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전북대학교 약학대학 정재훈 교수 (현.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 전문교육원장) 
사진. 전북대학교 약학대학 정재훈 교수 (현.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 전문교육원장) 

현행 약사법에서는 '의약품(醫藥品)'을 <사람이나 동물의 질병을 진단·치료·경감·처치 또는 예방할 목적으로 사용하는 물품 중 기구·기계 또는 장치가 아닌 것> 또는 <사람이나 동물의 구조와 기능에 약리학적(藥理學的) 영향을 줄 목적으로 사용하는 물품 중 기구·기계 또는 장치가 아닌 것>으로 정의하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우리나라 법이 단순하게 '약(藥)'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고 '의약품(醫藥品)'으로 정의하고 있다는 것이다.

'의약품'을 문자적 의미로 본다면, 의료 목적의 약품으로 해석할 수 있다. 약과 의약품이 동일한 의미로 사용되기도 하지만 어떻든 법을 제정한 분들은 이 2개의 단어가 일치하지 않는다고 판단한 것으로 추정된다.

사실 약(藥)은 Drug을 연상시키고 의약품(醫藥品)은 Medicine을 연상시키기도 하지만, 약은 의약품을 포함한 광범위한 의미들을 포함하고 있다. 마약류 규제의 측면에서 보면 마약류는 의약품보다는 약에 더 가깝다.

마약류 규제의 범위는 의약품에 한정하지 말고 약까지 확대해야 하며 또 그렇게 적용하고 있는데 용어가 개념을 혼란스럽게 하는 면이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처 홈페이지의 정책정보란에 마약류를 아래 표와 같이 분류하였다. 향정신성의약품에는 표에 제시된 의약품 외에 필로폰과 엑스터시 등 오락용 약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는데, 여기서도 개념의 혼선을 볼 수 있다.

지난 칼럼에 이어서 우리의 법령이 정하고 있는 개념의 모순들을 살펴보고자 한다.
 

표. 마약류 분류(출처: 식품의약품안전처 홈페이지)
표. 마약류 분류(출처: 식품의약품안전처 홈페이지)

 

향정신성의약품(向精神性醫藥品)

우리 법은 향정신성의약품을 '인간의 중추신경에 작용하여 오남용할 경우 인체에 심각한 위해가 있는 것'으로 정의하고 있다.

하지만 학술적으로 향정신성약물(psychoactive substance 또는 psychoactive drug)은 'A drug or other substance that affects how the brain works and causes changes in mood, awareness, thoughts, feelings, or behavior. Examples of psychotropic substances include alcohol, caffeine, nicotine, marijuana, and certain pain medicines. Many illegal drugs, such as heroin, LSD, cocaine, and amphetamines are also psychotropic substances'로 정의되고 있다.

"향정신성약물은 마약이다"라는 명제는 성립하지 않지만 "모든 마약류는 향정신성약물이다"라는 명제는 성립한다. 학술적으로 보면 마약과 대마도 당연히 향정신성 약물이다.

더 나아가 '향정신성약물'은 마약류를 포함한 광범위한 약물들을 포함한다. 동일한 용어에 대한 학술적 의미와 법적 의미의 조화 방안을 찾아야 하는 이유다.

법은 향정신성의약품을 위험도에 따라 '가∼라' 목으로 분류하고 있는데, 이는 미국 Controlled Substance Act (CSA) Scheduling을 인용한 것으로 여겨진다.

미국은 마약류를 CSA Scheduling에 따라 5단계로 분류하고 있는데, 그 분류의 주요 기준은 남용(의존) 위험과 의료적 사용 여부이다. 그 물질이 아편류인지 대마류인지 구분하지 않고 즉, 모든 마약류를 물질의 종류에 상관없이 남용위험도에 따라 분류하였다.
 

 

향정신성의약품 분류와 CSA Scheduling의 비교

아래 비교표에서 보는 바와 같이 미국은 그 성분이나 출처에 상관없이 약물의 남용 위험성에 따라 등급을 분류한 반면, 우리 법은 남용 위험성을 향정신성의약품에만 적용하고 있다.

이는 마약인 아편류와 코카인류는 남용위험성과 사회적 위해도가 높다는 전제 하에 그 외의 기타 약물을 향정신성의약품으로 모아 놓고 남용 위험도에 따라 분류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과학의 발달과 마약류 암시장의 확산에 따라 규제 과정에 그 전제가 성립하지 않는 경우들이 자주 나타나고 있다.

미국 CSA Scheduling은 법과 규정에서 기본적으로 마약류로 분류된 물질들의 남용위험도와 사회적 위해도를 인지할 수 있도록 의도되었고, 과학적 근거에 기초하여 그렇게 이해되고 있다.

하지만 향정신성의약품의 가∼마 목 분류를 제외하면 우리의 마약류 정의와 분류표에서는 남용위험도와 사회적 위해도를 파악할 수 없다. 미국 CSA Scheduling의 취지에 맞추려면 마약과 대마도 향정신성 의약품을 가∼마 목으로 분류한 것처럼 분류하여야 남용 위험도와 사회적 위해도를 법에 적용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법은 지나치게 복잡해질 것이므로 좋은 방안이 될 수 없다. '혁신'이 필요하다.
 

마약의 정의에서는 합성품{그와 동일하게 남용되거나 해독(害毒) 작용을 일으킬 우려가 있는 화학적 합성품}을 명시함으로써 약리적 성질에 기초한 합성 아편류와 코카인류를 마약으로 편입시킬 수 있게 했다.

그러나 대마의 정의에서는 합성품을 '규정된 것과 동일한 화학적 합성품으로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것'으로 제한함에 따라 대마의 약리작용을 추구하여 칸나비노이드 수용체를 표적으로 합성된 화합물들이 학술적으로는 합성 칸나비노이드로 분류되지만 법적으로는 향정신성의약품으로 분류되고 있다. 이 또한 법과 과학의 부조화이다.

지난 칼럼에서 제시하였던 "모든 이치는 목적하는 바가 있고 그 이치의 서술은 정의에서부터 시작한다"와 "과학적 근거에 기반하여 약물남용과 중독의 문제를 해결하자"라는 주장을 반복한다. 세상은 하루가 다르게 변모하고 있지만, 우리의 법은 여전히 아날로그 세상에 머물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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