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장덕규 변호사(법무법인 반우)
사진. 장덕규 변호사(법무법인 반우)

제약업계 초미의 관심사였던 지출보고서 실태조사 결과가 최근 공개되었다. 보건복지부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은 지난 6월부터 제약사와 도매상, 의료기기 회사로부터 지출보고서 및 관련 자료를 제출받았고, 그 자료를 분석하여 이번에 공개한 것이다.

많은 회사들이 걱정했던 수준과는 달리 일단의 결과 발표는 매우 무미건조하다. 그 내용을 살펴보아도, 의료기관 등에 경제적 이익을 제공한 기업은 몇 곳인지, 제공 규모와 액수는 얼마인지, 제공한 경제적 이익의 유형별 비율은 얼마인지 등의 내용이 전부이다.

2018년 도입부터 'K-선샤인 액트'라는 이름으로 음성적 리베이트 제공 문제를 해결할 획기적인 규제로 기대를 모았지만, 당장 두달 전에 다른 부처가 자체적인 리베이트 조사로 단일한 제약사에 수백억원 대의 과징금 처분을 내리는 판국에 제출 자료에 대한 기계적인 통계 정리에 불과한 듯한 결과 발표는 너무나도 평화로워 보이기까지 한다.

제도가 정비되는 과정에 있지만, 지출보고서를 공개하는 부분에서도 비공개 사유를 공공기관의 정보공개에 관한 법률 제9조의 사유 전체로 정해놓은 이상 상당 부분 투명하게 공개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공공기관 정보공개법 제9조는 관공서가 국회나 민간, 대외기구 등에 절대로 자료를 공개하고 싶지 않을 때 드는 이지스 방패 같은 것이다. 개인정보, 국가의 의사결정과정, 수사 혹은 재판진행 중, 기업의 영업비밀 등이 모두 이 제9조에 들어간다.

추후 지출보고서 공개 범위에 관하여 획기적인 변화가 없다면, 지출보고서 공개 및 실태조사는 각 회사의 CP 담당 부서가 매년 감당해야 하는 업무 부담 정도의 규제로 굳어질 가능성까지 보인다.

실제 회사들이 리베이트 이슈를 겪는 경우, 수사기관을 제외하면 과징금 처분을 내리는 공정거래위원회, 품목허가취소나 판매정지처분을 내리는 식품의약품안전처, 그리고 약가인하 처분을 내리는 보건복지부 이 세 곳의 정부부처와 부딪히게 된다.

수사권을 가지고 있는 수사기관이야 별론으로 하더라도, 독자적이며 강력한 조사권한을 가지고 직접 조사를 실시하며 점점 처분사례를 늘려가는 공정위, 자체적으로 특별사법경찰관을 보유하고 있어 수사권을 행사할 수 있는 식약처와 달리, 보건복지부는 실제 리베이트로 인한 피해의 직접 당사자임에도 불구하고 리베이트 이슈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다.

리베이트는 대부분의 경우 본질적으로 보험 적용 의약품의 상한금액에 관한 문제이다. 공정거래 측면에서는 부당하게 고객을 자신과 거래하도록 유인하여 공정한 경쟁을 제한하고, 이로 인해 전체 시장에서의 소비자 편익을 제한한다는데 공익적인 개입의 근거가 있지만, 의약품시장에서 침해되는 소비자 편익의 본질은 결국 보험재정과 환자 본인 부담의 증가가 전부가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건강보험을 관장하는 보건복지부는 리베이트 문제에서는 피해자의 위치에 선다는 논리적 당위성이 있지만(엄밀히 말하면 리베이트 없이 더 싸게 약을 공급받을 수 있었음에도 그러지 못하였다는 점에서 국민건강보험공단과 환자들이 피해자가 된다) 리베이트 자체에 대한 제재조치는 형사사건이 진행된 이후에 내리는 약가인하 조치 외에는 체감상 별다른 것이 없어보인다.

게티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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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지출보고서의 공개 및 실태조사는 복지부가 리베이트 규제 영역에서 유의미한 플레이어가 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실상 복지부는 심평원과 공단을 통해 각 요양기관의 모든 의약품 급여비용 청구명세를 공급받고 있다.

더욱이 2023년부터는 비급여에 대해서도 그 내용을 보고하도록 하였는데, 비급여의 보고 내용 및 범위도 점차 늘어날 것이라는 점에서 별도의 조사나 수사 없이 급여와 비급여 의약품 전체에 대해 들여다 볼 수 있는 위치에 있는 것이다.

또한 의료기관과 약국, 즉 요양기관에 언제든지 다양한 명목으로 행정조사를 실시할 수 있는 권한을 보유하고 있고, 실제로 다양한 행정조사를 실시하고 있기도 하다.

즉, 의약품이 실제로 공급되고 거래되는 현장의 모든 데이터를 다 가지고 있는 곳이 보건복지부인데, 심지어 지출보고서 실태조사를 통해 거래의 유인 동기까지 데이터로 확보할 수 있는 것이다.

빅데이터의 시대에 특정 요양기관에서 청구된 의약품의 양과 제공된 경제적 이익과의 연관성 정도는 쉽게 발췌할 여지도 있지 않을까 하는 의견이다.

실상 요양기관의 급여비용 청구에 대해서는 데이터베이스화된 청구명세를 다양한 방법으로 발췌해 가며 의심되는 부당청구사례를 발췌하고 있으니, 추후 그와 같이 지출보고서를 활용하여 리베이트 관련 조사의 단초를 만들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이는 정부의 의지가 필요한 일이다.

현재로서는 단순하게 공개 외에는 별다른 규제가 없는 것으로 보이지만, 추후 지출보고서와 함께 제출하거나 제공하여야 하는 관련 장부의 범위를 실효성 있게 늘린다던지(어차피 리베이트는 적법한 회계장부에서는 나오지 않는다. 재정과 회계에 관한 자료를 더 제출하도록 정한다면, 리베이트 자금 출처를 직접 압박하는 효과가 있을 것이다) 지출보고서를 분석하여 관련 자료를 수사기관이나 공정위 등에 제공할 수 있도록 한다던지 하는 규정을 더한다면, 복지부 역시 리베이트 근절에 유의미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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