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세대학교 약학대학 정진현 교수]

의약품은 대표적인 비탄력재(inelastic goods)다. 일반적인 시장의 가격균형 메커니즘과는 달리 가격이 요동쳐도 수요에는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의약품은 생명과 직결됐기 때문에 약이 비싸다고 구매를 포기할 수 없기 때문이다.

때문에 제약산업의 발전은 여타 제조업분야의 변화보다 느리다. 특히 4차 산업혁명으로 대변되는 최근의 변화에도 대응보다 관망세에 있다. 그 중 하나가 바로 ‘스마트공장(smart factory)’이다.

한국과학기술평가원(KISTEP)에 따르면 2014년부터 ‘제조업 혁신 3.0 전략’을 바탕으로 스마트공장의 고도화와 확산정책이 이어지고 있지만 현재 국내 스마트공장 기술수준은 선진국의 70~80%에 그치고 있다. 심지어 제약분야는 스마트공장을 도입한 곳이 1~2개사에 불과하다. 

이에 7년여 전부터 의약품의 스마트공장 생산공정 개발에 관심을 갖고 직접 스마트공장 벤처를 창업, 연구하고 있는 연세대학교 약학대학 정진현 교수를 만나 제약업계에서 이뤄지고 있는 스마트공장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정진현 교수의 이력은 흔히 ‘코스’라고 하는 과정과는 궤를 달리한다. 그는 서울대학교 제약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약학대학에서 석사학위를 취득한 후 미국으로 건너갔다. 하지만 약학이 아닌 화학을 전공해 스탠포드대학교 화학과 박사학위를 취득, 샌디애고 스크립스 리서치 인스티튜트 화학과 박사 후 과정을 마쳤다.

그리고 지금 그는 유기금속촉매를 이용한 생리활성물질합성, H/D exchange mass spectrometry 등을 이용한 Active Site Chemistry, ADC(antibody-drug-conjugate) 디자인 및 제조 등을 주로 연구하며 제자들과 스마트공장 벤처기업을 창업해 업계에 새바람을 불어넣고 있다.

스마트공장의 핵심 ‘연결성’

일반적으로 스마트공장이라고 하면 전체 제조과정을 정보통신기술(ICT)로 통합해 생산성과 에너지효율을 높이고, 제품 불량률을 감소시키는 등 생산시스템을 최적화하는 맞춤형 공장을 말한다.

이 가운데 정 교수가 전하는 스마트공장의 핵심은 ‘플로우(flow)’ 즉 연결성이다.

원료 투입부터 최종 목적물 생산까지의 끊김 없는 공정과 이를 가능토록 하는 첨단과학기술의 접목이 철저한 검증과 관리가 요구되는 의약품 생산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따라오는 분절성과 인력의 요구를 극복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는 설명이다.

그는 “하나의 배치(batch)에서 생산되는 공정을 넘어 연속적으로 흘러가는 연속반응 방식인 ‘flow process’가 스마트공장이 지닌 하나의 큰 축”이라며 “분리기술, 컴퓨터 제어 기술, 로봇 기술의 발전으로 기존 자동화 공정과는 다르다”는 설명이다.

이어 “분리과정, 컴퓨터 제어기술이 발전하면서 복잡하고 정교한 의약품 생산과정으로 접목에 큰 매력이 없었던 연속반응 공정 개념은 의약품 생산의 새로운 전환점에 도달했다”고 말했다.

특히 친환경적인 요구가 갈수록 높아지고 용매 선택 기준이 강화되는 가운데 flow process는 가압이 사용돼 용매의 양과 끓는 점, 점도에 따른 선택 폭을 넓혔고 광반응, 위험스러운 가스사용 반응, 온도 유지가 매우 중요한 반응, 재결정화 반응 등에 스마트공장의 장점이라고 강조했다.

여기에 용매량을 감소시키고 오폐수의 절감, 반응과정의 축소, 후처리과정 생략 등의 자원활용도를 높일 수 있으며 설비 비용이 적고 관리인원이 축소되면서도 온도제어가 정교하고 혼합효과가 월등히 뛰어나 원료를 생산하는데 있어 가장 중요한 불순물 패턴(impurity profile)이 배치(batch) 생산과 비교해 현저한 우수성을 보일 정도다. 



스마트공장 확산 조짐 … 하지만

정 교수는 스마트공장을 의약품이 하나의 배치(batch)에서 생산되는 공정에서 연속해 흘러가는 연속반응 방식이 적용돼 자원활용도를 높이고 환경오염과 생산공정의 오류를 최소화할 수 있는 새로운 ‘패러다임’이라고 설파했다.

특히 최근 대형 제약사들을 중심으로 플로우(flow) 공정을 의약품원료(API)의 대량생산과정에 접목하려는 움직임이 발 빠르게 일고 있다고 전했다. 중국, 인도와의 저가경쟁에서 탈피해 고도화된 의약품원료 생산전략으로 글로벌 시장 경쟁력을 갖추려는 노력의 발로라는 설명이다.

더구나 신약개발 혹은 시장개척에 상대적으로 많은 관심을 쏟으며 원료생산에 대한 투자가 최소화되는 경향이 최근 불고 있는 스마트공장 도입바람과 맞물려 활성화되는 모습에 국내 의약품원료 생산경쟁력의 가능성이 밝아지고 있음을 시사했다.

하지만 정 교수는 일련의 변화가 아직은 시작에 불과하다고 평가했다. 충분히 긍정적이지만 제도적, 정책적 지원이 뒷받침돼야 순풍을 타고 스마트공장 더 나아가 국내 제약산업이 비상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미국FDA는 2012년 안전성 및 효율성을 이유로 기존 배치 방식 대신 지속공정 방식을 사용하기를 적극 권하는 안을 IFPAC에서 발표했고, 유럽과 미국의 많은 의약품 생산 허가과정이 지속공정 방식으로 이뤄지고 있다”고 전했다.

이어 “국내에서는 같은 방식으로 생산이 이뤄지지 않아 1건의 허가도 나오지 않고 있다”며 최근 일어나는 스마트공장에 대한 긍정적 변화가 꽃을 피울 수 있도록 정부와 제약기업들의 관심과 투자가 적극적으로 이어지길 기원했다.

아울러 2013년 노바티스가 MIT에 세운 Novartis-MIT CCM(Center for Continuous Manufacturing)연구소에서 레닌 저해제를 원료로 최종 목적물(API)을 생산하는데까지 완전 자동화를 성공해 지속공정(Continuous Manufacturing)의 원년이 됐던 것처럼 국내 스마트공장이 도약하는 때가 도래하길 바라는 마음을 남겼다.

연세대학교 약학대학 정진현 교수 이력

정진현 교수는 연세대학교 약학대학 교수이자 학과장으로 재직 중이며 의약화학, 유기화학, 제약산업학 강의를 맡고 있다. 대외적으로는 입학사정관, 한국약학교육협의회 대외협력위원장, 스탠포드 한국동문회 총무 등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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