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김응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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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팜뉴스=김응민 기자] 작년 초 국내 제약사가 유일하게 생산하던 콜레스티라민(cholestyramine) 제제 의약품이 생산 중단됐다. 해당 약제는 담즙산 결합수지 계열의 고지혈증 치료제로 콜레스테롤 수치가 높은 환자들에게 처방되는 의약품이다.

일반적으로 이상지질혈증이나 콜레스테롤 수치가 높은 고지혈증 등의 질환은 스타틴 제제를 사용한다. 스타틴 계열 약물은 오래 전부터 사용돼 온 까닭에 안전성과 효과성이 입증됐고 다른 약제와 함께 사용하는 병용요법에 대한 연구도 활발히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에 콜레스티라민 제제는 장으로 배설되는 담즙과 결합해 콜레스테롤의 재흡수를 줄여 결과적으로 혈중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추는 기전을 갖고 있다.

다시 말해, 약효가 장에서 작용하고 혈액으로 흡수되지 않기 때문에 임신을 계획하는 여성과 임산부 그리고 수유 중인 여성에게까지 모두 안전하게 사용할 수 있다.

하지만 앞서 언급했듯이 지난해 4월부터 콜레스티라민 제제에 대한 국내 생산이 중단되면서 임상 현장에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연세의대 심장내과 이상학 교수(한국지질·동맥경화학회 가족성고콜레스테롤혈증 사업단장)는 최근 기고문을 통해 "약을 쉽게 먹을 수 있는 일반인과 달리 임신한 여성은 피해야 하는 약이 많다"라며 "임신부에서 안전성에 대한 충분한 증거가 없어서 스타틴은 보통 쓰지 않는다"라고 밝혔다.

이어 "세계 의학계에서는 임신부에서 제일 적합한 고지혈증약으로 담즙산 결합수지 복용을 권하고 있다"라며 "국내에서도 고지혈증약을 꼭 써야 하는 임산부가 있으면 이 약을 처방해 왔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해당 약제가 국내에서 안 나오기 시작했다"라고 덧붙였다.

그에 따르면 임산부도 콜레스테롤 조절이 필요한 경우가 있고, 특히 타고난 고콜레스테롤혈증 중에 아주 심한 경우에는 더욱 필요성이 높아진다. 이러한 사람은 국내 500명당 1명 정도로 추산되는데, 가임기 여성 약 620만명 중에 심한 고콜레스테롤혈증 환자 비율을 1/500로 계산하면 대략 1만 2000명으로 추려진다.

즉, 가임기 여성 1만 2000명 중 임신을 계획하거나 임신 중인 여성, 그리고 수유를 하는 여성에게는 국내에서 쓸 수 있는 고지혈증약이 없다는 지적이다.

게티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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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국내에서 유일하게 콜레스티라민 계열 고지혈증 치료제를 생산하던 제약사는 어떤 이유에서 '생산중단'이라는 결정을 하게 된 것일까.

기자가 확인한 결과, 발목을 잡은 것은 '채산성'이었다. 해당 의약품은 국내 모 제약사가 다른 제약사에게 위탁생산을 맡긴 품목이었다. 하지만 원재료 값이 인상되면서 생산 단가가 맞지 않게 되자 결국 위탁생산을 하던 제약사는 해당 의약품 생산을 포기하게 된 것.

익명을 요구한 제약업계 관계자는 "국내에서 유통되는 의약품 중 상당수는 위탁생산을 통해 생산되는 제품이다"라며 "위탁사는 아웃소싱을 통해 비용을 절감하고 신약 발굴 및 마케팅에 전념할 수 있고, 수탁사는 생산 효율성을 높이고 별도의 유통경로를 확보하지 않아도 제품을 판매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하지만 이번 사례와 같이 의약품 생산을 담당하던 수탁사가 어떤 이유로든 생산을 포기하게 되면 위탁사 입장에서는 대처할 방법이 제한적이다"라며 "위탁생산으로 나온 의약품의 실질적인 제조사를 어디로 봐야 할 것인지에 대한 문제도 있다"라고 덧붙였다.

문득 기자의 머릿속에는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우리나라는 환자들의 건강권과 보건의료적 요구 충족을 위해 '국가필수의약품'과 '퇴장방지의약품'이라는 제도를 운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가필수의약품이란 보건의료상 필수적이나 시장 기능만으로 안정적 공급이 어려운 의약품을 뜻한다. 보건복지부장관과 식품의약품안전처장이 관계 중앙행정기관의 장과 협의를 통해 지정하며 현재 448개 품목이 지정돼 있다.

퇴장방지의약품도 이와 유사한 개념이다. 환자 진료에 반드시 필요하나 경제성이 없어 생산 및 수입을 기피하는 약제이거나 원가의 보전이 필요한 의약품으로 지난 1999년부터 보건복지부장관이 품목을 지정·관리하고 있다.

문제는 앞서의 콜레스티라민 제제가 이들 제도 중 어떤 것에도 포함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에 대해 식약처 관계자는 "퇴장방지의약품을 지정하기 위해서는 국내에서 해당 품목을 생산하는 제약사가 존재해야 한다"라며 "그러나 콜레스티라민 약제는 품목이 취하된 상황이다. 아예 품목이 없는 상태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다만, 품목취하된 약제도 국가필수의약품으로 지정할 순 있지만 품목허가를 받게 할 수 없고 특정 제약사에게 생산을 강제할 수도 없다"라며 "결국 희귀필수의약품 센터를 통해 '자가치료용 의약품'으로 공급하고 있다. 환자가 요청할 경우 동일성분 의약품을 해외에서 구매대행으로 전달하는 방식으로 현재 식약처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조치다"라고 덧붙였다.

채산성이 맞지 않아 의약품 생산중단을 결정하게 된 제약사의 입장도, 품목이 취하돼 가용할 수 있는 행정조치가 없다는 식약처의 입장도 모두 일리가 있었다.

기업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경제적 동기인 '이윤추구'는 제약회사라고 해서 다르지 않다. 최근 들어 ESG나 사회적 책임 등이 중요해지고 있지만 제일 근본적인 목적은 영리(營利)에 있다. 만들수록 손해를 보는 제품이 있다면 회사 입장에서는 생산을 중단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규제당국 입장도 이해가 갔다. 품목취하된 의약품에 대해 나 몰라라 손 놓고 있던 것이 아니라 산하기관을 통해 해외 구매대행으로 의약품이 공급될 수 있도록 '최선의 조치'를 취했다.

하지만 이 과정 속에서 결국 피해를 보는 것은 환자들이다. 해당 약제가 반드시 필요한 환자들은 생산이 중단되기 전 시장에 유통되고 있던 것을 어렵게 구하거나 가격 부담이 큰 해외 구매대행을 통해 의약품을 구입해야 한다.

임산부는 출산 때까지 참고 기다리는 방법 외에는 없으며, 이들 외에도 소아 환자나 담낭절제술 후 담즙에 문제가 생겨 설사가 발생한 환자들은 더욱 큰 불편을 겪을 수밖에 없다.

모두가 '할 말 있는' 의약품 생산중단 사태이지만 사회적 약자인 환자에 대한 고민이 빠져 있는 것 같아 아쉬움이 짙게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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