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팜뉴스=김민건 기자] 신약개발 평균 기간 13.7년. 1상 성공률은 단 5%, 2상은 12%다. 이 수치는 신약개발에서 3상까지 가는 길이 얼마나 혹독한지 보여준다. 특히, 전임상 단계는 '죽음의 계곡'으로 불린다. 전임상 성공 확률은 3%에 불과하다. 

대한민국에서 죽음의 계곡을 통과, 성공적인 상업화까지 이뤄낸 신약은 손에 꼽는다. 국내 제약산업 역사에서 신약개발은 지난하고, 고독하고, 상처가 가득한 길이었다.

그러나 지난 2018년 유한양행은 비소세포폐암 신약 후보물질 '레이저티닙'을 총 1조4000억원대 규모로 얀센에 기술수출했다. 재작년 국내 조건부허가를 받음으로써 기나긴 죽음의 계곡을 통과, 세상의 빛을 본 대한민국 신약을 만들어냈다.

3상까지 진입한 경우 신약개발 성공 확률은 54%로 껑충 뛴다. 지난해 12월 발표한 EGFR 변이 양성 비소세포폐암 1차 치료에서 렉라자의 다국적 3상(LASER301) 결과는 탑라인(주요 평가변수)인 무진행 생존기간(PFS)을 충족시켰다. 최종적인 성공이 더욱 가시화됐다.

다국적제약사의 독과점 영역이나 마찬가지였던 항암제 시장을 뚫어냈다는 데서 렉라자는 더욱 빛을 발한다. 렉라자 투여 시 전체생존기간 중앙값(mOS)은 38.9개월, 폐암 환자에서 중요한 두개강내 무진행생존기간 중앙값(miPFS)은 26개월이다. 기존 폐암 치료제가 해결하지 못한 영역을 렉라자가 채워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국내 출시 1년 만에 80개 의료기관에서 약사위원회(Drug Committee, DC)를 통과해 처방되고 있다. 지난해 연매출은 약 330억원대(유한양행 자체 통계)를 기록했다. 현재 1·2세대 EGFR 표적 치료제에 내성이 생긴 T790M 2차 치료 허가 적응증이 향후 1차 치료까지 확대된다면 연매출 1000억원 이상도 전망한다. 얀센이 진행 중인 리브리반트+렉라자 병용이 성공한다면 글로벌 혁신신약으로도 도약 가능하다.

렉라자가 어떻게 다국적제약사들이 만든 글로벌 의약품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국가대표 신약이 될 수 있었을까. 그 이야기를 렉라자 PM인 구세진 부장으로부터 들을 수 있었다. 고가의 항암제 약가로 고통받는 국내 환자들에게 줄 수 있는 희망, 대한민국에서 나온 렉라자의 의미와 가치, 향후 잠재적 성장 가능성을 보도한다.

구 부장은 렉라자 허가와 급여, 실제 임상현장에서 사용되는 지금까지 담당자로 함께 하고 있다. 유한양행과 렉라자가 대한민국 신약 개발 역사를 써내려가고 있다.

구세진 PM
구세진 PM

▶유한양행에서 대한민국을 대표할 신약으로 렉라자를 꼽았다. 올해 혁신신약으로 주목할 이유가 무엇인지, 유한양행과 대한민국에 있어 렉라자는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나

"그동안 항암제 시장은 다국적제약사들의 영역이었다. 국내 제약사가 개발한 항암 신약으로는 처음으로 독보적인 다국적제약사 영역에 진입한 제품이 렉라자다. 세포독성항암제는 아주 오래 전에 만들었고 최근에는 표적치료제부터 면역항암제까지 사용하고 있다. 그런데도 국내 제약사에서 자체 개발한 세포독성항암제가 없다. 항암제 제네릭은 많아도 대부분 코프로모션을 했다. 자체 개발한 약제는 렉라자가 처음이다.

작년 12월 ESMO 아시아에서 발표한 글로벌 3상이 탑라인을 충족시킨 게 가장 큰 이슈였다. 의료진과 환자에게 기존 EGFR 변이 양성 환자에 쓰이던 폐암 치료제의 미충족 수요를 해소할 치료 옵션이 하나 더 생겼다는 점에서, 신약인데 효과까지 우수하니 화제가 됐다."

▶렉라자처럼 상업적 성공까지 거두고 있는 신약은 드물다. 3년 차를 맞은 올해 매출은 얼마를 기대하나

"내부적으로 합산한 지난해 매출은 330억원이다. 올해 매출은 이와 비슷하거나 상회할 것으로 예측한다. 현재 약제를 복용할 수 있는 유병률은 한정적이며, 환자 1명의 병변이 진행되기까지 복용할 수 있는 기간도 1년 정도다. 지금은 EGFR 변이 양성 T790M이라는 획득내성이 생겨야 렉라자를 쓸 수 있지만 2차에서 1차 치료로 가게 되면 시장이 더 커질 것이다기에 예상한 매출 이상도 가능하다고 본다."

▶렉라자를 처방 중인 의료기관은 몇곳인가

"주요 상급종합병원은 급여 출시 이후 DC위원회를 통과해야 한다. 렉라자에 대한 관심도 때문이지 긴급승인이 난 경우가 있을 정도로 1년 이내에 굉장히 빠르게 랜딩됐다. 85곳 정도는 처방 코드를 열었고 랜딩된 병원의 80%는 처방이 나왔다. 다만 아직은 T790M을 검사할 수 없는 병원에서는 처방이 나오지 않았다. 2차 치료인 T790M 환자의 1년간 발생 빈도를 1000여명으로 예상한다. EGFR 변이 양성 환자는 이보다 5배 많다. 1차 치료에 진입하게 되면 전국적으로 처방 비율이 높아질 것이다."

▶그만큼 의료 현장에서 인정받고 있다는 뜻인데 안정적이고 빠른 성장을 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인가

"의료진들이 EGFR 변이 환자에 가지고 있던 미충족 수요가 있다. 경쟁품은 아시아인과 L858R이라는 흔한 변이에서 치료가 어려운 경우를 커버하지 못했다. 기존 폐암 치료제들이 해주지 못했던 미충족 수요를 렉라자가 뇌전이 효과와 38.9개월이라는 OS 수치로 충족시켰다고 생각한다. 

또한 기존에는 EGFR T790M 획득내성을 커버하는 약제가 오직 하나였다. 한 약제가 독점한다면 대안이 하나지만, 부작용이나 이상반응이 생겼을 때 바꿀 수 있는 치료 옵션이 있다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 부분이다. 환자와 의료진에게 새로운 옵션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시장에 빠르게 안착했다고 본다."

▶지난 2005년 항궤양제 레바넥스 이후 16년 만에 선보인 신약이 렉라자다. 경쟁이 치열하고 개발이 쉽지 않은 EGFR 변이 치료 영역을 선택한 이유가 궁금하다

"유한양행은 양갈래로 신약개발 체제를 갖추고 있다. 후보물질부터 자체 개발을 하는 경우가 있고, 다른 업체에서 신약 후보물질을 가지고 와 연구를 진행하는 오픈이노베이션이 있다. 렉라자는 오픈이노베이션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처음부터 EGFR 변이를 해야겠다는 의지로 시작한 것은 아니다. 오스코텍 미국 자회사인 제노스코의 고종성 박사와 당시 유한양행 중앙연구소 남수연 소장이 타그리소와 견줄 수 있는 새로운 후보물질인 레이저티닙을 가지고 연구에 착수하게 된 것이 개발 배경이다.

오픈이노베이션을 시작할 때도 레이저티닙을 목표로 한 것은 아니다. 지금도 탐색부터 여러 전임상 단계에서 30여개의 파이프라인 연구를 하고 있다. 항암제 파이프라인은 12개 정도 진행하고 있으며 면역항암제도 있다."

렉라자
렉라자

▶오픈이노베이션을 통해 렉라자를 개발하고 허가까지 받는 과정이 쉽지 않았을 것 같다

"의약품을 생산해서 제품 이름을 달고 출시되기 까지는 굉장히 긴 시간과 여러 연구 과정을 거쳐야 한다. 주요 평가변수(탑라인)를 충족해야 하고 여러가지 이상반응과 효능효과, 안전성 등 여러 기준점을 맞춰야 한다. 하나라도 만족하지 못하면 시장에 출시하기 어렵다. 레이저티닙도 후보물질에서 전임상 단계, 임상 1·2상을 거쳐 3상을 진행하는 굉장히 긴 과정을 거쳐서 선보일 수 있었다."

▶국산 신약이라고 하면 많은 기대감을 가지고 본다. 하지만 항암제 영역은 다국적제약사라는 높은 벽을 뚫고 들어가야 한다. 렉라자의 임상 데이터가 좋게 나오기는 했지만 국내 시장에서 처방이 이뤄지기까지 과정도 쉽지 않았을 것 같다

"초기 시장 진입 당시에 종양내과 영역의 항암제 파이프라인을 많이 갖추지 않고 있다보니 의료진과 깊은 신뢰(라포)가 없었다. 라포는 치료 영역에서 환자와 의사간 깊은 믿음과 신뢰를 의미하는 용어로 쓰인다. 제약사도 비즈니스 파트너로서 의료진과 신뢰가 중요하다. 다국적제약사의 경우 초기 표적치료제인 이레사부터 시작해서 15~20년전부터 의료진들의 깊은 믿음이 있었다. 렉라자는 새롭게 깊은 신뢰를 구축해나가야 하는 상황이어서 힘든 부분이 있었다. 

다만 앞서 말한 것처럼 기존 약제가 가진 미충족 수요를 해소하고, 새로운 옵션이라는 점에서 시장 진입에 시간이 조금 걸렸지만, 렉라자를 자체 개발하고 시장에 진입하는 과정들이 향후 오픈이노베이션이나 파이프라인 개발에 초석이 됐다고 할 수 있다."

▶국내 허가 당시와 보험급여 적용, 첫 처방이 이뤄졌을 때 회사 내부의 고무적인 분위기나 담당자로서 당시 소회를 듣고 싶다

"조건부허가를 받았던 1월 18일에 현장에 있었고, 급여가 된 7월 1일에도 렉라자 관련 직원이 모두 모여 건강보험심사평가원 고시가 뜨기를 기다렸다. 당시에는 하루 전날까지도 급여를 보장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4시쯤 이후 결과가 나왔고 전부 환호성을 질렀다. 

굉장히 빠른 기간에 조건부허가와 급여가 이뤄졌고 사명감과 자신감이 있었다. 한편으로는 시장에서 새롭게 경쟁을 시작해야 한다는 점과 실제 진료 현장에서 사용하면서 평가받아야 한다는 부분 때문에 긴장도 많이 했다.

다행스럽고 기뻤던 것은 곧바로 처방이 나온 것이다. 렉라자가 의료진의 미충족수요를 맞췄는지, DC 기간이 있었음에도 응급DC로 정말 빠르게 처방이 이뤄진 경우처럼 의료진이 렉라자에 대한 보여준 믿음이 우리와 하나됐던 것 같아 그 기쁨이 컸다."

구세진 PM
구세진 PM

▶얀센과 함께 개발하고 있다는 것만으로 렉라자가 글로벌 수준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해외 시장 진출 또는 향후 성장 수준을 어디까지 기대할 수 있나

"해외진출 관련 권한은 얀센에 있고 국내 프로모션만 유한이 하고 있다. 글로벌 시장 진출 핵심은 결국 연구 근거다. FDA허가도 마찬가지다. 얀센이 기대하고 있는 것은 마리포사(MARIPOSA) 임상과 크리살리스(CHRYSALIS) 임상이다.

크리살리스 임상은 이전에 세포독성항암 치료를 받은 환자가 타그리소를 쓰고 그 이후에 렉라자와 리브리반트 병용 효과를 보는 것이다. 마리포사 임상은 EGFR 변이 양성 환자에게 렉라자, 타그리소 단독투여군 대비 렉라자와 리브리반트 병용 효과를 보는 것이다. 이 결과의 중간값이 올해 나올 것인데 그렇게 되면 글로벌 시장 진출 부분도 굉장히 확장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 주도권은 얀센에 있으며 렉라자 단독요법 FDA 허가는 별도로 준비하고 있다."

▶렉라자는 T790M 변이 2차 치료제에서 1차 치료로 적응증을 확대하려고 한다. 1차 치료제 허가 확대가 가장 많은 관심을 모으고 있는데 올해 상반기에는 허가신청이 이뤄지는지 궁금하다(유한양행은 인터뷰 이후인 3월 17일 공시를 통해 식약처에 1차 치료 적응증 추가 변경을 신청했다고 알렸다)

"허가신청은 이번달 안에 될 것이다. 중요한 것은 허가까지 기간이다. 우리 목표는 적어도 3분기 이내에 허가를 완료할 수 있도록 준비를 많이 하고 있다."

유한양행 사옥 전경

▶과거 한미약품 올리타와 아스트라제네카 타그리소가 비소세포폐암 EGFR T790M 변이 신약 허가, 급여 과정에서 경쟁했다. 렉라자가 그 뒤를 이어 글로벌 메가 블록버스터 신약이 된 타그리소와 나란히 하고 있다. 렉라자만의 차별화된 임상적 혜택과 현재 폐암 치료 환경의 미충족 수요를 맞출 수 있는 부분을 얘기해달라

"의료현장에서 가장 큰 미충족 수요는 3세대 EGFR TKI 치료제에 저항성이 생기는 것이다. 대략 1년 전후로 병변이 커지는 부분이 새로운 미충족 수요가 될 것 같다. 렉라자가 경쟁품 대비 효과를 낼 수 있는 부분이라면 뇌전이 항종양 효과다. 두개강내 무진행생존기간이 26개월이었고 전체생존기간도 38.9개월이 나왔다. 이 부분이 기존 치료제가 가진 미충족 수요를 해소할 수 있는 부분이다. 렉라자만의 차별화된 포인트로 글로벌 신약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고 앞으로 한단계 나아가려고 한다."

▶뇌전이 항종양 효과가 중요한 이유가 있나

"보통 비소세포폐암 환자 연구결과를 보면 초기 뇌전이가 24%, 1년 이내에 50%까지 발생하는 빈도를 보인다. 폐암은 50%가 뇌로 전이된다. 결국 폐암 환자는 절반 이상이 뇌전이가 된다고 보면 된다. 그래서 폐암 치료에서 뇌전이 항종양 효과가 굉장히 중요하다. 대다수 항암제들이 2차 평가변수로 무진행생존기간 뿐만 아니라 두개강내 무진행생존기간을 평가하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현재 렉라자를 담당하고 있는 (왼쪽)조민규 PM(대리), 구세진 PM(부장)
현재 렉라자를 담당하고 있는 (왼쪽)조민규 PM(대리), 구세진 PM(부장)

▶마지막으로, 국내 제약사들이 유한양행을 롤모델 삼아 '국가대표 의약품'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신약개발이라는 쉽지 않은 도전에 먼저 나선 입장에서 조언이 될 얘기를 해달라

"제약사들이 신약개발을 할 때는 엄청난 노력과 시간이 들어간다. 그런 과정을 거쳐 안전성과 유효성을 입증하고 제품으로 출시가 되면 그때부터는 허가 과정이 굉장히 중요하다.

최근 정부가 제약산업 육성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을 개정했다. 신약개발이 오랜 시간이 걸리지만 이러한 특별법을 통해 국내 제약사들도 공통적으로 패스트트랙을 받게 될 것으로 본다. 

국내 제약바이오는 글로벌 시장의 2000조에 비하면 20조로 미미한 상황이다. 글로벌 시장을 주도하는 기업 전부 다국적제약사다. 정부부처의 관심과 제도적 개선들이 우리나라가 강국인 자동차, IT산업 외에도 국내 제약사 의약품 생산과 혁신신약 개발에 기여할 것으로 생각한다.

유한양행은 사회적 환원을 기조로 실천하고 있다. 렉라자가 국내 신약이라는 점은 다국적제약사가 하기 힘든 약값을 많이 낮추거나, 환자를 우선시해서 생각할 수 있는 점들이 있다. 렉라자로 하여금 더 많은 폐암 환자들이 약값 부담없이 복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국내 신약이라는 점에서 유한양행만이 실천할 수 있는 이점이자 과제가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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