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성은아 박사
사진. 성은아 박사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 기술을 이용한 최초의 치료제가 약물로 나왔다. 겸상적혈구성 빈혈에 적용하는 카스게비가 영국과 바레인, 미국에서 2023년 11월과 12월 사이에 승인을 받음으로써 최초의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 치료제가 되었다.

겸상적혈구성 빈혈은 한국에서는 유병률이 낮은 유전성 질환이다. 더구나 카스게비가 보통 사람은 엄두도 내지 못할 초고가의 약물이어서 약물 승인이 실질적으로 체감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유전자 가위 기술이 가진 잠재력이 약물로 현실화되었다는 점에서 그리고 이 기술을 이용한 약물이 계속 나오리라는 기대가 충만한 시점에, 카스게비의 승인은 기념비적인 의미를 가진다.

유전자 가위 기술은 세포 내의 유전자를 수정하는 기술이다. 세포가 가지는 수만 개의 유전자 중에서 필요한 유전자를 선택적으로 편집하고 교정하기 때문에 유전체 편집 기술이라고도 한다.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 치료제는 가이드 유전자와 가위 유전자를 기본적인 성분으로 가진다. 가이드 유전자가 세포 내의 타겟 유전자를 찾아내고, 가위 유전자가 타겟 유전자를 자르고 고친다. 치료제가 특정 유전자의 특정 부위를 조작하여 유전정보를 수정함으로써 세포에 변화를 주고 궁극적으로 질병을 치료한다.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 치료제는 일종의 유전자 치료제이다. 유전자 치료제는 이미 여러 종류가 사용되고 있어서 그리 새삼스럽지 않다. 척수근위축증에 사용하는 졸겐스마와 킴리야를 비롯해서 항암 치료에 사용하는 CAR-T 치료제들도 유전자 치료제들이다.

이질적인 유전자가 세포 안으로 들어가서 부가적인 단백질을 만들어내어 치료제로 작용한다. 카스게비는 이전에 나온 유전자 치료제와 좀 다르다. 세포 본래의 유전자를 원하는 대로 고쳐서 쓰는 방식이다.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 기술은 불과 10여 년 전에 소개되었다. 기술적으로 간편하고 정확하다는 장점 때문에 즉시 약물 개발에 응용되어 첫 약물이 나왔다.

겸상적혈구성 빈혈은 적혈구에 있는 헤모글로빈이라는 단백질에 생긴 변이 때문에 발병한다. 변이된 헤모글로빈은 산소와 결합하는 능력이 떨어진다. 산소 운반 능력이 저하된 적혈구는 파괴되기 쉬워서 문제를 야기한다. 환자는 빈혈과 통증 때문에 고통을 받는다. 심혈관 질환이나 여러 가지 장기의 손상도 일어난다.

아프리카 사하라 사막 이남 지역에 적지 않은 환자가 있고 히스패닉 중에서도 환자들이 꽤 있다. 이 변이가 있는 사람은 말라리아의 감염에 저항력을 가지기 때문에 말라리아가 창궐하는 지역에서 유병률이 높다.

카스게비는 환자의 조혈모 세포를 추출해서 유전자 조작을 하여 다시 환자에게 재 주입하는 맞춤형 치료제이다. 사람에게는 영유아기 때 사용하던 여분의 헤모글로빈 유전자가 있는데, 태어난 후 일정 시기가 지나면 이 유전자가 잠복기에 들어가서 단백질을 더 이상 만들지 않는다.

카스게비는 이 유전자를 변형시켜서 활성화한다. 헤모글로빈에 변이가 있는 환자에게 여분의 유전자에서 만들어진 건강한 헤모글로빈이 보충되어 환자의 증상이 호전된다.

치료 과정은 골수이식과 유사하다. 단지 다른 사람의 조혈모 세포가 아니라, 환자 자신의 조혈모를 이식한다는 점이 다르다. 환자의 조혈모 세포를 유전자 조작하여 변형시킨 다음 재 주입한다.

유전자 조작한 세포를 재주입하기 전에 환자는 화학 요법을 받아서 체내에 있는 혈액 세포를 미리 제거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치료 과정이 복잡하고 치료를 하기 위한 의료 시설과 인프라가 구비되어야 한다. 이론적으로 한 번 치료를 받으면 평생 또는 적어도 장기간 치료 효과가 지속되기를 기대하는 약물이다.

약물에 대한 임상시험이 1년 반 정도의 기간 동안만 수행되었으니 약물의 효과가 얼마나 오래 지속되며 혹시 부작용이 지연되어 나타나는가에 대하여는 아직 검증되지 않았다.

미국 FDA는 카스게비와 함께, 리프게니아를 같은 날 승인했다. 리프게니아도 겸상적혈구성 빈혈에 적용하는 유전자 치료제이다. 정상 기능을 하는 헤모글로빈 유전자를 환자의 조혈모 세포에 부가해 주어서 기능하도록 하는 전통적인 방식의 유전자 치료제이다.

환자의 입장에서는 치료 과정이나 치료 효과의 면에서 리프게니아든 카스게비든 서로 비슷하다. 두 약물 모두 소규모 임상시험을 수행하고 승인을 받았는데, 치료를 받은 대부분의 환자에게서 증상이 개선되었다. 임상시험 2년 미만의 기간 동안 관찰한 바에 따르면 두 약물 모두 아주 효과적이라고 알려져 있다.

리프게니아는 승인과 함께 혈액암 발병에 대해서 관찰을 필요로 하는 ‘블랙박스 경고’를 받았다. 리프게니아의 임상 시험 중에 두 명의 환자가 백혈병을 발병했기 때문이다. 리프게니아는 치료 효과를 나타내는 헤모글로빈 유전자를 배달용 바이러스에 삽입해서 세포에 투입한다.

게티이미지

배달용 바이러스에 목표하는 유전자를 끼워서 투입하는 방식은 유전자 치료제를 만들 때에 흔히 사용하는 방법이다. 배달용 바이러스는 체내에서 의미 있는 기능을 하지도 않고 스스로 증식하지도 않고 무해무익하며 단지 목표 유전자를 배달하는 기능만 한다.

하지만 배달용 바이러스가 염색체의 원하지 않는 부분에 끼어 들어가서 유전정보를 의도하지 않게 교란하여 암을 유발할 가능성이 확률적으로 존재한다. 리프게니아를 개발한 블루버드 바이오는 임상시험 중에 발병한 백혈병은 약물의 투여와 무관하다고 주장하지만, 이 때문에 리프게니아는 블랙박스 경고를 받은 채 승인이 되었다.

카스게비는 이런 경고를 받지 않았다. 엄밀하게 말하면 카스게비가 리프게니아보다 특별히 더 안전하다고 볼 수는 없다. 세포 내의 유전자를 조작할 때에 목표하는 부위만을 수정해야

하지만 원하지 않는 불특정한 곳에 유전자 조작이 일어날 경우를 완전히 배제하지 못한다. 아직까지 유전자 변형과 관련된 큰 문제를 보이지 않았지만, 부작용의 여부를 장기적으로 관찰하고 검토할 필요가 있다.

유전자 가위 기술은 계속 발전 중이다. 정확성과 효율성의 면에서 개선된 소위 크리스퍼 2.0 기술이 이미 약물 개발에 사용되고 있다. 현재 임상시험 단계에서 개발 중인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 치료제는 100개를 훌쩍 넘었고, 상당 수의 약물은 임상시험의 후기 단계에서 개발 중이다.

기술적인 이유 때문에 혈액 세포 질환과 관련된 약물이 압도적으로 많지만, 이 외에도 약물이 적용되는 질환이 다양하다. CAR-T 항암 치료제 개발에도 이 기술이 사용된다. 희귀 질환 말고도, 대사성 질환에 대하여도 약물 개발이 이루어지고 있다.

고지혈증 환자에게 유전자 교정 치료제를 정맥 주사하여 체내에서 유전자를 직접 수정하여 콜레스테롤을 낮추는 임상시험이 초기 단계에서 수행되었다.

가격을 말하자면, 카스게비와 리프게니아 모두 초고가의 약물이다. 카스게비의 가격은 220만 달러, 요즘 환율을 적용하면 28억원이 넘는다. 리프게니아의 가격은 310만 달러, 카스게비에 비해서 10억원 이상 비싸다.

비슷한 효과를 가진 두 약물이 가격에서 어떻게 차이를 보이는지 알려지지 않았지만 둘 다 초현실적인 가격이다.

잘 알려진 유전자 치료제 졸겐스마도 210만 달러이고 지금까지 나온 유전자 치료제 중에서는 350만 달러(45억원)의 가격표를 붙인 약물도 있으니, 유전자 치료제의 가격은 환자가 개인적으로 부담할 수 있는 차원을 넘는다. 현 시점에서 환자가 새로운 치료제에 접근할 수 있는 방법은 아주 제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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