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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2월 24일 러시아의 침공으로 시작된 우크라이나-러시아 간 전쟁의 사망자 수가 50만명을 넘었고 민간인 희생자도 1만 명을 넘었다. 그 뿐인가? 이스라엘-하마스 간 전쟁의 사망자 수도 2만 2천 명을 넘어섰다. 최근 일본에선 7.6의 강진으로 90여 명의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

목소리 큰 전문가들과 유력자들이 인간 존엄과 생명 존중을 외치고 있지만 한 편에선 생때같은 목숨들이 속절없이 사라져 가고 있고, 위험의 다른 쪽에서 살고 있는 우리 대부분은 우리 가족들만을 걱정하는 방관자일 따름이다.

교육과 연구 현장에서 생명 존중의 가치를 실현하기 위하여 부단히 노력해 왔지만, 의미를 둘 겨를도 없이 인명이 숫자로 표시되는 뉴스를 접할 때면 허탈하기 그지없다. 그런 중에서도 우리 가까이서 숨 쉬던 얼굴들이 주검으로 다가올 때면 한동안 그 잔상을 지울 수 없다.

빠른 경제적 도약의 후유증을 드러내고 있는 우리 사회에서 마약으로 인해 인간성을 잃어버리고 목숨 지지대마저 허약해진 이웃들이 걱정되어 작년 봄부터 마약 사용과 마약 규제의 본질에 관한 이해를 돕고 사회적 패러다임을 바꾸기 위해 칼럼을 써왔다.
 

그런 노력을 비웃기라도 하듯 지난 연말, 마약 사용 혐의로 조사를 받던 이 모씨가 창창할 것 같던 삶을 포기하고 말았다. 단순히 ‘안타깝다’는 말로 충분하지 않다.

고인을 죽음으로 몰고 간 내막을 다 알 수 없지만, 마약 또는 마약 사용, 마약 범죄에 대한 우리 사회와 관계자들의 인식이 죽음을 불러온 면이 있다. 필자도 마약 연구 전문가로서 그 죽음을 막지 못한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다.

해서 또 다른 죽음의 그림자가 우리 주변에 드리워지기 전에 지난 칼럼에서 강조했던 패러다임의 변화를 다시 한번 되새기고자 한다.

첫째로 이제 우리 사회 구조와 생활 환경을 고려하면, 누구나 마약에 노출될 수 있다.

물론 대부분의 마약 사용은 각자의 선택에 달려있지만, 우리는 고인의 일관된 주장처럼 마약인 줄 모른 채로 마약에 노출될 수 있는 사회 환경에서 살고 있다. 부지불식간의 노출도 반복되면 그 상황을 갈망하고 중독에 빠져들게 할 수 있다.

이제, 더 이상 마약 사용자를 ‘마약쟁이’로 낙인찍는 일을 삼가야 한다. 우리 사회에서 다른 행위나 범죄에 비해 ‘마약쟁이’라는 낙인 효과의 강도와 그에 따른 피해는 매우 심각하다.

마약 사용자에 대한 엄격한 사법적 조치와 처벌이 필요하고 공정하게 집행되어야 하지만, 사법·행정적 처벌을 넘어선 불공평한 사회적 처벌이 과도하게 부과되는 일이 없도록 주의해야 한다. 전후 사정을 충분히 파악하고 그 내막을 생명 존중의 정신으로 해석한 후에 비난하고 칼질해도 늦지 않다.

두 번째로 누차 강조하였지만 ‘마약 중독자’는 범법자 이전에 정신장애 환자이다.

환자로 인식해야 치료 단계로 진입할 수 있다. 한때 우리나라에서도 ‘조현병’을 숨기기에 급급한 정신병으로 여기고 감금하거나 심지어 쇠사슬로 묶어 놓기까지 하였다. 정신질환에 대한 사회의 부정적 인식이 강하여 우리의 법은 환자 보호차원에서 아직도 정신질환을 의약분업의 예외 질환으로 정하고 있다.

하물며 ‘마약 중독자’를 환자로 인식하기란 쉽지 않다. 이미 법과 제도는 인식을 바꿔가고 있는데, 그 관계자들과 언론의 인식 전환은 더디다. 환자로 인식한다면 범법자와 환자에 대한 이중적 조치가 뒤따라야 한다. 정신장애도 육체적 장애 못지않게 사회적 배려와 환자 보호가 필요하다.

세 번째로 「마약류관리에관한법률」의 제정 취지와 목적에 따라 법을 시행해야 한다.

법의 목적은 “마약으로 인한 보건상의 위해(危害)를 방지하여 국민보건 향상에 이바지하는 것”이다. 즉, 마약과 연계된 다양한 침해로부터 삶을 보호하고 취약한 생명을 살리기 위하여 법이 제정되었다.

그러나 정부가 그 법을 집행하는 과정에서 보호 대신에 또 다른 침해가 발생하고 결국 죽음으로 내몰리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법 조문 어디에도 생명의 소멸을 지시하거나 “불법 마약 사용자는 죽어도 된다”는 내용은 없다.

사후에 사법기관과 언론이 아무리 공정과 공평을 강조해도 죽음을 되돌릴 수 없다. 공정하고 공평한 처벌이 결정될 때까지 보호하고 살리기 위한 배려가 있어야 한다. 우리 국민 대다수는 여전히 마약 관련 뉴스를 단순 시청자나 방관자로 바라보고 있다가 직접적인 내 친지들을 잃고서야 울분을 토하는 상황을 반복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공정(公正)은 생명을 살리고 지지하는 것이다. 죽은 후에 공정과 공평은 의미가 없다. 책임은 살리는 것이다. 죽은 후에 어떻게 책임을 질 수 있는가? 최선을 다해도 살리지 못한다면 책임을 다하지 못한 것이다.

새해에는 책임을 운운하기 전에 살리기 위하여 하늘을 감동시킬 만큼 정성을 다하는 사회가 되길 기대해 본다.

(글. 전북대학교 약학대학 정재훈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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