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23년 막바지에 '필수베즈'가 수포성 표피박리증이라는 희귀성 피부질환에 적용하도록 FDA의 승인을 받았다. 수포성 표피박리증에 걸린 환자의 피부는 사소한 물리적 자극에도 과민하게 반응하여 물집이 쉽게 생기고 손상된다.

치료는 주로 대증요법에 의존하며, 치료제도 마땅하지 않다. 필수베즈는 상처 부위에 도포하여 증상을 완화하는 외용제이다. 약물의 주 성분은 자작나무 껍질의 추출물, 즉 천연물에서 기원한다. 우리에게 천연물 약물이 친숙하지만, 실상은 신약 목록에서 천연물 약물이 아주 드물다.

자작나무 껍질은 동서양에서 오래 전부터 전통적인 치료제로서 또는 민간 요법으로 사용되어 왔다. 한방에서 백화피라는 이름으로 부른다. 자작나무 껍질의 추출물은 상처를 치료하는 효과가 있다고 알려져 왔다.

피부의 염증을 완화하고 재생을 돕는데, 작용하는 방식은 분명하지 않다. 독일의 회사가 처음 약물로 개발해서 유럽에서 상처 치료제로 허가를 받았다. 약물의 소유권이 여러 회사를 거치면서 상처 치료제의 목적으로는 더 이상 시판되지 않는다.

대신 같은 성분의 약물이 난치성 피부질환 치료제에 대하여 특화하여 개발되었다. 이 약물은 희귀질환 치료제로 지정을 받은 지 10여년이 지나서 유럽에서 먼저 필수베즈라는 상표명으로 승인을 받음으로써 최초의 수포성 표피박리증 치료제가 되었다.

그리고 1년 반이 경과한 2023년 미국에서도 승인을 받았다.

유전자, RNA, 항체, 표적 치료제 등 다양한 기전으로 작용하는 신약이 나오는 중에, 천연물 신약은 희귀종 중의 희귀종이다. 현재 FDA의 승인을 받은 천연물 약물은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이다. 베레젠은 녹차 추출물로서 2006년 승인을 받았다.

외용제로서 생식기에 생긴 사마귀에 적용한다. 풀리작은 2012년에 승인을 받았으며, 경구 투여하는 유일한 천연물 약물이다. 남미에서 자라는 식물의 추출물로서, 에이즈 환자가 치료를 받는 중에 설사를 완화하는 목적으로 투여한다. 2022 년에 승인을 받은 넥소브리드는 파인애플 추출물로서 화상에 생기는 딱지를 제거하도록 도포하는 외용제이다. 그리고 이제 필수베즈가 추가되었다.

약리 작용을 나타내는 활성 성분이 동물, 식물이나 광물 어느 종류에서나 유래하면 다 천연물 약물이지만, 대부분은 식물성 자원에서 기원한다. 미국 FDA도 이들을 식물의약품 (botanical drugs)으로 분류한다.

식물의약품, 즉 천연물 약물도 개발하는 과정이나 절차에서 특별하지 않다. 기본적으로 임상시험을 통해서 약물의 안전성과 유효성을 입증하고 약품 생산에 있어서 품질을 규격화하는 기준을 제시하면 된다.

한국을 비롯해서 중국, 유럽 등에서 전통적 약물이나 민간요법으로 사용되는 천연물들이 많고, 이를 근거로 신약을 개발하려는 노력이 활발하다. 한국에서는 천연물이 한방 치료에서 사용되어 왔으며, 조인스를 필두로 레일라, 스티렌 등 다수의 천연물 의약품이 나와 있다.

천연물 약물은 오랜 전통을 통해 나온 임상적 기록이 풍부해서 개발할 때 임상 시험의 초기 단계에서의 시간과 비용을 절약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렇다고 해서 천연물 약물을 개발하기 위해서 걸리는 시간이 결코 짧지 않으며, 개발의 성공률도 높지 않다.

천연물 약물 개발이 성공하기 어려운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가장 큰 장벽은 개발한 신약후보물질을 임상시험을 거쳐 약물화 하는 단계에 있다.

천연물 약물은 다양한 유효 성분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다양한 작용 기전을 통해서 다양한 생체 내 타겟에 작용하여 시너지 효과를 나타낸다는 ‘다중 성분-다중 타깃’의 특징을 가진다. 이는 약물 개발에 있어서 양날의 검으로 작용한다.

다양한 유효 성분에 대해서 약물이 작용하는 기전을 밝히기가 쉽지 않고, 심지어는 유효 성분에 대하여 분명하게 알려지지 않은 경우도 많다. 그러다 보니, 신약후보물질에 대하여 임상시험을 진행하는 타당성을 증명하기 어렵고, 이러한 불확실성 때문에 개발의 후기 단계로 진입하기에 어렵다.

사진. 성은아 박사
사진. 성은아 박사

약물 개발의 성공률은 약물이 작용하는 타겟과 질병과의 관련성이 직접적이고 구체적으로 알려져 있을 때 높다고 알려져 있다. 통계적 분석에 따르면, 약물의 타겟과 질병의 관계에 대해서 사람에서의 유전적 데이터나 바이오마커의 데이터가 확보되어 있을 때에 약물 개발의 성공률이 두 배, 분야에 따라서는 그 이상 높다.

천연물 약물의 경우 유효 성분이 명확하지 않고 그 작용 기전도 포괄적이고 함축적으로만 밝혀진 경우가 많다. 약물이 질병의 원인을 직접적으로 공략한다는 구체적인 관계를 입증하기 어려우면, 신약후보물질을 도출한 후에도 임상시험에서의 성공의 가능성을 예측하기가 상대적으로 어렵다.

임상시험의 후기 단계는 비용과 시간이 특히 많이 필요하고, 이 단계에서의 실패는 개발하는 회사에게 부담이 크다.

화이자, 아스트라제네카, 머크 등 글로벌 거대 제약회사들은 약물 개발의 성공률을 개선하기 위해서 2000년대에 진행했던 파이프라인의 임상시험의 성공과 실패의 요인들을 자체 분석해서 평가 시스템을 도입했다.

회사마다 신약후보물질에 대하여 임상시험을 진행할지를 평가하는 구체적인 기준이 다르지만 그 내용은 대체로 일관성을 보인다. 약물과 타겟의 관계가 직접적이고 분명한가, 약물이 체내의 목표 조직에 도달하는가, 그리고 임상시험에서 약물의 작용 방식에 최적화한 환자 그룹을 선정할 것 등이 중요 항목들이다.

‘다중 성분-다중 타깃’을 모토로 하는 천연물 약물은 이러한 기준에 부합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천연물 약물 개발에 있어서 가장 어려운 문제는 임상시험 후기 단계에 필요한 비용을 확보하는 것이다. 이는 어느 약물 개발에 있어서도 공통되는 문제이지만, 자금 확보의 경쟁에서 천연물 약물이 우위를 점유하지 못한다.

다시 수포성 표피박리증으로 돌아 가서, 2023년에 이 난치성 질환에 대한 약물이 하나 더 나왔다. 필수베즈에 앞서 비주벡이 FDA의 승인을 받았다. 필수베즈와 마찬가지로 비주벡도 외용제의 제형으로 나와서, 피부에 도포하여 상처를 아물게 하고 피부의 재생을 돕는다.

어느 약물이 더 효과적인가 두 약물을 직접 비교하여 알려져 있지는 않다. 두 약물이 대상으로 하는 환자군도 서로 중복된다. 겉보기에 유사하지만 두 약물이 작용하는 방식은 아주 다르다. 비주벡은 유전자 치료제이다.

수포성 표피박리증은 자가면역 반응으로 생기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 유전적 결함이 원인이다. 환자의 피부를 이루는 구조물에 결함이 있어서 피부의 강도가 약해져 있기 때문에 발병한다. 케라틴이나 콜라겐 등 수십 개 이상의 유전자가 이 질환과 관련된다고 알려져 있다. 비주벡은 콜라겐7A 단백질을 만드는 유전자 약물이다.

수포성 표피박리증 환자 중에서도 콜라겐7A 유전자에 이상이 있는 경우 사용한다. 환자의 상처에 약물을 도포하면 유전자가 피부 세포로 침투하여 정상 기능을 하는 콜라겐7A를 만들어내고, 이 단백질이 환자의 피부에서 취약한 부분을 보강해 준다.

유전자 치료제이지만 전신 투여하는 약물이 아니기 때문에, 한 번 투여로 신체 전체에 효과를 나타내지 않는다. 필요한 때에 필요한 부위에 반복적으로 도포한다. 투여한 부위에 대하여 효과가 장기적으로 지속되기를 기대하지만, 실제로 효과가 얼마나 오래 지속하는가는 임상시험 기간인 반 년을 넘어서는 검증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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