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팜뉴스=최선재·김민건 기자] 깐부는 어릴 때 구슬이랑 딱지치기를 같이 하는 친구를 말한다.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게임’의 주인공 오일남이 언급한 이후 끈끈한 친구 관계를 상징하는 용어로 쓰이고 있다. 앞서 1편에서 보령제약과 일라이릴리의 관계를 ‘깐부’로 규정한 이유다. 코프로모션을 통해 쌓은 깐부 관계를 바탕으로 보령제약은 일라이릴리의 조현병 치료제 ‘자이프렉사’의 국내 판권을 사들였다. 

팜뉴스 이슈기획 1편은 ‘보령판’ LBA 전략의 숨은 배경을 짚었다. 업계 전문가들은 제네릭 공동생동 환경 악화와 CNS 시장 주도권 확보를 위한 종합병원권 돌파가 보령제약 LBA 전략에 영향을 미쳤다고 평가했다. 이번 2편은 일라이릴리가 보령제약에게 항암제 젬자와 자이프렉사 등을 잇달아 매각한 배경을 독점 분석했다. 핵심 키워드는 바로 ‘특허 만료 의약품’이다. 

게티 이미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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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전벽해(桑田碧海), 글로벌 의약품 시장이 급변했다

“뽕나무 밭이 푸른 바다가 되었다.” 상전벽해의 뜻이다. 불과 20년 사이 글로벌 의약품 시장은 몰라볼 정도로 달라졌다. 보령제약과 일라이릴리의 이번 딜을 분석하기 위해 글로벌 의약품 흐름을 돌아볼 필요가 있는 이유다.

2000년대 초반은 고혈압, 고지혈증, 우울증 치료제 전성시대였다. 경제적 성장을 자양분 삼아 비만, 당뇨를 비롯한 내분비 질환이 전 세계 현대인들의 건강을 잠식했고, 경제가 고도화될수록 사람들의 정신은 피폐해졌다. 

특히 우울증 치료제는 글로벌 빅파마의 주요 매출 품목으로 떠올랐다. 20년 전 세계 의약품 매출 톱10에 오른 일라이릴리 향정신성의약품 자이프렉사(2000년대 기준 4000만달러)도 그 중 하나였다. CNS 시장의 글로벌 블록버스터 대표주자였다. 

하지만 20년이 흐른 지금, 위기가 시작됐다. 2021년 현재, 대부분의 블록버스터 합성의약품은 특허 만료를 맞았다. 의약품 특허권의 만료 기간은 20년이다. 특허 보호 기간이 끝나면 그 시장을 향해 제네릭 의약품이 치고 들어온다. 독점 시장이 치열한 경쟁 환경으로 변한다.

글로벌 빅파마 약가 담당자는 “통상 특허가 풀린 의약품 시장은 아무리 빅파마라도 점유율 1위를 유지하는 것은 쉽지 않다”며 “국내사들이 제네릭을 생산하고 더욱 저렴한 약가로 공격적인 마케팅을 벌이면 오리지널 독점 시장이 깨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일라이릴리가 글로벌 톱10 매출을 기록하던 자이프렉사의 국내 모든 권리를 보령제약에 매도한 배경에 ‘특허 만료 리스크’가 작용했다는 게 업계 분석이다. 특허 만료 이후 오리지널 보유 제약사는 더이상 안정적 매출을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수익 구조 붕괴라는 현실에 직면하면서 일라이릴리에게 새로운 돌파구가 필요했던 셈이다. 

약사 출신 마케팅 전문가는 “가만히 있으면 제네릭이 시장을 빼앗기 때문에 일라이릴리가 젬자와 자이프렉사를 넘긴 것”이라며 “차라리 한 번에 거위 배를 가르는 것이 낫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 매년 10억씩 이익을 얻을 바에는, 50억을 주고 한 번에 파는 것이 관리비용이나 조직을 위해서도 좋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보령제약도 손해는 아니다”며 “제네릭이라는 리스크가 있지만 특허 만료 의약품 사례 중 예외도 있다. 이상지질혈증 치료제 ‘리피토’는 특허 만료약이지만 10년째 점유율 1위를 질주 중이다. 오리지널 제약사라는 이미지를 구축하면서 CNS 시장을 선점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양사가 윈윈(WIN-WIN)할 수 있는 접점을 찾은 것이 이번 딜로 이어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일반적으로 특허 만료로 저하된 매출을 회복할 수 있는 방법은 신약 출시다. 하지만 신약 개발에는 막대한 비용과 시간, 인력이 필요하다.

신약 효과면에서 우월성 입증은 더욱 어렵고 비열등성을 무기삼아도 글로벌 빅파마가 구축한 전통적인 표준 치료 라인을 깨기 힘든 것이 현실이다. 보령제약의 LBA가 일라이릴리와 이해관계가 정확히 맞아 떨어진 이유다.

# 당뇨 강자에서 혁신적 제약사로 꾀하는 릴리...오리지널 바겐세일했나

이제 일라이릴리의 신약 파이프라인을 살펴볼 차례다. 글로벌 의약품 환경에 맞서기 위해 일라이릴리는 사업부 재편을 통해 핵심 전략을 거듭 수정 중이다. 

“젬자와 자이프렉사를 보령제약에 넘긴 이유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일라이릴리 측도 “지난 계약이나 이번 계약 둘 다 우리가 신제품이랑 새로운 적응증 출시에 집중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라고 설명했다. 
 
일라이릴리는 당뇨 치료제 분야 강자로 알려져 있지만 현재 주력 분야는 알츠하이머, 암, 코로나19, 면역학 등 혁신적 치료제가 쏟아지는 분야로 확대됐다. 최근 수년간 신약 개발에 매진하며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고 있다. 

일라이릴리는 지난 2017년 R&D 전략을 바꾸는 과정에서 인력 감축에 나서는 등 꾸준히 구조조정에 나서고 있다. 불필요한 지출을 줄여 신약 개발에 투자하기 위해서다. 특히 올해는 알츠하이머 치료제를 담당하는 신경과학 사업부 신설을 발표하며 더욱 두드러진 ‘선택과 집중’ 행보를 보이고 있다.

2020년 일라이릴리는 R&D 비용으로만 60억달러(약 7조원)를 썼다. 이는 연간 매출액 246억달러(20조원)의 25%에 달한다. 지난 몇 년 간의 꾸준한 투자는 GLP-1 당뇨치료제 '트루리시티', IL-17억제제 ‘탈츠’, TNF-a억제제 ‘올루미언트,’ CDK4/6억제 전이성 유방암 치료제 ‘버제니오’, CGRP 표적 편두통 치료제 ‘앰겔러티’ 같은 신약 성공 사례로 이어지고 있다. 

여기에 RET 유전자 저해 항암제 ‘레테브모’, 알츠하이머 치료제 ‘도나네맙’, IL-13억제제 ‘레브리키주맙’, IL-23억제제 ‘미리키주맙’, 면역항암제 ‘티비트’, 2형 당뇨치료제 ‘티어제파티드’ 등 유전자, 생물학적 제제를 이용한 혁신적 치료제 임상이 한창이다. 일라이릴리 시선이 투자가 절박한 사업 분야로 이동하고 있다는 뜻이다. 

이는 반대로, 새로운 제품의 성공적인 안착을 위해 가치가 하락한 의약품을 정리할 필요가 있는 셈이기도 하다. 매각 대상을 특허 만료 의약품인 젬자나 자이프렉사로 정한 이유로 볼 수 있다. 현재 시점에서 다소 가치가 떨어지기 때문에 일라이릴리가 이번 기회를 매각 타이밍의 최적 조건으로 판단했다는 게 업계의 주된 평가다.

글로벌 빅파마 약가 담당자는 “글로벌 빅파마는 특정 품목 취급할 필요성을 찾지 못하면 과감하게 행동한다”며 “LBA 성격의 딜을 해외에서 본적이 있는데, 항암제와 CNS 쪽 세트 구성의 마지막 퍼즐을 보령제약에 제공하면 일라이릴리가 자신들 나름의 선택과 집중을 할 수 있다고 판단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 약가 인하 보상 소송... 릴리의 결정에 영향 미쳤을까 

특히, 자이프렉사는 작년 11월 일라이릴리가 한미약품과 명인제약을 상대로 제기했던 자이프렉사 출시에 따른 약가인하 손해보상 소송에서 패하며 그 가치가 더욱 떨어졌을 것이라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시선이다. 

10년 간의 지리한 소송이 지난해에야 결론이 났지만 제네릭 출시 이후 소송 패소와 자이프렉사 판매를 위한 영업 인력 등을 유지하기에는 비용 대비 효용성이 떨어진다고 판단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일라이릴리는 1991년 자이프렉사 특허를 받았다. 한미약품은 2008년 허가특허연계제도를 통해 자이프렉사 특허 만료 이전에 제네릭을 출시하고자 했다. ‘우선판매품목허가제’를 활용한 ‘퍼스트 제네릭 전략’이었다. 

한미약품은 자이프렉사 특허만료일 2011년 4월 24일 이전에 제네릭 출시를 위한 ‘특허무효 심판소송’에 나서 2010년 11월 특허법원으로부터 특허 무효 판결을 받아냈다. 심판소송에서 이긴 한미약품은 자이프렉사 특허만료일보다 4개월 이른 2010년 10월 제네릭을 출시했고, 이를 지켜보던 명인제약도 제네릭 조기 출시에 동참했다. 

이로 인해 자이프렉사 오리지널 약가는 특허 만료일 이전보다 이른 시점에 20% 인하됐다. 하지만 2012년 대법원에서 앞서의 특허 무효 판결을 파기 환송하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일라이릴리는 오리지널사 자격으로는 사상 처음으로 국내 제네릭사들을 향해 특허침해와 약가인하 손해배상을 제기했다. 약가 영역의 상징적인 소송이었기 때문에 당시 국내 제약업계의 분위기가 출렁일 정도였다. 

10년에 걸친 소송은 2020년 12월에 끝났다. 대법원이 퍼스트 제네릭 출시 회사(한미약품)에는 오리지널 의약품 약가인하 책임이 없다는 판결을 내리면서다. 최근에는 오리지널사들이 제네릭 출시와 함께 약가인하 집행정지를 신청하지만 10년간의 제약업계 향방을 좌지우지할 만한 소송이었던 것은 사실이다.  

대법원 판결 이후 제네릭 출시로 상징적인 약가인하가 이뤄지면서 자이프렉사 가치가 다소 떨어졌다. 20% 약가인하로 수익과 마진이 그만큼 하락했기 때문이다. 물론 일라이릴리 관계자는 이같은 관점에 대해 “두 번의 거래는 자이프렉사 소송 패소와는 아무런 연관이 없다”고 밝혔다. 

하지만 국내 대형제약사 특허전문가는 “통상 오리지널사는 신제품 위주로 영업을 한다”며 “자이프렉사나 젬자는 이미 오래된 약인데 약가 인하로 마진이 떨어지니 영업도 열심히 안 할 것이고 오리지널사 입장에서는 조건이 맞으면 국내사에 넘기고 싶었을 것이다“고 말했다. 그는 “오히려 신제품이 계속 나오니 그쪽으로 영업을 집중하려 할 것이다. 일라이릴리가 보령제약에 넘긴 제품이 다 그런 약이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보령제약도 새로운 분야를 뚫으려면 오리지널 제품이 필요한데 특허가 남은 것은 워낙 비싸고 매물로 나온 제품도 보기 힘들었을 것“이라면서 “구매 조건이 좋지 않아 (특허 만료 이후) 낮은 가격으로 가져와 시장을 뚫는 용도로 쓰기에는 맞았을 것이고, 특히 항암제와 정신계 제품은 오리지널이 워낙 강세이기 때문에 새로운 시장을 뚫기 위해 의사를 많이 접촉할 수 있는 제품이 필요했을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 보령제약은 자사 대표 제품인 고혈압치료제 카나브를 이을 캐쉬카우(현금창출원) 품목군으로 항암제를 보고 있다. 보령제약은 국내사 중 항암제 시장 1위 업체로 평가된다. 여기에 작년 전문의약품 부분 산하에서 항암제 부서를 별도로 신설했다. 항암제 시장 점유율 강화 목적에서 전문의약품 사업부서를 RX(전문의약품)와 항암제로 구분한 것이다.

젬자는 보령제약 항암제 시장 매출 1위 유지에 도움을 주고 있다. 보령제약은 1000억원대인 항암제 매출을 오는 2025년까지 25% 수준으로 높일 계획이다. 보령제약 역시, 젬자를 사들임으로써 국내 매출 확대에 도움이 됐다고 밝힌 바 있다.

자이프렉사도 젬자의 성공을 이어갈 수 있을까. 두 제약 ‘깐부’가 촉발한 이번 거래의 결과를 향해 초미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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