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팜뉴스=최선재 기자] 도미노의 첫번째 말을 쓰러뜨리면 전체 말들이 차례로 쓰러진다. 도미노의 연쇄 붕괴 현상이 일어나면 이곳 저곳에서 파열음이 들린다. 대처가 어렵기 때문에 우두커니 지켜만 볼 수밖에 없다. 

제약사들이 도미노의 말들이라면 대법원은 도미노를 언제든 쓰러트릴 수 있는 국가기관이다. 특히 의약품 특허 세계에서는 대법원 선고가 선례 구속 효과를 강하게 불러일으키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솔리페나신 사건'은 업계에 도미노의 비극을 만들어낸 대법원 판결이다. 대법원이 당초 '주성분설'에서 '유효성분설'로 입장을 변경하면서 다수의 제약사들이 치명상을 입었기 때문이다. 

오리지날 의약품에서 염을 변경한 의약품을 개발해서, 존속기간 만료 이전 특허를 회피하는 방법으로 제네릭을 출시해온 전략에 제동이 걸린 순간이었다.

물론 업계는 실낱 같은 희망은 품었다. 염 변경 특허 회피의 길은 막혔지만 적어도 '프로드러그'(에스테르화)'에는 특허권 효력이 미치지 않을 것이란 낙관이었다. 

하지만 최근 특허청 인사의 발언은 도미노 트라우마를 떠올리기에 충분했다. '유효성분설'에 따라 존속기간이 연장된 특허권 효력이 프로드러그에도 미칠 수 있다는 예측을 내놓았기 때문이다.

게티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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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은 2019년 코마팜바이오의 에이케어(솔리페나신푸마르산염)이 아스텔라스의 오리지널 약 베시케어(솔리페나신숙신산염)의 연장 등록된 특허를 침해한다고 판결했다. 

김용 특허청 과장은 "의약품허가특허 연계 교육(식약처 주최)" 행사에서 "당초 대법원은 주성분설을 취했지만 당시 판결을 계기로 유효성분설로 돌아섰다"며 "두 제품의 주성분은 솔리페나신으로 같지만 주성분은 달랐다"고 밝혔다.

이어 "베시케어에는 숙신산염이 붙었고 에이케어엔 푸마르산염이 붙었다"며 "이전이라면 두 제품의 주성분이 달라 특허 침해가 아니라고 했을 것인데, 대법원은 당시 유효성분이 동일하면 주성분이 달라도 특허권 침해라고 입장을 변경했다"고 덧붙였다.

김용 과장 배포 자료 캡처(그림1)
김용 과장 배포 자료 캡처(그림1)

그렇다면 대법원 판결은 속뜻은 뭘까. 

먼저 유효성분, 주성분, 염에 대해서 알아보기 위해 방광 근육(그림1)을 살펴보자. 신경절에서 나온 무스카린이 수용체에 작용해서 근육이 수축하면 뇨가 나온다. 여기에 솔리페나신이란 물질이 무스카린 수용체에 달라붙으면 방광 근육이 수축을 못한다. 

수축이 억제되면 과민성 방광염 또는 요실금 치료가 가능하다. 솔리페나신이란 유효성분이 무스카린 수용체에 달라붙어 치료 효과가 나타나는 셈이다. 

김용 과장은 "여기서 나오는 솔리페나신이 유효성분"이라며 "솔리페나신이 녹지 않아서, 유효성분을 염으로 만들기 위해 보조적으로 개발한 물질인 염산을 붙이면 염산염, 아세트산 붙이면 아세트산염이다. 인체에 흡수돼 의약품으로서 작용할 수 있도록 하는데 이것이 바로 주성분이다"라고 강조했다.

이어 "2019년 대법원 판결 이전까지 제약사들은 유효성분만 같고 염만 다른 제품을 만들어냈다"며 "하지만 시판 준비 중 대법원에서 '무슨 소리냐, 산은 다르더라도 유효성분만 같으면 특허 침해'라고 판결한 것이다. 제약사들이 수많은 염 변경 제품을 생산했다가 접은 이유"라고 덧붙였다.

결국 솔리페나신의 비극은 챔픽스 사건(성분명 바레니클린)으로 이어졌다. 업계는 '염 변경 작전'을 더 이상 지켜낼 수 없었다. 

물론 희망도 있었다. 프로드러그가 새로운 특허 회피 전략으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김앤장 법률사무소 설명에 따르면, ‘프로드러그’는 의약품의 유효성분을 이루는 활성모핵에 잔기(moiety)가 부가된 화합물이다. 잔기에 따라 에스테르, 아민 등의 화합물로 분류될 수 있지만 '에스테르' 화합물이 가장 많이 사용된다. 

하지만 김용 과장은 "미국과 유럽도 유효성분설을 취하고 있다"며 "미국은 특허법에 유효성분뿐 아니라 염과 에스테르에도 특허권 효력이 미친다고 규정했다. 일부 학자들은 '염과 달리, 에스테르는 되지 않겠느냐'고 하는데 가능성이 낮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대법원 판례를 읽어보면 염과 에스테르가 법리상 동일한 방향을 취하고 있어서 에스테르 제품이 나온다고 하더라도 특허권 침해 여지가 있다"며 "단언하기 어렵지만 우리나라가 유효성분설을 따르기 때문에 결론을 어느 정도는 예상할 수 있다"라고 덧붙였다.

2019년 대법원 판결 이후 특허법원은 최근 "프로드러그도 물질 특허 범위에 속한다"는 취지의 판결을 연달아 내놓고 있다. 

최근 업계에서는 프로드러그를 향한 전략마저 꺾일 수 있다는 분위기가 엿보인다. '염'을 통해 일어난 대법원발 도미노가 '프로드러그'마저 쓰러트릴 것이란 위기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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