 최종 승소로 판례가 바뀐 것도 아닌데 너무 성급한 것이 아니냐는 목소리다. 하지만 법률 전문가들과 약가 담당 베테랑들의 의견은 전혀 다르다.

빌베리건조엑스 승소 판결이 향후 소송에서 상당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팜뉴스가 연속 기획으로, 빌베리 건조 엑스 판결문의 향후 파장을 분석하고 숨은 의미를 전한다. 

게티
게티

"보통 제약사 급여 삭제와 관련 소송에서 관련 학회나 교수들이 이렇게까지 의견을 많이 내지는 않는다"

22일 법무법인 반우의 장덕규 변호사는 제약사들이 승소한 요인을 이같이 분석했다. 장 변호사는 "판결문을 보면 당장 안과 의사들이 빌베리 건조 엑스 성분의 당뇨병성 망막병증 치료에 필요하고, 반드시 써야한다고 얘기했다. 재판부가 부담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라고 밝혔다.

실제로 서울행정법원의 판단(2021구합86481)을 살펴보면, 국제약품, 삼천당제약, 영일제약, 한국휴텍스제약(원고)는 빌베리건조엑스 제제의 효능에 대한 근거 자료를 꼼꼼히 준비해서 재판부에 제출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특히 대한안과학회는 "빌베리건조엑스는 당뇨병성망막병증이 발생한 환자에서 오랫동안 처방되어 안전하고 효과가 입증된 약제다"며 "초기 단계부터 장기간 처방시 실명 위험을 감소시키는 효과가 있으며, 환자부담금 줄여 사회적, 경제적 손실을 낮춰주는 효과 기대할 수 있다"고 의견을 냈다. 

한국망막학회도 마찬가지다. 한국망막학회는 빌베리건조엑스 제제의 대표격인 타겐에프에 대해 "현재 국내에서 당뇨망막병증과 같은 망막혈관질환에서 타겐에프의 대체약품은 없다"고 단언했다. 

그러면서 "임상적으론 혈류 개선을 위해 혈관순환제 일부가 망막질환에 처방이 되는 경우가 있다"며 "하지만 이는 초기 병의 발생에 기여하는 산화 반응을 억제해서 돌이킬 수 없는 시력 손실을 가져오는 심각한 합병증 발생 예방에 기여하는 타겐에프의 사용 목적과는 다른 것으로 생각된다"고 밝혔다.  

한국망막학회는 또 "바키늄 미르틸루스 제재(빌베리 추출물)는 당뇨망막병증을 적응증으로 하는 의약품"이라며 "항산화작용과 함께 콜라겐 섬유를 안정화하고 콜라겐의 생합성을 촉진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또한 혈소판 응고와 혈관 형성을 억제하며, 혈액의 흐름과 혈관의 탄력성을 향상시킨다"며 "로돕신의 재생을 촉진하고, 망막 효소의 활동을 조절한다. 미세순환을 향상시킴으로써 야간시를 향상시킬 수 있음도 보고된 바 있다"고 덧붙였다.

이뿐만이 아니다. 이번 판결문에는 현직 교수가 자신의 이름을 걸고 빌베리건조엑스 제제 관련해 긍정적인 의견을 피력한 대목도 등장한다.

유승영 경희대학교 의과대학 안과학교실 교수는 "병태생리학과 임상연구를 종합해 보면, 안토시아닌(빌베리에 함유된 성분) 사용으로 미세 순환을 개선하고 망막조직을 안정화하면서 HbA1C를 개선하고 저산소증을 개선한 결과로 대비 감도가 향상되었다고 생각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어 "대한안과학회지도 당뇨 부종을 동반한 비증식당뇨망막병증 환자들에서 안토시아노시드 복용 후 유의미하게 대비 감도가 호전됐다고 밝혔다"며 "타겐에프 복용으로 인해 대비 감도가 개선되는 것은 시기능의 향상을 의미하며 이와 동시에 시력 개선의 가능성을 기대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유 교수는 이어 "12개월간 타겐에프 복용 외 다른 안과적 치료 없이도 교정시력, 미세혈관류, 경성삼출물, 누출점, 황반부종의 악화 없이 일정하게 유지되는 보조 효과가 있었음도 확인됐다"고 말했다.

이어 "이와 같은 병태생리학적 연구 결과들을 종합해봤을 때 다른 연구들에서 증명된 안토시아닌의 항염증 작용, 항산화작용, VEGF 발현 억제작용, BRB 파괴 감소 등에 의한 것으로 생각된다"고 강조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 따로 각주를 달아 유 교수를 '망막질환에 관한 전문가'로 소개했다.

박성표 한림대학교 의과대학 안과학교실 교수(대한안과학회 홍보이사 및 한국망막학회 기획이사)도 "빌베리의 약리학적 효과를 나타내는 성분인 안토시아닌은 당뇨병 환자에 있어서 polymeric collagen(고분자 콜라겐)의 합성을 늦춰준다"며 "당뇨병성 망막병증에 의한 실명유발을 지연시키고 conjunctival capillary resistance(결막 모세 혈관 저항성) 증가에 의한 망막 출혈 보호 효과를 나타내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결국 재판부는 "복지부의 빌베리건조엑스에 대한 임상적 유용성의 ‘불인정’ 평가는 부당하다"며 "대한안과학회, 한국망막학회, 망막 분야 전문가인 유승영 교수 및 한국망막학회 이사인 박성표 교수는 빌베리건조엑스가 당뇨망막병증을 치료하는데 효능이 있다는 의견을 피력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피고 측이 별다른 반대 자료도 없이 신뢰도에 대한 의문만 제기하면서 빌베리건조엑스의 효능에 관한 근거 자료들을 일괄하여 배제한 채 그 ‘임상적 유용성’을 ‘불인정’으로 단정한 것은 합리성을 결여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학회와 저명한 교수들의 의견이 복지부가 재량권을 일탈 남용했다고 결론을 내리는 밑바탕과 뼈대를 제공했다는 것이 업계의 평가다. 

한편 팜뉴스는 후속으로, '재량권 일탈 남용'이라는 법원 결정의 속뜻과 업계의 여론을 전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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