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팜뉴스=최선재 기자] 뉴욕 맨해튼에는 특이한 형태의 건물이 있다. 건물 아래쪽 인도를 걷는 관광객들 시선에서는 아주 오래된 형태의 석조 건물만 보인다. 하지만 멀찌감치 떨어져서 건물 위쪽을 쳐다보면 46층짜리 현대식 초고층 빌딩이 모습을 드러낸다. 

건물 이름은 허스트 타워다. 에스콰이어, 코스모폴리탄 등 수십개의 잡지사를 거느린 허스트 미디어 그룹의 사옥이다. 허스트 타워는 1928년 건축 당시 6층이었다. 그 이후 회사가 성장하면서 신사옥을 짓지 않을 수 없었다. 허스트 그룹은 치열한 고민 끝에 기존 건물을 부수는 방식 대신 건물 위쪽에 증측을 하기로 결정했다. 

결국 2006년 완공된 허스트 타워는 신구의 공존을 통한 완벽한 서사를 창조해내면서 뉴욕의 새로운 명물로 자리 잡았다. 이렇듯 헤리티지는 혁신 없이 영속성을 유지할 수 없다. 

보령의 용각산도 다르지 않다. 보령 역시 용각산쿨로 용각산이 수십년 동안 쌓아온 헤리티지를 이어가는 중이다. 특히 흑백TV 시절, 시청자들의 마음을 단숨에 사로잡은 마케팅 기법으로 또 다른 혁신을 시도했다. 

그 결과, 용각산 헤리티지는 팬데믹을 뚫고 세대의 파고를 넘었다. 50년 전 아버지 세대들이 용각산에 열광했다면 이제는 20~30대 젊은 층이 용각산쿨을 너도나도 찾고 있다. 

그렇다면 보령의 혁신은 어떤 배경 속에서 이뤄졌을까. 코로나19 펜데믹 속에서 보령은 어떤 광고 마케팅을 소구했을까. 팜뉴스가 특집 기획으로, 이지영 보령 용각산 PM의 목소리를 통해 그 이유를 들어봤다.

때는 2020년 10월이었다. 보령은 용각산쿨 광고 문구에서 '미세먼지'라는 단어를 뺐다. 미세먼지 대신 새롭게 들어간 키워드는 '헛기침'이었다. 용각산쿨이 미세먼지로 약해진 기관지에 효과적으로 작용한다는 광고 콘셉트를 과감하게 버리고, 헛기침으로 전환을 시도한 것이다.

이지영 PM은 "2010년대의 가장 큰 사회적 이슈는 미세먼지였다"며 "목이 칼칼할 때 용각산을 복용하라는 광고 콘셉을 오랫동안 유지했다. 하지만 어느 브랜드나 정체기가 있었기에 저희도 고민을 거듭했다. 그 결과 지금까지 하지 않았던, 새로운 콘셉의 광고를 시도해보자고 결정했다"고 전했다.

이어 "결국 미세먼지 대신 헛기침을 넣었다"며 "헛기침 증상은 목이 아프거나, 간질거리거나 불편하거나, 감기에 걸릴 때 표면적으로 가장 먼저 나타나는 시그널이다. 학생, 노인은 물론 직장인 누구나 겪을 수 있다. 실제로 소비자들도 빈번하게 겪는 호흡기 증상 중 하나를 헛기침이라고 대답하고 있었다"고 덧붙였다. 

더욱 흥미로운 사실은 광고 콘셉 전환이 기침제제 시장의 성장이 주춤하던 시점에 이뤄졌다는 점이다. 

당시 코로나19 팬데믹을 계기로 마스크 착용 등 개인 위생이 강조된 탓에 당시 용각산쿨 같은 기침 일반약 시장이 정체를 거듭했다.

2020년 10월 정부는 실내외 마스크 착용 조치를 의무화했고 마스크 품귀 현상까지 일어났다. 자연스레 호흡기 질환이 줄면서 기침 제제 약들이 위기를 맞았다.

이 PM은 "코로나19 팬데믹 발발 이후 모든 사람이 손을 씻고 마스크를 썼다"며 "감기 환자가 줄면서 감기와 호흡기 제제의 수요가 줄었다. 그런 상황에서 저희는 데이터 조사를 통해 개인 위생 관리에 대한 소비자들의 니즈를 찾기 시작했다. 그 결과 헛기침이란 키워드를 잡았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2020년 보령이 내놓은 TV 광고는 쇼파에 앉은 여성이 전화통화를 하다가  헛기침을 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그 이후 마스크 낀 남성이 버스에서 '크음'하고 헛기침을 하는 장면도 등장한다. 회사, 도서관으로 장소가 바뀌고 헛기침하는 모습이 끊임없이 나오면서 "헛기침, 습관이 아닙니다. 목에 이상을 알리는 증상입니다"라는 광고 문구가 나온다. 

결국 보령의 선택은 적중했다. 광고 콘셉을 바꾼 이후, 용각산쿨 매출이 급성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 PM은 "보통 광고 콘셉을 바꾸면 구매로 연결되는데 몇 달의 시간이 소요된다"며 "하지만 2주 만에 소비자와 약사들의 반응이 왔다. 용각산쿨 소진 속도가 빨라지고 매출이 늘어났다. 그때 처음으로 헛기침 문구를 제대로 잡았다는 생각이 들었다"라고 전했다.

보령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광고 콘셉 전환과 동시에 포장재에도 변화를 시도했다. 

이 PM은 "젊은 남성분들의 새로운 니즈를 발견했다"며 "용각산을 좋아해서 서랍이나 집에 놓고 다니는데 밖에서 복용했을 때 아저씨나 할아버지 같은 사람처럼 보이는 것이 싫다는 목소리다. 혼자서 먹을 때는 좋은데 밖에서는 예쁜 제품을 들고 다니고 싶다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저도 PM이지만 깜짝 놀랐다. 생각 이상으로 패키지가 너무 중요했다. 기존 패키지의 틀에서 과감하게 변화를 시도했다. 산뜻한 느낌의 맛에 따라 분홍색과 파란색의 패키지를 내놓았다. 패키지 전환은 구매 유발력을 높였다. 보령 자체 조사 결과, 소비자들 사이에서는 "예쁘다", "트랜디하다", "사고 싶게 생겼다"는 응답도 나왔다"고 전했다. 

아이큐비아에 따르면, 용각산쿨의 매출은 2020년 5월 당시 약 26억을 기록했지만 2021년 5월 76억을 기록했다. TV 광고 콘셉트와 패키지를 전환한 1년 사이, 4배 가까이 매출이 급성장한 셈이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용각산쿨의 매출이 오미크론 사태를 기점으로 화룡점정을 찍었다는 점이다. 지난해 3월,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오미크론으로 변이를 일으키면서 하루에도 수십만명의 확진자가 발생했다. 전 국민 코로나19 확진 시대가 열린 것이다. 

이 PM은 "용각산쿨은 이미 2020년 말~ 21년까지 높은 성장세를 유지했다. 저는 '여기서 더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했지만 오미크론이 촉발되면서 용각산 브랜드의 품절 사태까지 일어났다. 오미크론 사태를 계기로 50~60대의 서랍 속 가루약은 젊은 남녀가 서로 추천해주는 스틱포로 자리를 잡았다"라고 회고했다.

그러면서 "자체 분석 결과, 저희가 우려했던 카니발리제이션(cannibalization) 효과도 발생하지 않았다. 카니발라이제이션은 새로운 제품 출시가 기존의 제품 성장을 저해하는 개념의 마케팅 용어다. 다행히 용각산은 용각산대로, 용각산쿨은 용각산쿨대로 성장을 거듭했다. 특히 용각산쿨은 젊은 세대를 흡수했다. 소비층이 넓어진 것이 인상적이었다"고 밝혔다. 

지금 이 순간에도 보령의 용각산 브랜드는 기침 제제 시장 1위다. "용각산은 소리가 나지 않습니다"로 시작된 광고 마케팅 노하우가 쌓이면서 팬데믹 시대가 도래한 순간에 빛을 발한 셈이다. 

이 PM은 "어느 시대든 그 시대를 상징하는 트랜드와 이슈가 있다"며 "저희는 빠르게 콘셉트 변화를 시도한 것이 성과를 이어갈 수 있었던 요인이다. 무엇보다 보령의 마케터로서, 용각산쿨을 통해 보령만의 헤리티지를 이어갈 수 있었던 점에 상당한 자부심을 느끼고 있다. 용각산을 통해 쌓아온 마케팅 경험과 노하우가 없었다면 용각산쿨의 성공도 없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한편 기업의 마케팅은 어떤 목적도 없이, 아무런 이유도 없이 그냥 이루어지지 않는다. 수차례 회의를 거듭하고 치열한 고민 끝에 결정이 내려진다. 더구나 그런 결정들이 세월이 지나면서 쌓일수록 노하우가 생긴다. 

그것이 보령이 용각산 헤리티지를 이어갈 수 있는 힘이었다. "소리가 나지 않습니다"라는 용각산 헤리티지가 이제는 세대를 넘어, 미래로 흐르는 이유다. 

100년 후 용각산은 어떤 모습일까. 그때도 용각산은 우리 곁에 살아 숨 쉬고 있을 것이다. 마치 뉴욕 맨해튼 8번가에 우뚝 솟은 허스트 타워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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