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전북대학교 약학대학 정재훈 교수 (현.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 전문교육원장) 
사진. 전북대학교 약학대학 정재훈 교수 (현.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 전문교육원장) 

지난 11월 28일, 보건복지부 산하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는 ‘마약류 중독자 치료보호의 건강보험 급여 적용’을 의결했다. 이에 따라 보건복지부는 2024년 상반기에 ‘국민건강보험 요양급여의 기준에 관한 규칙’을 개정해 마약류 치료보호 대상자 중독 치료비의 70%를 건강보험에서 지급할 방침이다.

지금까지 마약중독 치료보호 대상자의 중독 치료비는 건강보험에 적용되지 않고 있으며, 법원으로부터 치료명령‧치료감호를 판결받은 중독자의 치료에만 건강보험이 적용되고 있는데 그 적용 범위를 확대하는 조치이다.

보건복지부는 “최근 급속히 확산하는 마약류 중독을 심각한 사회적 문제이자 확산 위험이 높은 질병으로 인식해 건강보험체계 내에서 환자의 치료 접근성을 강화하는 노력”이라고 밝혔다.

이에 대하여 우리 사회의 일부 구성원들은 “개인의 불법행위로 발생된 문제를 해소하기 위하여 모든 국민이 세금처럼 모은 건강보험금을 사용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고 주장하고 있다.

필자는 현 논란을 바라보며 이 문제에 대한 사회적 이해에 도움이 되길 바라며, 건강보험의 적용 당위성에 관한 의견을 정리하였다.
 

마약중독은 예방·치료·관리해야 할 질병이며 마약 중독자는 환자다

미국정신의학회가 정의하고 분류한 매뉴얼 즉, DSM은 국제표준처럼 활용되고 있는데, 2013년 발표된 DSM-Ⅴ에서 물질(약물)의 사용으로 유해한 결과가 발생하고, 사용자가 유해한 결과를 충분히 인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물질의 사용을 스스로 통제할 수 없는 복잡한 상태를 ‘물질사용장애(substance use disorder)’라는 질병으로 정의하였다.

그중 가장 심각한 상태가 탐닉(addiction, 중독)이다.

지난 8월에 개정된 우리나라 「마약류관리에관한법률」의 제2조의2③항도 “국민은 마약류 중독자에 대하여 치료의 대상으로 인식하고 건강한 사회구성원으로 자립할 수 있도록 협조하여야 한다”고 적시함으로써 마약중독자를 환자로 보고 있다.

마약중독은 질병이며, 현행법을 어겼을지라도 마약중독자는 환자이다.

마약중독이 질병이고 중독자가 환자이며, 중독자가 건강보험에 가입되어 있다면 환자의 치료에 건강보험을 적용하는 것은 당연하다.

누구나 건강보험료를 납부하면서 “원치 않은 질병이 발생했을 때 적절한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지원받을 것”을 기대한다. 병을 인식한 환자들의 건강 회복에 대한 기대를 차별해선 안된다.
 

마약중독도 고혈압이나 당뇨병처럼 예방·치료·관리가 필요한 만성 질환이다

미국 NIH(국립보건원)는 마약중독이 보상과 스트레스, 자제 관련 뇌 회로의 기능적 이상이 수반된 만성 재발성 뇌 장애로서 심장병과 같은 다른 만성 질병들처럼 예방과 치료, 관리가 필요함을 설명하고 있다.

장기간의 부적절한 식이 + 생활 습관 + 유전적 소인 등이 복합적으로 작동하여 고혈압이나 당뇨가 발병하는 것처럼 유전적 소인 + 생활 습관 + 습관적 약물사용 등의 복합적 작용으로 중독이라는 병에 걸린다.

마약중독자들의 약물 추구 행동을 사회적 위해를 목적으로 하는 악행으로 간주하기보다, 약물에 의한 뇌 신경의 손상으로 유발된 자제 불가능한 장애로 봐야 한다.

고혈압 또는 당뇨병 환자들은 건강해지기 위해 부적절한 생활 습관을 개선하고 의·약료적 치료를 받으며 관리하지만, 종종 옛 습관에서 완전히 탈피하기 어렵고 평생동안 치료를 이어 나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예를 들어, 흡연이나 스트레스가 고혈압이나 당뇨의 치료와 관리에 해롭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 환자들이 흡연과 스트레스 습관에서 탈피하지 못했다”하여 건강보험의 적용을 제한하자는 주장은 없다.

그들이 부적절한 생활 환경에서도 건강해지길 바라고 있다는 것을 의심하거나 여전한 생활 습관을 비난하지 않는다.

마약중독자들도 중독에서 벗어나길 고대하며 생활습관을 개선하고 의약료적 치료 방안을 찾고 있다. 최근, 모 유명 인사의 자녀가 마약중독에서 벗어나기 위한 분투가 보도되었는데, 대다수의 마약중독자들은 중독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분투하고 있다.

마약중독의 발현에도 고혈압이나 당뇨병처럼 환경적 요소와 함께 유전적 소인이 크게 기여하기 때문에 마약중독에 취약한 사람이 있다. 마약중독이 단순 선택 오류가 아니라 취약자에서 발병일 수 있다.

고혈압 환자가 되기 위해 짜게 먹고 스트레스를 방치한 사람이 없는 것처럼 마약중독에 빠지기 위하여 마약을 시작한 사람은 없다. 당뇨병이든 마약중독이든 간에 환자가 병에서 벗어나길 원하면 공평하게 치료해야 한다.

마약중독의 치료에 의·약료적 중재가 유효하고 중요한데, 마약중독이 개인의 불법적 선택의 결과라는 이유로 치료를 제한하는 것은 공평하지 않다.

고혈압이나 당뇨병과 같은 만성병의 발병 역시 생활 방식에 있어서 각 개인의 부적절한 선택의 결과일 수 있는데, 특정 질병에 대하여 건강보험의 적용을 차별하는 것은 지나친 면이 있다. 법을 위반한 행위를 처벌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위법 사항을 처벌하는 것과 병을 치료하는 것은 구분되어야 한다.

게티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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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약중독을 치료하지 않으면 그 피해는 누구에게?

최근 “마약에 취한 채 롤스로이스를 몰다 20대 여성을 치어 숨지게 한 사건”이 있었다. 마약중독이 방치되면 불 특정 다수에게 위험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이다. 마약중독은 개인의 건강과 삶, 존재 가치를 훼손할 뿐만 아니라 아무 관련이 없는 불특정 다수 또는 사회 전체에 큰 피해를 줄 수 있다.

미국 보건복지부가 2023년 3월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미국에서 불법 약물남용에 따른 연간 경제적 피해의 규모가 1930억 달러(251조원)로 추산되었다. 그 피해를 누가 부담하고 있을까? 우리 모두가 피해자가 될 수 있다.

그 피해가 반복되지 않기 위해선 마약중독이 사라져야 하고, 피해를 줄이기 위해선 중독자를 줄여야 한다. 마약중독을 치료해야 중독자를 줄이거나 제로화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마약중독의 위험도가 추정이 어려울 만큼 높아지고 있다.

현실적으로 단기적 제압이 어렵다면, 장기적 대처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중장기적 관점에서 마약에 대한 수요를 줄이기 위한 최선의 방안 중 하나가 마약중독자를 치료하는 것이며, 이는 우리 사회의 건강한 미래를 위하여 필수적인 조치이다.

아직까지 우리 사회에는 마약중독자를 ‘마약쟁이’라는 ‘회복 불능의 사회 부적응자’ 또는 ‘심신미약 범죄자’로 낙인하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인식에 기초한 “개인의 불법행위로 발생된 마약중독을 치료하기 위하여 건강보험금을 사용하는 것이 부적절하다”는 주장은 오히려 ‘마약없는 건전한 사회’로 가는 길의 장애가 될 수 있다.

소 잃고 외양간을 둘러보는 우를 범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마약중독을 적극적으로 치료하기 위하여 모든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마약류 중독자 치료보호의 건강보험 급여 적용’은 그 방안들 중에서도 매우 중요한 대책으로 건강보험체계 내에서 마약중독 환자의 치료 접근성을 강화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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