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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삶 속에서 발생하는 자기 자신의 심각한 질병이나 갑작스러운 사고의 체험은 우리가 걸어가던 인생 여정을 멈추게 하고 정상적인 일상의 궤도를 이탈하게 하며, 결국 자신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 놓는 상실의 위기가 된다. 또한 가족 등 사랑하는 이와의 사별로 인한 상실의 체험 역시 심각한 슬픔과 도전으로 우리 삶에 다가온다.

사별로 인한 상실의 기억과 충격은 점차 망각되어가는 것 같다가도 언제 어디서든지 문득 되살아날 수 있다. 일상을 잘 살다가도 떠나간 사람에 대한 생각이 불현듯 엄습하여 그 사람의 부재를 실감하며 공허함과 무의미함을 느끼게 된다.

이처럼 상실의 슬픔과 고통을 겪는 사람들 가운데 상당수는 시간이 지나면서 서서히 회복되어 변화된 삶에 적응해 나갈 수 있게 된다. 하지만 그중에서 일부는 ‘복합 비애’(CG, complicated grief) 혹은 ‘지속적 비애 장애’(PGD, prolonged grief disorder)를 겪게 되기도 한다.

상실을 현실로 받아들이지 못하면서, 이러한 비애는 오랫동안 지속되어 심각한 분리의 고통과 심리적 불안을 야기한다. 그래서 사람을 쇠약하게 만들고 때로는 삶 자체를 위협하는 상실 반응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이런 상실의 체험 속에서 우리는 여러 가지를 심각하게 고민하게 된다.

우선, 이 새로운 상황에 과연 어떻게 적응해 나가야만 하는가라는 실제적인 차원에서 심각한 고민이 생겨난다. 예를 들어, 자신의 질병이나 사고로 인해, 혹은 가장을 떠나보냄으로써 발생하는 경제적인 어려움의 문제도 여기에 포함된다.

나아가, 이제 깊은 상실의 체험을 통해 자신의 나약함과 한계성을 뼈저리게 느끼고 깨닫게 됨으로써 나는 과연 누구인가라는 실존적 번민에 빠지게 된다. 또한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상황에서, 주위 사람들과 이제 어떻게 관계를 새로이 맺어나가야 하는지에 대한 사회적 차원의 고민에 빠지게 된다.

여태까지는 경제적으로 혹은 물리적으로 다른 사람들이 내게 의존하는 관계였다면, 이제는 나약해지고 무력해진 내가 다른 이에게 의존해야만 하는 상황이 되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왜 하늘(혹은 신)은 내게 이런 비참한 일이 일어나도록 그냥 내버려 두었는가를 원망하며 탄식하기도 하고, 우리 인생에서 진정으로 가장 중요한 의미가 무엇인지를 생각해 보며 침묵하게 된다. 이는 영적이며 존재론적 차원의 질문이고 성찰인 것이다.

이처럼 다양한 차원의 물음에 대한 해답이나 의미를 찾아내야만 하는 입장에 처하게 된다면 우리는 과연 어떻게 할 것인가? 이 도전과 위기에 직면하여 그 상황을 받아들이고자 한다면, 우리는 그것들을 어떻게 수용하여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반대로 그 상황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우리는 그 물음들을 그저 외면하고 회피하기만 할 수 있는 것인가?

사실 이러한 대면과 수용의 결단 여부에 따라서, 우리가 이토록 어려운 변화의 시기에 어떻게 대처할지가 결정되며, 또 그럼으로써 장차 우리가 어떤 사람이 되어갈 것인지가 정해진다.

어떤 이의 긍정적인 경우에는, 이렇듯 찾아오는 번민에 찬 물음들로 인해 더욱 넓고 깊은 의미를 찾아 앞으로 나아가게 된다. 그래서 궁극적으로는 그 사람이 원래부터 갖고 있던 우주적 목적의 의미가 초월적 차원에서 더 확장되고 심오하게 되기도 한다.

이러한 성찰과 깨달음 덕분에, 우리는 삶의 목적을 잃은 채 절망 속에서 상실과 분투에 직면하고 있는 같은 처지의 다른 사람들을 위해 더욱 참되고 자비롭게 살고 싶은 의지를 갖게 될 수 있다.

미국의 심리학자 로리 버크와 로버트 니마이어는 이러한 위기 속 물음들로 인해 자기 삶을 돌아보고 성찰함으로써 한층 더 긍정적으로 수정된 ‘자기 서사’(self-narrative)가 가능해져 ‘의미 만들기’가 이루어질 수 있다고 말한다.

‘자기 서사’란 자신의 삶을 돌아보면서 의미를 찾아 구성해 이웃과 함께 나누는 이야기이다(마크 콥 외 엮음, 헬스케어 영성 제2권: 영적 돌봄의 의미, 박준양 외 옮김, 가톨릭대학교출판부, 2016, 135-161쪽 참조).

특별히 치명적 질병이나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과도 같은 상실 체험과 비극적 사건에 의해 우리의 삶이 산산조각으로 부서져 나갈 때, 이러한 자기 서사는 삶을 계속 지탱시켜 주는 마치 한 줄의 끈과도 같은 실마리를 찾아낼 수 있게 해준다.

처음에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이 힘들고 파괴적이기만 했던 그 상실 체험이, 자기 서사의 긍정적 재구성을 통해 오히려 자신의 인격적 성장을 촉진하고 숨겨진 의미들을 비춰주면서 회복 지향적인 대처가 이루어진다.

그래서 발전적으로 수정된 자기 서사는 자신이 겪은 트라우마(trauma)와 같은 상실 체험에 관한 사건 이야기(event story)에서 긍정적 의미를 발견해 내며, 또한 자신의 삶의 이야기와 긴밀히 얽혀 있는 주위 사람들 삶의 이면 이야기(back story)에서도 새로운 의미를 발견해 낼 수 있게 한다.

이처럼 긍정적이며 진실성 있는 자기 서사 재구성을 통해 깨닫게 되는 것은, 우리가 가치 있는 존재이기에 존엄성을 지니며 충만한 삶을 살 자격이 있다는 사실, 그리고 진리와 평화, 자비와 구원 같은 초월적 가치에 대한 보편적 추구의 의미성이다.

이런 새로운 관점에서 인간과 세상을 바라보게 될 때, 우리의 자기 서사는 확신에 찬 주제의 일관성을 지니게 되며, 또한 삶의 의미에 대한 폭넓은 감각과 영적 감수성을 지니게 된다. 우리는 이처럼 자기 서사를 통해 우리가 마주하는 비극적 사건과 상실의 아픔에 대처하는 영적인 힘을 길러낼 수 있는 것이다.

과연 나는 지금 어떤 상실과 고통의 체험을 겪고 있으며, 그래서 어떤 자기 서사를 써나가고 있는가? 그리고 이를 통해 내 삶의 어떤 새로운 의미를 발견해 내고 또 만들어 가고 있는가? 이제는 자신의 인격적 성장을 위해 이처럼 진실성 있는 성찰이 필요한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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