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게티이미지뱅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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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약처장 자리가 금배지 획득을 위한 일종의 ‘하이패스’로 변질되자 약업계와 시민사회에서 역대 일부 처장들의 정치적 행보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류영진 식품의약품안전처장은 최근 열린 부산시약사회 정기대의원총회에서 “함부로 거취를 이야기하면 안 되지만, 조만간 부산으로 내려오려고 한다. 부산에 내려오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고 곧 그렇게 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류 처장이 조만간 처장직을 내려놓고 21대 총선에 뛰어들 수 있다는 메시지로 읽힐 수 있는 발언이었다.

정치는 곧 메시지다. ‘시간’과 ‘공간’을 살펴보면 맥락을 짚어낼 수 있다.

일단 타이밍이 묘하다. 청와대는 다음달 초, 최대 7개 부처 장관을 바꾸는 중폭 개각을 단행할 예정이다. 여기에 내년 총선에 출마할 정치인 출신 장관들이 개각 대상으로 하마평에 오른 상황이다. 곧 부산으로 내려온다는 류 처장의 깜짝 발언을 총선 출마로 연결할 수 있는 배경이다.

발언 장소는 부산이었다. 류 처장은 30여 년 약사 경력을 기반으로 부산에서 정치 활동을 해온 인물. 2012년 18대 대선부터 문재인 대통령과 인연을 맺었고 올해 대선에서는 민주당 부산 선대위 특보단장을 맡았다. 20대 총선에서 비례대표로 원내 입성에 실패한 류 처장이 부산 지역을 거점으로, 21대 총선에 재도전할 것이라고 보는 것은 과한 추측이 아니다.

문제는 약업계에서 류 처장의 행보에 대해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다는 점.

약업계 한 관계자는 “이명박 박근혜 정부 때의 식약처장들은 식약처 본연의 업무보다는 잿밥에 관심이 많았다”며 “문재인 정권이 들어선 뒤 류 처장은 다를 줄 알았지만 똑같았다. 개선된 것도 없고 규제 면에서 진일보한 부분도 없다. 식약처장 자리가 총선 ‘치적 쌓기용’으로 전락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류 처장이 해결해야 할 현안도 산더미처럼 쌓여있다.

지난해 말부터 보건복지부와 식약처 등 보건당국은 발사르탄 사태를 계기로 공동생동, 의약품허가제도 중 연구개발, 유통질서, 수출 등에 관련한 제도 변화를 예고했다. 공동생동 폐지와 같은 고강도 대책이 나올 수도 있는 상황에서 식약처장이 자신의 진퇴 문제를 스스로 언급했다는 점 자체가 약업계에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뜻이다.

‘데자뷔’일까. 역사를 살펴보면, 류 처장의 최근 행보에 대해 부정적인 의견이 나오는 이유를 알 수 있다.

2013년 박근혜 정부 당시 식품의약품안전청이 식품의약품안전처로 승격된 이후 1, 2대 식약처장은 총선 출마를 위해 임기 도중 처장직을 사퇴했다.

우선 정승 초대 전 식약처장은 2015년 3월 직을 사퇴하고 광주 서구을 10·29 재보궐 선거 출마해 낙선했다. 20대 총선 새누리당 비례대표에 다시 도전장을 냈지만 당선되지 못했다.

김승희 전 식약처장도 다르지 않았다. 김 전 처장은 정 전 처장의 뒤를 이어 취임했을 당시 세간의 이목을 끌었다. 그는 25년간 식약처에 근무하며 첫 여성 독성과학원장, 초대 식품의약품안전평가원장, 첫 여성 식약청 차장을 맡은 식약처 내부 출신 관료였다. 식약처 내부 사정을 자세히 알기 때문에 적임자란 평가를 받았지만 불과 11개월 만에 직을 내려놓았다. 20대 총선에서 비례대표 의원직에 도전해 당선됐기 때문이다. 당시 정치권에선 “식약처장 자리가 금배지 획득을 위한 인지도 쌓기에 제격”이란 비판이 나왔다.

학계에서도 비판적인 목소리가 들리고 있다.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채진원 교수(비교정치학)는 “보건복지 분야는 어떤 영역보다도 전문성이 필요한 영역이다. 국민들의 건강을 책임지는 기관의 수장이 총선에 출마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어 “의원에 당선되면 오히려 식약처 내에서 자신이 수집한 정보를 이용해 지역구 예산 챙기기에 골몰하거나 쪽지 예산을 끼워 넣을 수도 있다. 이해관계가 충돌할 뿐만 아니라 행정부 감시라는 본연의 임무를 망각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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