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팜뉴스=최선재 기자] '헤리티지(Heritage)'는 인류가 지금까지 만들어온 유산을 뜻한다. 역사적으로 보존 가치가 있는 문화 유산을 빗댈 때 쓰이는 용어다. 오랜 시간 가치를 인정받아 누군가에게 남겨진 특별한 것으로, 보존해야 할 이유가 명확할 때 사용한다.

하지만 마케팅에서도 '헤리티지 브랜드'라는 단어를 쓴다. 대중의 시선을 사로잡아 브랜드 이미지를 구축한 이후 히스토리를 만들고 일종의 유산처럼 자리 잡은 것이 바로 '헤리티지 브랜드'다. 

제약 업계에서도 다르지 않다. 일반약 시장은 헤리티지 브랜드가 주름잡고 있다. 수십 년 동안 전 국민에게 사랑받은 제품, 즉 마치 우리 곁에 살아 숨쉬는 일반약이 상위권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그중에서도 보령의 용각산은 헤리티지 브랜드의 정점이다. 1967년 출시 이후 '주머니 속의 가루약'으로 꾸준한 사랑을 받아왔다. 놀라운 사실은 새롭게 등장한 용각산쿨 제품 역시 세대를 아우르며 폭발적인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용각산이 수십년 동안 국민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이유는 뭘까. 오랜 역사 동안 꾸준히 시도한 혁신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본지는 질문에 해답을 얻기 위해 보령 창업주의 회고록을 통해 용각산의 역사를 살펴보고, 보령의 이지영 PM을 만나 그 비결을 물었다.  

보령 이지영 용각산 PM 인터뷰 모습
보령 이지영 용각산 PM 인터뷰 모습

# 용각산 히스토리 '산증인', 김승호 회장

보령 창업자 김승호 회장은 용각산 히스토리의 산증인이다. 그는 아픈 이를 위해 자전거로 시내를 돌며 없던 약도 구해줬다. 1957년 종로5가 보령약국 창업 이후 고객들이 찾는 약을 구하기 위해 서울 시내 곳곳에서 자전거 페달을 밟았다. 

김 회장 회고록에 따르면 1960년대, 당시 국내 제약 업계는 비교적 활발한 의약품 생산 활동에도 불구하고 연구와 개발 부문에서 극히 초기 단계를 면치 못했다. 기술을 축적할 여력을 갖지 못했고 수입 의약품을 신뢰하는 소비자들의 인식도 예전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외국 업체와 기술 제휴를 맺어 선진 제약 기술을 도입하는 것이 불가피했다. 비교적 후발기업인 보령제약도 예외일 수 없었다. 김 회장은 무조건 적인 외국 기술 도입에 그치지 않았다. 후발기업의 한계를 뛰어넘는 동시에 고객의 건강에도 기여할 수 있는 새로운 약품을 찾는 것이 절실했다. 

김 회장의 이목은 일본 약품에 꽂혔다. 바로 ‘용각산(龍角散)’이었다. 비공식 루트를 통해 이따금 국내로 들여오다가 1965년 한일국교 정상화 이후 공식적으로 소량 수입된 약품이다. 용각산은 무려 140여 년 전부터 전해 내려오던 일본 전통의 생약이었다. 식물성 생약에서 추출된 주성분은 별다른 무리 없이 기관지와 목의 정화 작용을 보조하고 호흡이나 발성, 체력을 지키는 데 탁월한 효력을 발휘했다. 

김 회장은 남다른 의지와 자신감으로 일본의 용각산 제조사 류카쿠산을 설득해냈다. 결국 1967년 기술 이전을 통해 완전한 국산화를 이뤄냈고 용각산 5만갑이 성수동 공장에서 처음으로 생산됐다. 이른바 '용각산 헤리티지'의 시작이다. 

#  용각산은 소리가 나지 않습니다

용각산은 그 이후 50년 동안 굳건한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 강산이 5번, 대통령도 10명이 바뀌었지만 변함없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용각산은 베이붐 세대의 약으로 서랍 한 구석을 차지하고 있다. 

그렇다면, 용각산이 장구한 세월 동안 독보적인 헤리티지(유산)을 이어올 수 있었던 힘은 무엇일까. 

팜뉴스 취재진이 14일, 인터뷰를 위해 보령 본사에서 이지영 PM을 만났을 때 첫 번째로 물었던 질문이다. 이 PM은 이렇게 대답했다. 

"TV 광고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 1970년대 당시 굉장히 과감하게 비즈니스 전개를 했다. 흑백 TV 시절부터 컬러 TV로 변환된 시절 내내 공격적으로 TV 광고를 했던 것이 브랜드 타이틀을 얻는데 굉장히 많은 도움이 됐다. 지금 그 광고를 봐도 키 메시지가 기가 막히다. 용각산 자체의 효과도 좋았지만 광고를 통해 더욱 넓은 인지도를 얻은 점이 주효했다."

실제로 보령의 용각산 광고 커피 문구는 당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흑백 화면의 광고는 검지와 엄지 손가락으로 용각산을 들고 흔들면서 시작한다. "드르륵~" 하는 소리와 동시에 "이 소리가 아닙니다"라는 성우의 목소리가 나온다. 

"이 소리도 아닙니다"라는 멘트와 함께 용각산 뚜껑이 열리면서 백색의 고운 가루가 허공에 날린다. 그 이후 "용각산은 소리가 나지 않습니다"라는 목소리와 동시에 "용각산은 먹기 좋게 하기 위해서 다른 재료를 가미 하지 않은 미세한 분말의 순수한 생약입니다"라는 광고 카피가 이어진다. 

# 걸그룹 프로미스나인 별명 언급...MZ세대도 광고 카피 소비

특히 형사 콜롬보 역할으로 유명한 최응찬 성우의 독특한 음성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소리가 나지 않습니다"라는 광고 커피는 그 이후에도 20년 동안 계속됐고 용각산은 '국민약'으로 자리매김했다. 

이 PM은 "대부분의 분말들은 입자가 곱지 않으면 흔들리는 소리가 난다"며 "미세 분말이라는 것이 용각산의 최대 장점이다. 입자가 작을수록 표면적이 넓어서 겉으로 닿는 면이 많아진다. 용각산을 먹으면 미세 분말을 먹었을 때 목 뒷부분에 착 달라붙어서 즉효성이 빠르게 나타난다. 당시 TV 광고에서 KEY 메시지를 제대로 잡은 것"이라고 강조했다.

흥미로운 사실은 10~20대 사이에서, 지금도 용각산 TV 광고 커피가 오르내리고 있단 점이다. 

지난해 걸그룹 프로미스나인의 멤버 이서연은 한 방송에서 자신의 아기 때 별명이 용각산이었다고 언급했다. 그는 "너무 울지 않아서 주변 이웃들이 울리라고 했을 정도"라며 "용각산 광고 문구처럼 흔들어도 소리 내지 않고 조용했기 때문에 별명이 용각산이었다"라고 밝혔다. 

당시 각종 인터넷 커뮤니티는 이서연의 발언에 폭발적인 반응을 보였다. 이서연을 '용각산좌'라고 부르면서 "소리가 나지 않습니다"라는 광고 문구가 재소환됐다. 예능 프로그램 <SNL 코리아>에서도 코미디언 유세윤도 영화 베테랑의 한 장면을 인용하면서 용각산을 패러디했다.  

이지영 PM은 "50년이 지났는데도 회자할 만큼 TV 광고의 파급력이 엄청났다"라며 "1970년대 이후 용각산이 '할아버지 방에 꼭 있는 약' 또는 '아빠 서랍 속에 있는 약'이란 지위를 얻은 모멘텀이 TV 광고였다. 오랫동안 헤비 유저들의 신뢰를 얻으면서 용각산이 브랜드 파워를 구축한 계기"라고 설명했다. 

# TV 광고 + 복용 편의성 = 용각산 헤리티지 

하지만 오로지 TV 광고뿐이었을까. 

이지영 PM은 "광고만 잘한다고 헤리티지 브랜드 지위를 얻지는 못한다"며 "굉장히 역사가 오래되고 충성도 높은 고객들이 많아야 하는데, 브랜드 인지가 잘 되려면 좋은 제품이란 토대도 있어야 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여러 진해거담제가 있지만 용각산은 일본 제품 허가를 기술 제휴로 가져왔다. 완전히 동일한 제품은 시장에서 대체가 어렵다. 이런 부분도 고유의 브랜드 경쟁력을 유지할 수 할 수 있는 힘이었다"고 회고했다.

이 PM은 이어 "양약 성분이 아니고 천연 생약 제제인 점도 마찬가지"라며 "다른 제품보다 복용 빈도나 횟수 측면에서 소비자들이 받아들일 때 부담이 덜 하고 꾸준히 먹을 수 있는 제품이다. 복용량만 조절하면 어른뿐 아니라 아이들도 먹을 수 있다. 적응증이 광범위해서 누구나 쉽고 편하게 먹을 수 있다"라고 덧붙였다. 

용각산 브랜드는 일선 약국가에서 날개 돋친 듯이 팔리고 있다. 지난해 매출만 260억에 달하고 매년 기침약 시장 1위를 수성 중이다. 

이는 김승호 회장이 시작해서 TV 광고가 꽃피우고, 보령의 수많은 직원들이 만개시킨 용각산의 유산(헤리티지)이 현재까지 이어진 덕분이다.

용각산을 단순히 장수 의약품 또는 국민 의약품이란 1차원적인 단어로 정의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용각산 '헤리티지'는 미래로 흐른다 下편"으로 이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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