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이자와 함께 코로나 백신을 개발한 바이오앤텍의 창업자 부부인 샤힌과 튀레치가 암을 치료하는 항암 백신이 2030 년까지는 나올 것이라고 최근 밝혔다. 역시 코로나 백신을 개발한 모더나도 머크와 함께 항암 백신을 개발하고 있다. 팬데믹 동안 축적된 백신 개발의 여력이 다른 질환, 특히 항암 치료로 방향이 전환되는 것은 당연하다고 하겠다.

백신이란 무엇인가? 백신을 예방주사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엄밀하게 말하면 이들은 동의어가 아니다. 백신은 흔히 질병의 예방 목적으로 투약하지만, 또한 치료 목적으로도 투약한다. 백신은 질병과 관련된 물질, 즉 항원을 신체에 투입하여 질병에 대한 면역 능력을 향상시키는 것이다. 항암 백신의 원리도 마찬가지이다. 환자에게서 면역 반응을 유도하여 암세포에 대한 저항성과 공격성을 증가시킨다. 항암 백신은 면역요법의 일종으로서, 건강한 사람이 암을 예방하도록 투약하기도 하고, 암환자의 치료를 위해서도 투약한다. 

사진. 성은아 박사
사진. 성은아 박사

암을 예방하는 목적으로 FDA의 허가를 받은 백신으로는 인유두종 (파필로마) 바이러스에서 기인하는 자궁경부암 및 항문생식기암 등 몇 가지 암을 예방하고자 투여하는 서바릭스, 가다실, 가다실 9이 있고, B형 간염 바이러스에서 기인하는 간암을 예방하고자 투여하는 헵리사브가 있다. 이들은 모두 바이러스 감염과 관련된 암을 예방할 목적으로 사용한다. 그런데, 대부분의 암은 신체 세포의 유전자 변이에 의해 발병하고, 바이러스 감염과 관련이 없다. 유전자 변이에 의한 암을 예방하는 목적으로 투여하는 백신은 아직 없다. 

암 치료용 백신은 임상시험에서 대체로 환자의 생존 기간을 몇 달 이상 연장하는 효과가 있으나 종양을 억제하는 효과는 미약하여 개발이 부진하고, 다른 면역 항암제에 비해서 경쟁력이 약한 편이다. 암을 치료하는 목적으로 FDA 허가를 받은 백신으로서 전립선암 치료제인 프로벤지가 있다. 전립선암 세포는 정상 세포에 비해서 PAP이라는 항원이 과다하게 발현하고 있으므로, 프로벤지는 이를 암항원으로 인지하는 면역 반응을 유도하게 한다. 전통적인 백신처럼 암항원을 환자에게 직접 투여하지 않고, 환자의 혈액 세포를 추출해서 PAP 항원을 발현하도록 유전자 조작해서 환자에게 다시 주입한다. 백신이면서 세포면역제이다. 이런 방식의 백신은 보다 효율적인 면역 반응을 유도하며, 부작용이 비교적 적다. 

결핵 예방 주사로 알려진 비시지 (BCG) 백신이 오래 전부터 방광암 치료 및 재발 방지의 목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결핵균을 무력화시킨 BCG는 방광암과 직접적인 연관이 없어서, 항암 작용의 기전은 명확히 알려져 있지 않으나, 신체의 면역 반응을 증강시킴으로써 환자의 치료를 돕는다고 보고 있다. 지난 번에 ‘항암바이러스제의 현황과 잠재력’에서 쓴 항암바이러스도 환자의 면역력을 증강시킨다는 점에서 항암 백신으로 분류하기도 한다. 항암바이러스제로서 티벡 (상표명 임리직)이 피부암에 대하여 승인을 받아 사용되고 있다.

대개의 경우 백신은 특정 질병, 항암 백신의 경우에는 특정 암과 관련된 물질을 항원으로 사용한다. 가장 전형적인 형태의 백신은 단백질이나 펩타이드 (단백질 분자의 일부분)를 사용한다. 항원이 되는 단백질 또는 펩타이드를 세포주나 계란 등을 이용해서 대량으로 생산하고 고도의 순도로 분리하는 제조 과정이 필요하다. 단백질이나 펩타이드에 대한 유전정보 물질인 DNA나 RNA도 백신으로 사용할 수 있다. 세포는 DNA의 유전정보를 근거로 단백질을 합성한다. RNA는 필요한 부분의 유전정보를 복사한 매개체이다. 원본은 그대로 두고, 복사물을 이용해서 단백질 합성의 계획서로 편리하게 사용하는 것이다. 암항원의 유전정보인 DNA나 RNA를 직접 투여하면, 체내에서 유전정보를 근거로 항원인 단백질이 만들어지므로, 백신 생산을 위해서 단백질을 생산하거나 분리하는 과정을 모두 생략할 수 있으며, 또한 DNA나 RNA는 단백질에 비하여 분리하기가 훨씬 용이하기 때문에 생산 공정의 면에서 유리하다. 

DNA 백신은 아직 허가된 것이 없다. 코로나 바이러스 백신은 최초로 승인된 RNA 백신이다. 팬데믹 동안 수십 억 명의 사람에게 사용할 양의 백신을 짧은 시간 내에 개발하고 생산을 해야 하는 필요성에 의해 RNA 백신이 사용되었다. DNA가 아니라 RNA가 사용된 이유는 안전성 때문이다. 외부에서 백신으로 주입한 DNA가 세포 내의 DNA의 집합체인 염색체에 끼어들 가능성이 있으며, 이로 인해 체내의 중요한 유전정보가 교란될 경우 암이나 기타 다른 질병을 유발한 확률이 있다. RNA는 염색체에 끼어 들어갈 염려가 없으므로 백신으로 사용하기에 보다 안전하다. RNA는 쉽게 분해되어 매우 불안정하다는 단점이 있다. 그래서 RNA 백신을 나노입자 크기의 비누방울과 유사한 성질의 포장재로 포장하여 투여한다. 

이 글의 서두에서 언급한 바이오앤텍이 개발 중인 백신, 그리고 모더나와 머크가 함께 개발 중인 백신이 RNA 백신으로서, 특히 이들은 ‘맞춤형 항암 백신’을 개발 중이다. 맞춤형 백신이란, 환자 한 사람을 위한 백신을 디자인해서 만든다는 개념이다. 굳이 단일 암항원에 집중하지 않고, 환자가 가지는 복수의 암항원에 대하여 복합적이고 총체적인 면역 반응을 환자의 체내에서 유도함으로써 효과적인 항암 치료를 하고자 한다. 맞춤형 백신 개발에서 DNA, 펩타이드, 바이러스 형태도 사용하지만, 코로나 바이러스 팬데믹 이후 RNA 형태의 백신이 아무래도 주목을 받는다.

여기에서 암항원이 무엇인가 짚어 볼 필요가 있다. 정상 세포에 비해 암세포에 과다하게 발현하는 암항원이 있는 반면, 유전자 변이 때문에 암세포에만 발현하는 암항원이 있다. 특정 종류의 암세포에 대부분 발현하는 항원도 있고, 특정 암의 일부 그룹의 환자에서 발현하는 경우도 있고, 환자마다 특유한 항원도 있다. 환자마다 특유한 항원이 있는 이유는 암세포가 무절제한 증식을 거듭하면서 환자 개인마다 유전자 변이가 누적되기 때문이다. 맞춤형 치료를 위해서, 환자 개인의 암에 있는 유전자 변이를 총체적으로 분석해서, 이에 대한 백신을 만든다. 유전자 분석 기술, 유전자 정보 기술, 백신 제조 기술을 종합하여 환자 개인의 암에 특화된 효율적인 백신을 만들어서 치료를 한다.

 환자의 암세포를 분석해서 환자 고유의 암항원을 모두 찾아 내고 이에 대한 복합 항원을 만들어 환자에게 투여한다고 해도, 만들어진 암항원이 모두 효과적인 면역 반응을 유도하지 않는다. 그래서 유전자 정보 기술을 이용해서 암항원을 분석하여 면역 반응을 잘 유도하는 암항원들을 선택하여 백신을 만든다. 피부암, 폐암, 방광암 등 유전자 변이가 특히 많은 암은 양질의 암항원도 많을 테니, 이들에 대한 맞춤형 백신 개발이 이루어지고 있다. 뇌종양 중의 하나인 교모세포종과 같이 유전자 변이가 비교적 적고 면역세포가 작용하기 어려운 암도 있는데, 이 경우에도 환자마다 특유한 변이가 상당수 있어서 맞춤형 백신의 개발이 진행 중이다. 지금까지의 임상시험에서, 환자의 암세포를 추출해서 유전자 분석을 하여 백신을 만들어 투여하기까지 12 주에서 25 주 사이가 걸린다. 그 기간 동안 암이 너무 진행되어 백신을 만들어도 환자가 사용하지 못한 경우가 임상시험 중에 있었으며, 실용화되기까지 기술적으로 개선할 여지가 있다. 

맞춤형 항암 백신은 바이오앤텍, 모더나와 머크, 그리스톤 바이오 등이 RNA 형태로 개발하고 있으며, 로슈, J&J 및 누스콤, 큐어박 등 바이오텍이 DNA, 바이러스, 펩타이드 형태로 다양하게 개발하고 있다. 바이오앤텍 창업자의 말 대로 2030 년 이전에 맞춤형 항암 백신이 성공할지 확신하지 못하는 의견도 있지만, 맞춤형 항암 치료가 결국 기술적으로 현실화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은 대체로 부정하지 않는다. 아직까지는 임상 시험 1 상과 2 상 단계에 있어서 치료의 유효성과 지속성이 입증되지 못했으며, 개발이 되어도 다른 면역항암제와 비교하여 경쟁력을 확보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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