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게티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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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에 걸리면 기억력, 학습 능력, 언어 능력 등의 인지력이 전반적으로 감퇴한다. 상황을 종합하여 판단하고 결정을 하는 능력이나 추상적인 사고를 하는 능력도 떨어진다. 성격이나 감정 표현, 행동에 변화가 생긴다.

다만, 치매에 걸리면 대부분의 능력이 감퇴되는데 증상이 나타나면서 오히려 창의력을 드러내는 환자가 간혹 있다. 특히 치매에 걸린 후에 전에 없던 예술적 재능을 새롭게 나타내는 환자들이 있다.

캘리포니아주립대 의과대학의 신경과 의사인 브루스 밀러는 오랫동안 이런 주제로 연구해 왔는데 그가 학회에 보고한 사례들이다.

사진. 성은아 박사
사진. 성은아 박사

한 환자는 개인 사업을 하는 사람이었고 나이가 들면서 언어 구사력에 장애를 보이고 절제력과 판단력이 약해졌다. 상점에서 물건을 집어 들고 계산하지 않고 나오거나 공공 장소에서 옷차림이 무질서해지는 성향을 보이고 성격에 변화가 생겼다.

이 무렵, 그는 빛과 소리에 감각적으로 예민해졌다. 이전에 제대로 된 미술 교육을 받거나 그림에 흥미를 보인 적이 없었는데 간단한 미술 수업을 받고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언어 능력과 기억력, 판단력 등이 계속 감퇴되었으나 그림을 그리는 실력은 점점 향상되었다.

그는 공을 들이고 집중하여 그림을 그렸으며, 몇 년 후에는 지역 미술전에 출품하여 상까지 받았다.

치매에 걸려서 음악적 재능을 발굴한 사람도 있다. 이전에 특별히 음악 교육을 받은 적이 없는 환자가 있었다. 그는 언어학을 전공한 사람이었는데 실어증이 생기게 되었다. 그 무렵에 갑자기 음악에 흥미와 재능을 보이기 시작했다.

주위에서 그를 '휘파람 부는 사람'이라고 할 정도로 시도 때도 없이 휘파람을 불렀으며, 특히 새가 지저귀는 소리를 주제로 노래를 만들어서 부르곤 했다.

또 다른 환자는 언어 능력이 탁월해서 몇 개의 언어를 능숙하게 구사했다. 낱말 맞추기를 즐겨 하던 사람이었는데, 일상 생활에서 사용하는 단어들을 혼동하기 시작했다. 음악 교육을 거의 받지 못했던 그가 이 무렵에 음과 리듬에 아주 예민해지고, 고전 음악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는 68세에 처음 작곡을 했다. 음악에 관한 활동을 하는 동안은 아주 몰입을 하곤 했다. 그렇게 탁월했던 언어 능력이 감퇴한 후에도 음악적 능력은 지속되어서, 연주회에서 그가 작곡한 음악이 연주되기도 했다.

이들 환자는 치매에 걸리면서 전에 없던 능력이 새롭게 나타난 경우들이다. 미술이든 음악이든 새로 개발한 취미 활동을 할 때에 이런 환자들 대부분은 충동적이고 집중적이며 반복적인 성향을 보인다.

사진을 찍기 시작한 어느 환자는 한 가지 주제에 대한 완벽한 이미지를 찍기 위해서 상당한 시간과 노력을 투자했으며, 사진을 찍기 위해서 오지를 헤매기도 했다. 그림을 그리는 경우, 주로 사실적인 그림을 그리거나, 과거의 기억에서 떠올린 이미지를 그리며, 상징적이거나 추상적인 그림을 그리지 않는다.

어느 환자는 빛과 색에 예민해지면서 노란색 바지와 진분홍색 상의를 입기를 좋아했는데, 그림을 그릴 때에도 이 색깔들을 주로 사용했다.

발명을 하는 환자도 있다. 엔지니어로 평생 왕성하게 활동을 했던 환자였는데 68세가 되면서 성격이 변하여 심리적으로 위축되고, 절제 능력이 약해지면서 감정의 기복을 나타냈다. 그는 직업 때문에 다양한 기계들을 사용했는데, 언어 구사력이 많이 감퇴되어 늘 사용하던 기계의 이름을 더이상 말하지 못했다.

심지어 늘 먹는 음식의 이름조차 떠올리지 못했다. 그래도 그는 74세까지 새로운 발명을 하고 특허를 출원했다. 또 다른 엔지니어는 평생 비행기 설계 분야에서 일을 했다. 나이가 들어서 언어 능력이 감퇴되고 감정 표현이 둔화되었으나, 상당 기간 비행기와 관련된 설비의 설계를 계속했다.

새로운 능력을 개발한 경우는 아니지만, 언어 능력이 감퇴되고 치매가 진행되면서도 창의력이 지속된 환자들이다.
 

이들을 관통하는 키워드 '전두측두엽' 치매 환자

이 모든 환자들에게서 공통점이 있다. 이들은 모두 '전두측두엽' 치매 환자들이며 언어 능력에 장애를 보인다는 것이다.

알츠하이머병 환자는 전에 없었던 예술적 능력을 새롭게 나타내지 않는다. 알츠하이머병에 걸린 화가들의 경우 병이 진행되면서 화풍이 점차 단순하게 변한다는 사례가 알려져 있다. 전두측두엽 치매 환자들의 경우처럼 치매가 진행되어 다른 능력이 퇴화하면서도 더 정교하고 사실적인 그림을 그리는 경우는 없다.

전두측두엽 치매는 대뇌 피질 부위가 위축되고 신경이 손상되면서 증상을 나타낸다. 전두측두엽 치매는 세 번째로 흔한 치매이다.

가장 흔한 형태의 치매인 알츠하이머병은 신경의 손상이 뇌의 중심부 저변에서 시작되고 중증으로 발전하면서 대뇌 피질로 퍼져 나간다는 점에서 전두측두엽 치매와 다르다. 뇌출혈이나 외상 등의 원인으로 혈액 공급에 문제가 되어 발생하는 혈관성 치매와도 다르다.

혈관성 치매는 전체 치매의 20% 정도로 나타난다. 치매의 종류에 따라 신경이 손상되는 뇌의 영역이 다르므로, 증상도 다르게 발현한다. 알츠하이머병은 주로 기억력과 함께 시간과 공간에 대한 감각이 가장 먼저 장애를 보인다.

전두측두엽 치매의 경우 초기에는 기억력이 보존되는 반면, 종합하고 분석하고 판단하며 실행하는 사고 능력이 먼저 저하되며, 언어 표현 능력에서 장애가 나타나고 성격과 행동의 변화를 보인다.
 

전두측두엽 발병 = 창의력 구현?...일부에 불과

전두측두엽 치매에 걸려도 발병과 함께 창의력을 나타내는 환자는 아주 일부에 불과하다. 브루스 밀러가 최근 미국의학 학회지에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대략 700명의 전두측두엽 치매 환자들 중에서 17명, 즉 2.5%의 환자가 이에 해당한다.

이들이 예술적 활동에 능력과 관심을 나타내기 시작하는 때는 치매의 초기 증상을 보이는 때와 맞물린다. 그리고 이들 대부분은 단어의 의미를 파악하지 못하거나 실어증 증상을 보이는 등 언어 장애를 나타내는 환자들이다. 뇌의 영상이나 기능을 분석할 때에, 대뇌 피질 중의 좌엽에 신경의 손상이 나타나지만 우엽은 비교적 손상되지 않은 환자들이다.

치매에 걸리면서 어떻게 예술적 능력이나 창의력을 새롭게 나타나는가에 대한 해석은 아직 분분하다.

흔히 좌뇌형 인간, 우뇌형 인간이라는 말을 하는 것처럼, 좌측 뇌가 언어 능력과 분석적이고 구조화된 사고를 담당하며 우뇌가 이미지 중심의 직관이고 복합적인 사고를 담당한다고 한다. 환자들이 언어 장애를 나타내는 것도 좌엽이 손상되었기 때문이다.

이들 환자에게서 언어 기능 외에도 다른 조절 기능도 손상이 되어 있다고 보고 있다. 그 결과, 좌엽의 신경의 작용으로 억제되어 있던 능력이 신경의 손상 때문에 활성화되거나 감정의 표출이 자유로워져서 창의력이 나타나게 되었다고 해석한다.

특정 신경이 손상되면서 대신 창의력과 관련된 신경이 보상적으로 활성화된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어느 가설이 맞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규칙적으로 운동을 하거나 음악이나 미술 활동을 하면 신체와 두뇌에 자극을 주어서 치매의 예방을 위해서나 환자의 인지 능력을 유지하기 위해 도움이 된다고 알려져 있다. 그래서 환자들에게 인지 훈련이나 음악 치료, 미술 치료 등의 활동을 장려한다.

그렇다면 새롭게 예술에 관심을 가지게 되거나 재능을 보이는 환자들의 치매가 다른 환자들보다 느리게 진행될까? 창의력을 나타내는 환자들의 숫자가 적기 때문에 이에 대한 보고는 없다.

분명한 사실은 이들 환자들도 결국 시간이 경과하면 치매가 진행되어 예술적 능력도 감퇴한다는 점이다. 하지만 예술적 활동을 함으로써 자신의 감정을 자유롭게 분출하게 되니, 이러한 변화가 적어도 이들의 삶의 질에 나쁘지 않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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