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전북대학교 약학대학 정재훈 교수 (현.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 전문교육원장) 
사진. 전북대학교 약학대학 정재훈 교수 (현.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 전문교육원장) 

최근 미국 Los Angeles County(LAC)의 보건국이 지역 차원에서 2016년부터 2022년까지 펜타닐 과다복용에 따른 사망자 관련 통계 보고서를 발표하였다.

2016년 109명이었던 사망자가 2022년 1,910(인구 10만명당 19.5명)명으로 약 18배 증가하였다. 2016년 약물과다복용 사망의 원인으로서 페타닐의 관련성이 19%였는데, 2022년에는 92%로 높아졌다.

2022년 약물과다복용 사망자의 10영 중 9명은 펜타닐 투약과 관련되어 있다. LAC의 인구 중 흑인 비율은 8%인데, 펜타닐 과다복용 사망자의 21%가 흑인이었으며 빈곤한 지역의 사망자 비중이 훨씬 높았다.

빈곤층이 펜타닐 위험에 취약함을 시사하고 있다. 아울러 보고서는 아래의 사항들을 지적하였다. 사회인구학적, 지리적 요인이 과다복용 위험을 증가시키고 있어서 경제적, 구조적, 문화적 요인에 기초한 대책이 필요하다. 상당수의 사망자들은 펜타닐에 노출된 사실도 모르는 상태였으므로 펜타닐 테스트 스트립 등을 통한 위험 인지 강화 노력이 필요하다.

약물 과다복용은 예방이 가능하며, 근거에 기반한 예방 도구가 효과적임이 확인되었으므로 그룹 맞춤형 예방과 치료 노력이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치료에 대한 접근성을 높이면 많은 사람들이 약물 중독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앞서의 보고 내용들을 보면서 필자는 미국에서 발생된 펜타닐 위기의 원인을 구체적으로 살펴보고 우리의 상황에 대비해 보고자 한다.

그림 . 미국 CDC가 발표한 미국의 아편류 과다복용에 따른 사망 실태: 2021년에 매일 220여명이 아편류 과다복용으로 사망했고, 그 중 대부분이 펜타닐과 연관되어 있다. [출처: 미국 CDC 홈페이지 자료]
그림 . 미국 CDC가 발표한 미국의 아편류 과다복용에 따른 사망 실태: 2021년에 매일 220여명이 아편류 과다복용으로 사망했고, 그 중 대부분이 펜타닐과 연관되어 있다. [출처: 미국 CDC 홈페이지 자료]

펜타닐은 새로운 약이 아니라 1968년에 미국 FDA가 정맥마취제로 승인한 약으로 애초에 천문가들이 그 남용 위험성을 제기했었다.

그러나 1990년 이후 피부 패치제를 시작으로 점막과 피부를 통해 흡수될 수 있는 다양한 제형들, 즉, 구강점막투과제와 구강정, 구강 필름, 설하정, 비강스프레이, 설하스프레이 같은 제형들이 개발되었고 그 적응증(여러 원인에 의한 통증의 해소)이 확대됨에 따라 투약 범위가 넓어지고 편이성이 좋아져서 처방이 확대되었다.

미국 의학 연구소(Institute of Medicine) 보고서에 따르면, 통증 완화에 대한 환자의 더 높아진 기대/ 고령화로 인한 근골격계 질환에 따른 통증 환자 증가·비만·부상과 암 후 생존율 증가에 따른 통증 환자 증가/ 수술의 빈도와 복잡성의 증가로 진통제의 수요가 증가하였으며 2000년대에도 만성 통증은 ‘Big business’였다.

이즈음 옥시콘틴(Oxycontin)의 탐닉성 경고를 최소화하고 라벨 외 사용을 장려하는 제약사들의 마케팅과 부도덕한 의사들의 과다 처방으로 아편류 처방이 증가하여 옥시콘틴 남용이 사회문제로 대두되었다.

2010년 이후 처방 증가와 남용 확대를 제어하기 위하여 정부가 실시한 아편류 규제 강화와 비용 상승으로 아편류 처방은 대폭 감소하였다. 대신에 암시장에서 상대적으로 저렴한 헤로인의 유통이 증가하여 2015년에 헤로인 과다복용 사망자의 수가 최고조에 달하였다.

확산된 헤로인 남용은 2013년을 기점으로 더 저렴하고 더 강한 효력을 가진 불법 펜타닐 유사체의 유통을 불러왔다. 펜타닐 유사체들은 헤로인에 비해 훨씬 적은 양(1/50)으로 기대하는 약효를 얻을 수 있게 하였다.

이 영향으로 2013년에 비해 2016년 펜타닐 관련 약물과다복용 사망자가 5배 이상 증가하였다. 이 기간에 아편류 진통제 처방 건수는 13% 감소하였음에도 아편류 과다복용 사망자는 크게 증가하였다.

이 상황에 기초하여 펜타닐 위기의 원인을 다음과 같이 추정할 수 있다.

⑴ 펜타닐에 대한 의료·사회적 수요가 있었다. 아편류 가용성이 확장되어 복용률이 증가하였다.

⑵ 펜타닐은 남용을 유도할 만큼 강력한 약효를 가진 약물이다. 즉, 마약류 남용자들의 욕구를 충족할 수 있는 성능을 가진 약물이다. 아울러 금단증상이 매우 심각하기 때문에 남용자들은 약물 사용을 중단하기가 매우 어렵다.

⑶ 펜타닐은 물성이 좋아서 여러 경로로 투약할 수 있기 때문에 접근이 쉽다. 투약을 위한 기구나 기술이 필요치 않다.

⑷ 미량으로 약효를 볼 수 있어서 감추기 쉽고 다른 마약류에 비해 1회 투약을 위한 비용이 훨씬 저렴하다. 불법 유통이 쉽고 미국의 빈민층이나 청소년도 쉽게 구매할 수 있는 비용이다.

⑸ 마약류에 대한 개인들의 지식과 경각심이 부족했다. 남용자들은 상대적으로 마약류에 대한 거부감이 적다.

이 기간 미국의 사회·경제적 환경의 변화도 펜타닐 위기의 발생에 기여하였다. 1999년 이후 경제 상황이 악화된 중서부 지역에서 ‘절망의 질병(Disease of Despair)’으로 불리어지는 사회 병리적 현상들이 나타났다.

이 환경에 처해 있던 대학을 졸업하지 않은 백인들의 수명이 부모 세대 보다 훨씬 짧았다. 비만과 장애, 만성 통증, 우울증, 사회적 스트레스와 같은 요인들이 약물 사용을 부추겼고 자포자기 또는 자살로 이어졌음을 지적하고 있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소득 불평등과 사회 안전망이 악화되었고 이러한 현상(절망의 질병)이 전국으로 확산되었다. 빈곤하고 불안정한 생활 환경은 정신 장애와 약물 남용을 촉진하는 요소로 작용한다. 사회적 자본과 복지 수준이 낮은 지역의 거주민이 상대적으로 만성 통증 발현이 높았고 아편류 복용률도 높았다.

이들 취약 지역은 위법 행위 비율과 처벌(투옥)율도 높았으며, 범법자 회피와 낙인 효과는 사회적 배제와 마약 의존의 강화로 이어졌다. 대부분의 기업들은 약물 추구 행위가 의심되는 사람들에게 치료 프로그램에 편입하여 회복의 기회를 제공하는 대신에 "해고"를 선택했다.

마약류 중독 환자들은 치료·재활할 기회를 얻지 못하였고 회복에 필요한 지원과 제도가 부족했다. 펜타닐 남용자들의 투옥은 내성 중단을 유도하였고 출소 등 재 복용의 기회를 가진 남용자들은 내성의 변화에 대한 지식의 부족으로 습관적으로 이전 용량(내성 상태의 용량)을 복용하고 사망하는 경향도 있었다.

또한 취약지역의 거주민들은 위험 상황에서도 응급실 방문 비율이나 의료적 치료를 시도하는 비율이 매우 낮았다.

이 상황에 기초하여 펜타닐 위기의 사회·경제적 원인을 다음과 같이 추정할 수 있다.

⑹ 빈곤과 소득 불평등과 같은 경제적 상황이 펜타닐 남용과 위기를 부추겼다. 희망을 잃어버린 보통 사람들의 선택은 제한적이다.

⑺ 만성 통증에 시달리는 생활·보건 환경이 펜타닐 남용을 유도한 면이 있다.

⑻ 펜타닐의 내성과 용량-반응의 상관성에 대한 지식과 이해의 부족이 종종 치사량 투약으로 이어졌다.

⑼ 의료적 접근성의 부족이 펜타닐 위기를 강화하였다.

⑽ 사회 제도와 통념이 펜타닐 위기를 방치한 면이 있다.

⑾ 이미 단순 마약 남용자를 처벌과 구속하는 것으로 해결할 수 없는 지경이 되었다.

이 모든 환경과 함께 펜타닐 제조·공급망과 유통망의 형성도 펜타닐 위기의 강력한 요인이다. 미국 마약 단속국(DEA)의 홈페이지에는 실시간에 가까운 불법 펜타닐 압수량이 게시되어 있는데, 12월 5일 기준 2023년 압수량이 알약 7230만개와 펜타닐 가루 1만 1428 파운드이다.

올해 압수된 양만으로 3억6천만 명을 죽일 수 있다. 멕시코와 중국이 미국으로 직접 밀수되는 펜타닐과 펜타닐 관련 물질의 주요 공급국이었는데 최근 인도도 주요한 공급원으로 파악되고 있다.

펜타닐 자체가 중국에서 미국으로 직접 배송되기도 하지만 중국에서 전구물질을 멕시코로 보내고 멕시코의 비밀 공장에서 최종 제조를 거쳐 미국으로 보내지기도 한다. 온라인 구매가 일반화되어 세계 각국의 상품을 스마트폰으로 주문하고 국제 배송을 통해 받을 수 있는 세상이다.

2015년 중국에서 미국으로 보낸 소포가 약 206억 개였다. 오락 목적의 펜타닐 투여 용량이 0.5∼1mg이므로 10g으로 1만 명에게 투약할 수 있다. 관련 정보 없이 세관이나 배송 과정에서 적은 부피의 숨겨진 펜타닐을 걸러내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 상황에 기초하여 펜타닐 위기의 원인을 다음과 같이 추가할 수 있다.

⑿ 공개된 펜타닐 제조 화학기술과 저렴한 제조 비용 

⒀ 일반 환경에서 보관·유통할 수 있는 펜타닐의 물리·화학적 안정성 

⒁ 미량의 유효 투여량에 따른 비밀 유통의 용이성 

⒂ 개방된 글로벌 제조-유통-판매-배송 시스템

관련 전문가들의 논문과 미국 공공기관의 보고서에 기초하여 미국에서 펜타닐 위기의 요인들을 살펴보았다. 이를 다시 정리하면 첫 번째 요인은 ‘펜타닐’이란 약물이 가진 특성 즉, 미량으로 발현되는 강력한 효과와 독성, 다양한 투여경로, 쉬운 접근성, 저렴한 비용, 감추기 쉬운 점, 화합물의 안정성, 어렵지 않은 제조 화학기술이다.

두 번째로 개인들의 마약류에 대한 인식과 의료·제도적 환경 즉, 사람들의 마약류에 대한 경각심 부족과 함께 사람들이 펜타닐을 선호하게 하는 의료·제도적 상황이다.

세 번째로 사회·경제적 환경 즉, 위험을 감수하고라도 오락용으로 펜타닐을 찾게하는 사회·경제적 상황이다.

네 번째로 확산을 통제할 수 없는 글로벌 제조-유통-판매-배송 시스템이다. 이중 우리나라와 미국의 차이는 의료·제도적 환경과 사회·경제적 환경이다. 이마저도 크게 다르다고 할 수 없다.

이미 우리의 경제력이 마약류를 쉽게 구매할 수 있는 수준이며, 우리나라의 자살율이 OECD 국가들 중 가장 높고 자살은 절망의 종착역이다. 상대적 빈곤감과 소득 불평등, 불만적 현실 인식은 우리 사회에 지속되어 온 숙제이다.

다행스럽게도 우리 국민들의 마약에 대한 지식과 경감심이 매우 높고, 펜타닐류를 제조-유통시키고 있는 글로벌 카르텔도 아직까지 우리나라에 손을 뻗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방심하기 보다는 미국의 위기를 반면 교사로 삼아 선제적으로 방비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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