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게티이미지뱅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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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노연홍 전 식약청장이 김앤장 법률사무소로 자리를 옮긴 가운데 김앤장이 보건복지 분야 고위급 공무원을 싹쓸이하는 행태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노연홍 전 식품의약품안정청장은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본부장, 청와대 보건복지비서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의 약제급여평가위원장직을 맡았었다. 이에 앞서 약제급여평가위원회(약평위)를 거친 이병일 전 심평원 약제관리실장도 지난해 5월부터 김앤장 고문으로 출근하기 시작했다. 보건복지 고위 공무원의 김앤장 이직이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는 뜻이다.

두 사람이 근무한 기관은 복지부, 식약처, 심평원 등 국민 건강 전반에 대한 정책을 기획하고 총괄하는 곳이다. 특히 심평원 산하 약평위의 경우 의약품의 국민건강보험 적용 여부를 결정하는 기관으로 급여판정의 1차 관문 격인 곳.

김앤장에 입사한 고위 공무원들은 주로 약평위의 급여 판정과 약가협상을 중심으로 컨설팅을 수행한다. 이들은 현직에서 취합한 고급 정보를 이용해 약평위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이 가능하다. 국민건강보험공단과의 약가협상 과정에서도 협상단으로 직접 참여하거나 정보를 제공하는 방법으로 유리한 국면을 이끌 수 있다.

문제는 이들이 컨설팅이나 협상을 담당하는 과정에서 ‘의료공공성’이란 가치가 훼손될 여지가 있다는 점.

실제로 ‘관’ 출신 공무원들은 현직에 있을 때 국민건강보험 재정 절감을 위해 제약사와의 약가 협상 과정에서 최대한 약가를 낮추려고 한다. 반대로 제약사는 수익을 위해 약가를 올려서 받으려고 하기 때문에 김앤장에 컨설팅을 맡긴다. 고위 공무원이 김앤장에 들어가면 뒤바뀐 위치에서 제약사에게 약가와 관련된 컨설팅 업무를 수행하는 만큼 결국 관 출신 공무원들의 로펌 이동은 ‘전직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긴 격이 된다.

약업계 한 관계자는 “보건복지 분야의 대부분의 정보는 비공개다”라며 “우리 보건복지부나 약평위는 외국과 달리 임상시험 과정과 결과, 자료나 회의는 대부분 공개하지 않는다. 고위 공무원들이 김앤장 등 거대 로펌으로 가면 이런 정보들이 전부 넘어간다. 국민의 편에서 약가협상에 임했던 공무원들이 순식간에 제약사를 대변하는 입장으로 바뀌는 것”이라고 우려했다.

김앤장은 최근 수년 동안 마치 ‘진공청소기’처럼, 보건복지 분야 고위직 공무원들을 빨아들이고 있다. 전만복 전 복지부 기획관리실장, 이경호 전 복지부 차관, 박용현 전 복지부 사회복지정책실장, 최수영 전 식약처 의약품국장 등 약 10명의 퇴직 고위 공무원들이 김앤장에서 활발하게 일하고 있다.

김앤장이 이들을 공격적으로 영입하는 실질적인 이유는 뭘까.

현직 변호사 A 씨는 “김앤장은 정부기관에서 소송을 담당했던 사람들도 영입한다. 상당히 공격적이다”며 “약가와 관련된 소송의 경우, 정부는 ‘법대로 했다’는 논리를 편다. 제약사는 ‘정부가 위법하다’고 주장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하지만 제약사는 위법 여부는 기관의 내부사정이기 때문에 파악하기 어렵다. 보건복지 고위 공무원을 영입하면 국가기관의 약점과 대응 논리를 미리 잘 파악할 수 있다. 제약사들이 소송에서 이길 수 있다는 뜻”이라고 밝혔다.

실제로 필립모리스는 김앤장을 통해 지난해 10월 식약처를 상대로 정보공개 거부 처분을 취소하라고 소송을 제기했다. 식약처가 궐련형전자담배 유해성 분석발표에 대한 세부정보 공개를 거부하자 소송에 나선 것이다. 김앤장은 약가 소송은 물론 건보공단과 진행 중인 원료합성 소송을 주도하고 있다. 소송에서 이기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법조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부정적인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김앤장에서 일했던 경험이 있는 다른 변호사 B 씨는 “김앤장의 복지부와 식약처의 전직 공무원 영입은 비난받아 마땅하다”며 “그곳은 승소를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국민 생명과 관련해서 급여 여부와 약가 협상을 총괄했던 사람들이 김앤장으로 향하면, 그만큼 국민들의 전체 이익과는 괴리될 수밖에 없다. 김앤장의 전형적인 영업방법이지만 비윤리적인 행동인 것도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그런데도 현행법은 수수방관 중이다. 공직자윤리법에 따라 4급 이상 공무원들은 퇴직 전 5년 동안 맡은 업무와 '밀접한 업무 관련성'이 있는 기관에는 퇴직 후 3년간 취업할 수 없다. 퇴직 전 근무한 기관에 부당한 압력을 행사할 수 없도록 방지하기 위한 규정이다. 하지만 공직자윤리위의 공직자 재취업 승인율은 통상 90%를 넘는 것이 현실이다.

법이 제대로 역할을 하지 못하는 사이 김앤장은 고위 공무원의 영입 작업에 그동안 더욱 열을 올려왔다.

2017년 12월 인사혁신처 산하 정부공직자 윤리위원회가 채이배 국민의당 의원에게 제출한 ‘공무원 재취업 심사현황’ 자료에 따르면, 2013년 1월부터 2017년 8월까지 재취업 심사를 통과해 로펌으로 이직한 공무원 출신은 40명. 이중 김앤장으로 옮긴 공무원은 모두 13명으로 전체 인원의 32%를 차지했다. 김앤장이 대형 로펌 중에서도 가장 많이 공무원 출신들을 영입한 것이다.

앞서의 변호사 B 씨는 “김앤장 변호사들은 윤리를 따지지 않는다. 그저 고객의 이익에 충실하게 변론하는 것이 변호사로서 추구해야할 최고의 가치라는 인식이 강하다. 김앤장은 외부 비판도 신경 쓰지 않는다. 소송에서 얻는 이익이 상상을 초월하기 때문이다”며 “급여, 방 크기, 처우, 직원들에 대한 지원에서도 다른 로펌과도 차원이 다르다. 윤리를 생각하지 않으면 전직 고위 공무원들이 김앤장 제안을 거절하긴 어렵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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