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팜뉴스=최선재 기자] 제약 강국 '스위스'가 뜻밖의 문제에 직면했다. 최근 항생제, 해열제 등 의약품 공급 문제로 연일 고통을 겪고 있다. 노바티스, 로슈 등 글로벌 골리앗들이 포진한 국가로 명성이 자자하지만 우리나라와 같이 의약품 품절 현상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는 뜻이다. 

이는 대원제약 약무팀이 27일 한국제약바이오협회가 발간한 'KPBMA 브리프'에서 지적한 내용으로, 업계의 비상한 관심을 끌고 있다. 스위스가 의약품 공급 문제를 겪는 주요 원인 중 하나로 빈번한 약가 인하 정책을 지목했기 때문이다. 팜뉴스가 대원제약 약무팀이 작성한 '바이오산업 육성과 정부의 약가정책' 기고를 전하는 이유다. 

게티
게티(지폐는 스위스 프랑)

대원제약 약무팀은 기고문 중반부에서 "스위스는 로슈와 노바티스 등 세계 최대 제약기업이 위치한 국가"라며 "하지만 KOTRA 보고서에 따르면 채산성 부족으로 자국내 공급업체 철수가 발생 중이다. 의약품 공급 문제를 겪는 이유"라고 밝혔다.

과연 '팩트(사실)'일까

KOTRA가 2023년 6월 발간한 보고서 “제약 강국 스위스의 의약품 공급 부족”에서는 같은 지적이 등장했다. 

KOTRA는 해당 보고서에서 "로슈와 노바티스 등 세계 최대 제약기업과 수백 개의 소규모 바이오테크 회사가 위치한 스위스는 명실상부 세계 제약산업의 중심지"라며 "하지만 전 세계에 수많은 의약품을 공급하는 국가인 스위스가 의약품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선뜻 이해가 가지 않을 수 있지만 2022년 말부터 스위스 언론에서는 항생제에서부터 이부프로펜, 파라세타몰 등과 같은 일반 진통제, 파킨슨병, 심장병, 간질 등과 같은 만성질환 치료제에 이르기까지 의약품 공급 부족에 관한 보도가 쏟아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유럽 외신에 따르면, 스위스는 현재 건강 보험 적용 범위에 속하는 970개 이상의 의약품 부족에 직면 중이다. 진통제, 항생제, 정신의약품, 류머티즘 약물을 포함한 광범위한 약물 부족으로 신음하고 있다. 

2023년 5월엔 스위스 병원에 모르핀 공급이 부족해 기존에는 팩 포장 단위로 환자들에 제공되던 것을 해체해 낱알 단위로 분배하고 있다는 내용이 주요 일간지인 <Tages Anzeiger>에 실렸다. 

스위스에서는 모르핀 낱개 판매가 금지됐지만 5월 1일부로 모르핀 외에도 일반 항생제 8종에 한해 허가됐다는 것이다. 이는 <의약품 공급 병목 현상에 관한 테스크포스>(Taskforce Engpass Medikamente)의 권고에 따른 연방 정부의 결정이다. 스위스의 의약품 부족 사태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팜뉴스가 대원제약 약무팀 '바이오산업 육성과 정부의 약가정책' 기고 발췌
팜뉴스가 대원제약 약무팀 '바이오산업 육성과 정부의 약가정책' 기고 발췌

중요한 사실은 '빈번한 약가 인하' 정책이 이번 공급 부족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됐다는 점이다. 

앞서의 KOTRA 보고서는 "시장 규모가 작은 스위스가 직면한 문제는 마진이 낮은 의약품과 관련돼 있다"며 "전문가들은 현재 공급 병목 현상의 약 90%가 특허가 만료된 의약품이나 제네릭과 관련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그러면서 "스위스 연방보건청은 의무 의료보험이 적용된 의약품의 가격 책정을 담당하고 있는데, 3년 주기로 해외 가격과의 비교 및 스위스 내 유사 제제 가격과의 비교를 통해 특히 제네릭 의약품의 가격을 여러 차례 하향 조정해 왔다"고 덧붙였다. 

이어 "제네릭 의약품 지출 비용을 절감시켜 가격이 상대적으로 높은 신규 의약품이나 치료 요법에 지출하겠다는 목적"이라며 "스위스의 제네릭 의약품 가격은 제네릭 의약품 가격 상한제가 적용된다른 유럽 국가에 비해 평균적으로 높지만, 다수 구형 의약품의 가격은 다른 국가 수준 이하로 떨어진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팜뉴스가 대원제약 약무팀 '바이오산업 육성과 정부의 약가정책' 기고 중 발췌
팜뉴스가 대원제약 약무팀 '바이오산업 육성과 정부의 약가정책' 기고 중 발췌

아이러니한 일이다. 신약으로 세계를 호령 중인 스위스가 약가 인하로 인한 각종 필수 의약품 부족으로 국가 차원의 태스크 포스를 구성한 것만큼 역설적인 일이 있을까. 

'기시감'이 느껴질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복지부 등 우리 당국의 각종 의약품 재평가를 통한 약가 인하의 목적은 '약품비 절감'이다. 정부도 약품비 절감을 통한 효율적인 건보재정 관리로 신약과 희귀질환 의약품의 약가 우대와 급여권 안착에 더욱 힘을 쏟겠다는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2012년 일괄 약가 인하 이후로 약가 정책 취지를 설명할 때마다 나온 얘기다. 

대원제약 약무팀이 스위스 사례를 인용하면서 약가 정책에 문제를 제기한 배경이다.

이는 신약 예찬론으로 인해 제네릭 역차별이 이뤄진다면 훗날 의약품 공급 부족 문제가 더욱 심화될 수 있다는 위기론이다. 

대원 약무팀은 마지막으로 "지속적인 제네릭 약가 인하 정책은 보험 당국의 당장의 목표인 ‘약품비 감소’를 달성하기 위한 가장 쉬운 방법"이라며 "하지만 이로 인해 국내 제약환경 변화 및 제약주권을 위협받는 상황이 발생될 경우 어렵게 구축한 국내제약산업 및 안정적 의약품 공급인프라는 점점 축소될 수 있다는 사실을 심각하게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고 당부했다. 

그러면서 "해외 개발 의약품의 의존도가 갈수록 커지는 상황에서 또 한 번의 일괄 약가인하가 시행 된다면 수입제품에 대한 의존도가 더욱 높아질 가능성이 있고 그로 인해 국내 제약산업 전체의 붕괴로 이어질 수 있다"고 덧붙였다.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이 시각 추천뉴스
랭킹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