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전승'은 짜릿하다. 누가 보더라도 질 수밖에 없는 상황을 일거에 반전시키면 수많은 관중의 환호가 쏟아진다. 프로야구에서 9회말 투아웃 이후 일어난 역전승은 곧 전설이 된다. 축구에서도 전후반이 지나고 추가시간에 동점골과 역전골을 만들어 승부를 뒤집은 선수들은 평생 기억에 남는다. 열세를 뒤집고 이뤄낸 역전승은 명승부로 남고, 명승부의 주인공들은 역사에 이름을 올리기 마련이다. 

흥미로운 사실은 의약품 특허 세계도 다르지 않다는 점이다. 수많은 특허 분쟁이 끊임없지만 명승부는 뇌리에 박혀서 결코 잊혀지지 않는다. 제약사들이 특허를 지키지 못해 제품 매출 수백억이 날아갈 절체절명의 위기의 순간, 법원에서 자사의 특허 도전 실패 소식이 연일 들리는 암울한 순간, 그런 위기의 순간마다 짜릿한 역전승을 일궈낸 주인공들이 있다는 얘기다.

바로 특허 전문 율사(律士)들이다. 법무법인 율촌의 윤초롱 변호사는 그중에서도 한미약품, 종근당 등 대형 제약사들을 대신해 법정에서 위기의 순간에 승부를 뒤집었다. 약사 특유의 전문성을 살려 특허법을 샅샅이 파헤치고, 법원을 설득하기 위해 탄탄한 논리를 폈다. 이제는 끝났다고 여겨진 제품이 윤 변호사의 손을 거치면 되살아났다. 

그렇다면 윤 변호사는 특허 전쟁의 명승부들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 대형 사건에서 역전승을 거뒀던 비결은 뭘까. 본지가 15일 오전 11시, 서울 강남의 율촌 본사에서 이런 질문의 답을 얻기 위해 윤 변호사를 만난 이유다. 윤 변호사의 생생한 목소리를 특집 기획으로 전한다.

15일 윤초롱 변호사가 율촌 본사에서 본지와 인터뷰 중이다.  
15일 윤초롱 변호사가 율촌 본사에서 본지와 인터뷰 중이다.  

2015년, 글로벌 제약사와 김앤장이 한 팀을 꾸렸다. 오리지널사는 한미약품의 '팔팔정'이 화이자의 비아그라 디자인(입체상표권) 특허를 침해했다는 이유로 소송을 제기했고 1심 특허심판원은 한미약품, 2심 특허법원은 오리지널사의 손을 들어줬다. 한미가 대법원에서 패소할 경우 '팔팔정'의 위기가 현실화될 수 있었다. 

마지막 심급인 대법원으로 초미의 시선이 쏠린 이유다. 윤초롱 변호사는 "굉장히 중요한 사건이었다"며 "특허법원(2심)에서 상표권자의 청구가 전부 인용된 채로 사건이 왔기 때문에 지금도 기억에 남아 있다. 상당히 이슈가 됐던 사건이었기 때문에 초반에는 이 사건에만 매달릴 정도로 집중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더구나 비아그라는 세계적으로 등록된 상표"라며 "모든 비아그라가 마름모 모양의 알약으로 팔렸기 때문에 디자인 특허 침해 관련 분쟁이 다른 나라에도 많이 있었다. 우리 사법부의 판단이 나올 경우 다른 국가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건이었다"라고 밝혔다.

이어 "오랜 시간 동안 해외의 디자인 등록 사례 등 사건에 참고가 될만한 모든 것들을 분석해서 우리 쪽에 유리한 자료를 냈다"며 "저희가 자료를 내면 상대방이 바로 응수할 정도로 다툼이 치열했다. 그만큼 중요한 사건이었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2심 법원은 "소비자에게 두 개의 상품을 오인·혼동을 일으킬 염려가 있다면 두 상표는 유사하다고 봐야 한다. 비아그라 형태의 입체상표권 식별력을 인정한다. 비아그라 입체상표와 유사한 형태로 팔팔정을 생산·판매하는 행위는 상표권 침해행위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비아그라 형태의 입체 상표는 지정상품의 형태 등을 보통으로 사용하는 방법으로 표시하는 상표에 불과하므로 상표권 침해가 인정되지 않는다"는 1심 판단을 뒤집은 것이다. 

윤 변호사는 "일반적인 상표 사건은 제품명으로 많이 다투는데 이번에는 특이하게 제품명이 아닌 약 모양이 쟁점이었다"며 "비아그라는 발기부전 치료제로 전문의약품이다. 의사 처방이 필요해서 시중에 깔린 제품도 아니었고 참고할 만한 선례도 적었다. 일반 사건과 큰 틀에서 비슷했지만 양측이 수많은 쟁점을 제기한 이유"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대법원 상고심에서 저희 율촌 주장의 키워드는 '실제 유통 현실'이었다"며 "저희는 어떻게 생산되고 누가 제품을 어떻게 파는지, 어떻게 소비하는지를 주목했다. 특히 유통 과정의 특수성을 살펴서, 두 제품이 유사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점을 논증하기 위해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고 밝혔다.

2심 법원의 시선은 '수요자'로 향했다. 윤 변호사를 포함한 율촌 변호인단은 대법원의 시선을 소비자가 아닌 '의사'와 '약사'로 돌리기 위해 비아그라와 팔팔정의 포장 자체의 특성과 유통 과정을 주목했다. 

윤 변호사는 "두 제품의 겉포장과 속포장이 있는데 속포장에도 팔팔정과 비아그라란 제품명이 있다"며 "겉포장과 속포장이 있기 때문에 의사와 약사의 처방에 의해 구별이 가능하다고 대법원에 주장한 이유다. 의사와 약사가 처방할 때는 소포장 상태로 주고 포장을 까서 알약 형태로 주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했다"고 밝혔다. 

비아그라와 팔팔정의 유통 과정에서 약 모양만으로 의사와 약사들이 혼동을 일으킬 우려가 없다는 논리였다. 최종 소비자인 환자들도 속포장을 통해 두 제품을 구별 가능하기 때문에 혼동이 발생하지 않는다는 것이 율촌 주장이었다. 

결국 율촌은 역전승의 주인공이 됐다. 대법원은 2년여의 심리 끝에 "비아그라에 관한 등록상표와 팔팔정의 형태는 수요자에게 오인과 혼동을 일으킬 우려가 있다고 하기는 어려워 서로 동일 또는 유사하지 않다"고 판단했다. 

이어 "약품 포장 등에도 이름과 상호가 명확히 적혀있고 의사 처방이 필요한 전문의약품인 만큼 일반인이 오인하거나 혼동할 우려가 없다"고 강조했다. 율촌의 주장을 인용한 것이다. 

윤 변호사는 "승소 소식을 들었을 때 짜릿한 기분이 들었다"며 "상고심에서 사건을 뒤집기는 확률상 높지 않다. 2심 법원의 판단을 분석할 때 '과연 이게 될까"하는 생각도 들었던 이유다. 저는 대법원에 제출할 서면 초안을 쓰는 역할을 맡았고 다른 변호사분들과 수차례 회의를 하면서 사건을 준비했다. 판결이 선고됐을 때 수고를 인정받는 것 같았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당시 상표권 침해가 인정됐다면 팔팔정의 모양을 바꿔 다시 생산해서 판매해야 했다"며 "팔팔정은 출시 당시부터 인기가 많았기 때문에 손해배상의 리스크도 있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율촌이 승소한 이후 팔팔정은 지금 이 순간에도 약 모양의 변함없이 발기부전 환자들의 곁을 지키고 있다. 

윤 변호사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윤 변호사는 자렐토 사건에서도 다시 한번 역전승을 거뒀다. 

15일 윤초롱 변호사가 율촌 본사에서 본지와 인터뷰 중이다.  
15일 윤초롱 변호사가 율촌 본사에서 본지와 인터뷰 중이다.  

그는 "자렐토 사건도 기억에 남는 사건 중 하나"라며 "경구용 혈액응고억제제 자렐토(성분명 리바록사반)에 관한 사건에서 종근당을 대리해서 이겼다. 자렐토 사건의 상대도 김앤장이었고 특허 심판원(1심)에서 패소한 상태였다. 당시 특허권 존속기간 연장의 효력 범위가 쟁점이었다"고 밝혔다.

자렐토 사건은 '스키니 라벨'에 관한 특허심판원의 첫 판단 사례였다. 스키니 라벨은 오리지널 의약품의 일부 적응증을 '라벨에서 삭제한' 형태의 의약품이다. 종근당은 오리지널 의약품과 적응증에 차이가 있는 제품에 관해 2020년 물질특허에 대한 소극적 권리 범위 확인 심판을 제기했지만 당시 특허심판원은 오리지널사의 손을 들어줬다.

윤 변호사는 "보통 특허 존속기간은 의약품 허가에 소요된 시간을 이유로 연장받는다"며 "쉽게 설명을 하자면, 오리지널사의 허가 당시 적응증이 1,2,3이었고 나중에 변경허가로 4,5의 적응증을 추가했다. 특허 자체는 물질특허인데 존속기간이 3년 연장됐다고 했을 때 마지막 3년 동안 후발 제약사가 적응증 4,5에 대한 제품을 출시했다"고 밝혔다.

이어 "그것의 특허 침해 여부가 주요 쟁점 중 하나였다"며 "이에 대해서도 선례가 거의 없었다. 판단 사례가 심판 또는 심결 말고 찾기가 힘들었다"고 덧붙였다.

윤 변호사가 꺼낸 전략은 대법원의 솔리페나신 판결의 의미를 분석하는 것이었다. 대법원은 '솔리페나신 사건'에서 '유효성분설'로 입장을 변경했다. 존속기간이 연장된 특허권 효력이 '유효성분설'에 따라 염 변경 의약품에도 미친다는 것이 핵심이다. 

솔리페나신 사건에서는 오리지널사에 유리한 쪽으로 판결이 났지만 판결의 문구 하나하나를 분석하면 자렐토 사건에 적용할 만한 논리들이 많았다"며 "판결 문구를 하나씩 뜯어보면 그래도 종근당의 제품 출시가 특허 침해가 아니라고 볼 수 있는 여지가 많았다. 판결 평석, 치료 가이드라인, 의학 논문 등 여러 자료를 분석해서 법원에 제출했고 결과적으로 이겨서 뿌듯했다"고 밝혔다.

결국 서울중앙지방법원은 종근당에 대한 자렐토 특허권 침해 금지 가처분 사건을 기각했다. 일거에 분위기가 반전됐고 종근당은 제품 판매를 지속할 수 있었다. 또 한 번의 역전승이었다. 

한편, 윤 변호사는 중앙대 약대를 졸업한 이후 서울대 로스쿨을 졸업했다. 약사 출신 변호사로 2013년부터 율촌에서 지적 재산권과 헬스케어 관련 업무를 맡고 있다. 지적 재산권 분야 중에서도 영업비밀, 저작권, 상표 등의 분야에서 활약 중이다. 

윤 변호사는 "어렸을 때부터 건강에 관심이 많았다"며 "제가 아프거나, 가족이 아팠을 때 약을 먹으면 낫는 것이 신기했다. 막연히 '나도 저런 좋은 일을 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약대 재학 시절 제약사 연구소, 병원, 약국에서 일하면 조금은 답답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 변호사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이어 "로스쿨을 졸업한 이후 전문성을 살려야겠다는 생각을 하다가 의약품 특허에 흥미를 느꼈다"며 "제약산업에서 오리지널사들이 막대한 비용을 들어 새로운 의약품을 개발하고, 후발 제약사들이 한참 뒤에야 관련 의약품을 개발하는 근본적인 이유가 특허였다. 약사 전문성을 살리면서도 즐겁게 변호사를 할 수 있을 것 같았다"고 덧붙였다. 

그렇다면 윤 변호사의 비전은 뭘까. 그는 "헬스케어 분야가 분쟁도 많고 특수한 내용도 많다"며 "새로운 종류 사건도 끊임없이 생기는 분야다. 여러 가지 사건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종합적인 시각을 가지고 의견을 줄 수 있다. 다양한 경험을 바탕으로 헬스케어 분야의 특화된 전문가가 되고 싶다는 꿈을 가지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지금 주어진 사건들을 열심히 해야겠지만 새로운 업무로 영역을 넓히고 있다"며 "최근 의료 개인정보, 의료 AI 스타트업 관련 자문을 하는 이유다. 의료 인공지능학회 디지털헬스케어 학회, 보건의료데이터 혁신 포럼과 같은 정부 행사 등에서도 발표를 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다른 사건들에서도 종합적인 시각을 가질 수 있을 것"이라며 "인간의 삶에서 헬스케어는 정말 중요하고 우리나라의 미래가 달린 산업이다. 저의 경험과 노력이 헬스케어 산업 발전에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윤 변호사는 지금 이 순간에도 역전승을 꿈꾸는 율사다. 승부처에서 상대방의 논리를 뒤집을 단서와 논리를 찾기 위해 수많은 자료를 분석하고 숙고를 거듭해 서면을 작성한다. 

그렇다면 윤 변호사 치열한 일상을 살아내는 원동력은 뭘까. 팜뉴스 취재진이 인터뷰 말미에 던진 마지막 질문에 윤 변호사는 이렇게 답했다.  

"헬스케어 또는 특허 영역은 말이 난무하거나 이론적인 것들만 있는것이 아니다. 실제 제품과 기술에 대한 생생한 이야기들이 있다. 실체가 있는 일이란 생각이 들어서 소위 말해 '현타'가 오는 경우가 적다. 사건을 맡으면 연구자 또는 교수님들이 많이 만나는데 이분들은 무에서 유를 만들면서 세상에 기여하고 있다. 이분들을 만나면 새로운 영감을 받고 자극을 받는다. 이런 분들을 도와주는 것은 정말 뜻깊은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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