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바티스의 항암 복합제 라핀나·매큐셀을 보험 급여에 등재해달라는 목소리가 청와대 국민 청원 게시판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환자들과 시민단체의 목소리는 점점 커지고 있지만 보건당국은 신중한 입장을 견지하는 중이다. 급여화에 앞서 임상 시험 등의 변수가 존재한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

시작은 청와대 청원이었다. 지난 15일 청와대 청원자 A 씨는 청원 게시판에 “폐암 4기인 우리 엄마에게도 기회를 달라”라며 “엄마는 2015년 봄, 폐암 4기 진단과 6개월 시한부 판정을 받았다. 대학병원을 전전하며 방사선 치료와 다수의 표준항암제와 면역항암제를 써봤지만 아무런 효과가 없었다”고 밝혔다.

이어 “최근 교수가 BRAF V600E 돌연변이 검사에서 1.3%의 확률을 뚫고 돌연변이가 발견됐다고 알려줬다”며 “그 날부터 라핀나·매큐셀이라는 약을 쓰게 됐다. 엄마 상태는 기적처럼 많이 좋아졌지만 한 달 약값만 1000만 원이다. 엄마 목숨인데 돈 때문에 갈등해야 하는 순간순간이 비참하다. 보건당국이 약을 급여화 해줬으면 좋겠다”고 읍소했다.

20일 오후 5시 현재 A 씨가 올린 청원글의 추천수는 약 4만 7000명. 약 5일 만에 청와대 청원 게시판 보건복지 분야 청원 중 1위를 기록했다. 환자 가족의 개인적인 사연을 밝힌 청원이지만 다른 폐암 환자들은 물론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에 순식간에 퍼지면서 전국적으로 이목을 끌고 있다.

그렇다면 A 씨가 급여화를 강력히 호소한 약의 정체는 뭘까. 라핀나·매큐셀은 라핀나(성분명: 다브라페닙메실산염)와 매큐셀(트라메티닙디메틸설폭시드)을 병용한 치료제다. 라핀나·매큐셀은 본래 피부암의 일종인 흑색종 치료제로 개발됐지만 식약처는 올해 초 BRAF 돌연변이 비소세포폐암의 치료제로 쓰이도록 적응증을 확대 승인했다.

흑색종 치료제가 비소세포폐암의 치료제로 쓰일 수 있는 이유는 뭘까. 암에서 생겨난 돌연변이는 특정 암에서 고정적으로 발견되지 않는다. BRAF V600E 돌연변이도 악성 흑색종에서만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대장암, 갑상선암 등에서도 발견될 수 있기 때문에 BRAF V600E 돌연변이를 표적으로 하는 치료제라면, 다른 암에 대해서도 사용 가능하다.

노바티스 관계자는 20일 팜뉴스와의 통화에서 “비소세포폐암은 전 세계 비소세포폐암의 약 1~3%를 차지한다”며 “표준화학요법으로 치료할 때 별다른 효과가 나타나지 않아 그동안 새로운 치료법이 절실했다. 라핀나·매큐셀은 BRAF v600E 변이가 확인된 전이성 비소세포암 치료제로 국내 승인을 받은 최초의 병용요법제다”라고 설명했다. 노바티스 측은 식약처 승인 이후, 라핀나·매큐셀에 대한 급여화를 추진해왔다.

하지만 보건당국은 급여화에 신중을 기하고 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산하 암질환심의위원회는 최근 라핀나·매큐셀의 폐암에 대한 급여 적용을 두 차례 검토했지만 고가의 약이기 때문에 비용 효과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반려한 것으로 알려졌다.

약업계 한 관계자는 “위원회에서 두 번 반려된 부분은 맞다. 노바티스 측이 급여 재신청에 곧 나설 것”이라고 설명했다.

외국 사례를 비교했을 때 급여 등재 과정에서 또 하나의 변수는 ‘임상 시험’이다. 식약처의 라핀나·매큐셀 병용 요법의 적응증 확대 승인은 BRAF 변이 양성 비소세포 폐암 환자를 대상으로 한 글로벌 2상 임상 시험에 근거를 두고 이루어졌다. 이는 FDA가 라핀나·매큐셀 병용 요법을 최소한 한차례 이상 다른 항암제 치료를 진행한 전력이 있는 비소세포폐암 환자 25명을 대상으로 진행된 임상 2상에서 도출된 중간평가 및 안정성에 근거해 ‘획기적 치료제’로 지정한 것과 같은 입장이다.

FDA의 ‘획기적 치료제’는 중증 또는 치명적인 증상들을 치료하는 약물로 예비임상 단계에서 기존의 다른 약물들에 비해 최소한 한 가지 이상 임상적으로 괄목할 만한 개선효과가 입증된 약물들의 개발과 검토절차가 신속하게 진행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제도다. 유럽의약품청(EMA)이 2017년 당시 2상 임상시험 결과를 근거로 라핀나·매큐셀 복합 요법에 대해 추가 승인을 권고했던 까닭이다.

즉, 식약처가 최종 임상 결과가 나오지 않은 상황에서 마땅한 대안이 없는 국내 환자들에게 치료옵션을 제공하기 위해 허가를 내줬다고 해석할 수 있는 대목이다. 2011년 11월부터 이미 급여를 받고 있는 흑색종 치료 복합제의 허가와 급여화가 이전에 치료받지 않은 BRAF V600E 또는 V600K변이 양성을 가진 423명의 악성 흑색종 환자를 대상으로 라핀나 매큐셀의 병용요법과 단독요법을 비교한 3상 임상 시험 결과를 근거로 이뤄진 점을 감안해도 더욱 그렇다.

물론 환자 단체의 입장은 다르다. 환자단체연합회 관계자는 “식약처에서 허가가 난 것은 이미 약의 효능이 입증됐다는 뜻”이라며 “허가를 안 받은 것이 아니다. 이미 허가를 받았고 적응증도 확대된 치료제다. 그런데도 가격 문제로 환자에게 쓰이지 못한다는 것은 급여에 대한 접근성이 떨어진다는 뜻이다. 이는 굉장히 심각한 일”이라고 비판했다.

노바티스 측은 향후 급여화에 더욱 전력을 쏟을 방침이다. 노바티스 관계자는 “우리는 환자를 최우선으로 여긴다”며 “다른 치료 대안이 없는 비소세포암 환자들이 새로운 치료제의 혜택을 신속하게 받을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보험급여 등재 재신청을 포함하여 급여 확대를 위한 방안을 관계 당국과 긴밀히 논의 중이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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