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과학기술의 발전은 빠른 속도로 이루어지며 믿을 수 없는 결과물들을 산출해낸다. 이제 과학기술은 인간 삶의 모든 측면을 지배할 것만 같다. 그렇다면 인간의 정신까지도 지배할 것인가?

전통적으로 인간 내면의 믿음에 관한 것은 종교의 영역으로 간주되어왔다. 그렇다면 이제 과학과 종교는 양립 불가능한 것인가? 아니면 그 어떤 대화가 가능한가?

첨단 과학기술 문명 속에서도 다른 한편으로 전통적인 종교의 역할과 기능이 여전히 작동하고 있는 이 시대에, 이는 매우 중요하고도 의미 있는 질문이 될 것이다.

이러한 문제의식 속에 필자는 세계 가톨릭교회의 수장인 교황 요한바오로 2세(재위 1978-2005)의 1987년 ‘과학과 종교의 관계에 대한 메시지’를 소개하고자 한다(참조: '과학과 종교: 두 세계의 대화', 로버트 존 러셀 엮음, 박준양/전양환 옮김, 가톨릭대학교출판부, 2023).

이 메시지는 과학과 종교 간의 실질적이고 건설적인 관계에 초점을 맞춘 전례 없는 성명서라는 점에서 중요하다. 이 메시지에서, 교황은 종교 공동체와 과학 공동체 간의 ‘통합적 일치’를 향한 새로운 운동이 필요함을 제시한다.

미국 버클리(Berkeley)의 캘리포니아대학교 교수인 로버트 존 러셀(Robert John Russell)은 이 메시지에 대해서, 인간 체험과 역사 한 가운데서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들, 그리고 자연의 신비 안에서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들 간의 분열을 극복하고자 하는 움직임이라고 평가한다.

과학과 종교 간 대화와 일치를 통해서 우리 모두는 계속 앞으로 나아가며 함께 배우고 인류를 위해 봉사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한 일치는 일방적 주장이 아니라 개방성에, 그리고 지배가 아니라 사랑과 겸손함에 근거한 결합이라고 존 러셀은 강조한다.

다음은 요한바오로 2세의 메시지를 필자가 요약한 것이다. 지면의 한계로, 구체적인 각론 부분은 제외하고 전체적인 전망을 요약 제시한다.

오늘날의 과학은 전체로서의 우주, 그리고 우주의 생물과 무생물적 구성 요소들을 만들어내는 복잡한 과정과 구조의 풍부한 다양성에 대한 이해와 평가를 제공한다. 이러한 지식은 예전에는 상상할 수도 없던 방식으로 우리가 소통하고, 건설하고, 치료하고, 조사할 수 있는 능력을 제공한다.

그러한 지식의 힘은 우리의 삶을 크게 강화하고 개선하기 위해 사용되지만, 동시에 인간 생명과 환경을 약화시키고 파괴하는 데에 부당하게 이용될 수도 있다. 과학은 그 개념과 결론들이 더 넓은 인류 문화 그리고 궁극적 의미와 가치에 대한 관심으로 통합되었을 때 가장 발달함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이제 과학과 종교의 대화에로 의미 있는 방향 전환을 해야만 한다. 우리는 이전보다 더 깊이 있는 수준에서 과학과 종교 간 대화를 이미 시작했고, 서로의 전망에 대해 더욱 큰 개방성을 지니게 되었다.

우리는 서로의 분야에 대한 보다 철저한 이해를 추구하기 시작했고, 특히 공통 기반의 영역에 대해 탐구하기 시작했다. 이로써 과학과 종교 둘 모두에 관련된 중요한 문제들, 특히 과학과 종교 모두가 봉사하는 더 큰 인류 공동체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주요 문제들을 밝혀내고 있다.

이처럼 비판적 개방성과 상호 교환에 근거한 대화에서, 종교와 과학은 각자의 자율성과 고유성을 지켜야 한다. 종교는 과학에 근거하지 않으며, 과학은 종교의 연장이 아니다. 각각은 자신의 원리, 절차 양식, 해석의 다양성 그리고 자신만의 결론을 지녀야 한다.

과학과 종교는 각기 공동의 인류 문화에 대한 고유한 차원으로서 서로를 지지할 수 있고 또 그래야만 하지만, 각각이 서로에 대해 필요한 전제를 형성한다는 가정을 하지 말아야 한다. 이는 각 학문 분야가 자신의 온전함을 유지하면서도, 다른 학문의 발견과 통찰에 근본적으로 개방적이 되는, 공동의 상호 작용적 관계를 지향한다.

문명화의 과정과 세계 자체에 종교와 과학이 영향을 미쳐왔고 또 계속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사실은 분명하다. 사실 서로에게 제공할 수 있는 것이 매우 많다. 이러한 전망은 더 큰 인류 공동체 안으로 그 어떤 깊은 경외감을 수반한다.

그 경외감이란, 우리가 우주에서 보고 있는 아주 약한(fragile) 선함, 아름다움, 그리고 생명이 소멸과 죽음의 힘에 의해 압도되지 않을 완성과 충만함을 향해 움직이고 있다는 희망적인 확신이다.

과학과 종교 간 대화와 공동의 연구가 지속되면서 서로 간의 이해를 향한 성장, 그리고 공동의 관심사에 대한 점진적인 발견이 이루어질 것이다. 그것은 더 많은 연구와 토론을 위한 토대를 제공한다.

그것이 정확히 어떤 형태로 이루어질 것인지는 미래에 맡겨진 일이다. 중요한 점은 그 대화가 깊이를 더하면서도 더욱 광범위하게 지속적인 성장을 해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 과정 중에 우리는 일방적인 환원주의, 두려움, 스스로 자초하는 고립 등으로의 모든 퇴행적 경향을 극복해야만 한다.

각 학문 분야는 다른 학문 분야를 지속적으로 풍요롭게 하고 성장하게 하며 또 거기에 도전하여서 그 학문이 더욱 더 자신의 학문답도록 하고, 또 자신이 누구인지, 그리고 어떤 존재로 나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우리의 전망에 기여하도록 해야 한다.

우리는 이처럼 중대한 작업을 위해 준비되어 있는가? 교회를 포함한 세계 종교 공동체는 과학 공동체와의 더욱 철저한 대화, 종교와 과학 양쪽 모두의 온전함이 지지되면서도 각각의 발전이 조성되는 그러한 대화에 들어갈 준비가 되어 있는가?

생산적이면서도 아름다운 문화 건설을 위해 우리 모두 함께 일하면서 과학 공동체는 그리스도교에, 그리고 모든 위대한 세계 종교들에 자신을 개방할 준비가 되어있는가? 이러한 과제가 요구하는 정직함과 용기를 향해 나아갈 수 있는가?

과학과 종교 양쪽 모두 인류 문화의 통합에 기여할 것인지 아니면 분열에 일조를 할 것인지, 우리 각자는 스스로에게 질문해야만 할 것이다.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이 시각 추천뉴스
랭킹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