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팜뉴스=최선재 기자]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누구든지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는 유명한 성경 구절이다. 교만할수록 낮아지고 겸손할수록 높아진다는 진리를 담았기 때문에 곳곳에서 회자하는 마태복음 말씀이다. 

갑자기 성경 말씀을 꺼낸 이유가 있다. 업계의 새로운 패러다임인 '오픈이노베이션(개방형 혁신)'을 설명할 때 앞서의 구절만큼 본질을 꿰뚫는 말이 없기 때문이다.   

제약사들이 스스로를 높이려고 비밀의 장벽을 쌓을수록 신약 개발은 멀어진다. 스스로를 낮추고 개방의 문을 열수록 신약 개발은 가까워진다. 나홀로 자존심을 세우는 제약사는 결코 신약을 만들어낼 수 없는 시대다. 글로벌 빅파마들이 너도나도 오픈 이노베이션을 외치는 이유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어떨까. 국내에서도 오픈 이노베이션의 '정답'이라고 불릴만한 사례가 있을까. 대웅제약 박준석 신약센터장이 14일 열린 "2023 오픈 이노베이션 플라자(한국제약바이오협회 주최)"에서 모범 답안을 공개했다.

# 2014년 녹십자와 거래 협상 시작

대웅제약은 조인트 벤처, 사내 밴처, 기술 수출, 제약사 간 협업 등 오픈 이노베이션을 굉장히 다양한 형태로 진행했다. 오픈 이노베이션 생태계를 활성화하기 위해서 엔블로의 사례에 대해 말씀드리겠다. 

엔블로의 후보물질을 개발한 곳은 GC녹십자다. 2014년 6월, 저희가 녹십자와 계약을 추진했고 2016년 5월 최종 완료됐다.

대형 제약사 간의 오픈 이노베이션은 처음이었다. 물론 동아제약과 유한양행의 당뇨병 치료제 연구협력은 있었는데 신약 후보 물질 거래 같은 빅딜은 사례가 없었다. 신중을 기하면서 2년이 흘렀다. 

결국 저희는 2014년 녹십자와 후보물질 이전 계약을 시작했을 때 목표했던 신약 개발 성공을 이뤘고, 그때의 두려움과 불확실성을 7년 만에 확실하게 해결했다.

# 1000억 판권 바람 맞았다

그렇다면 녹십자와의 거래가 어떻게 성사됐을까. 녹십자의 R&D 비즈니스는 혈액제제, 백신, 바이오 신약이었다. 

당시 녹십자는 합성신약도 열심히 개발했다. 익히 알려진 것처럼 바이오텍, 암젠, 제넨텍도 녹십자처럼 바이오 신약 중심으로 시작해서 중간에 합성신약 연구로 글로벌 제약사가 됐다. 이런 가정이 틀릴 수 있지만 녹십자도 그런 꿈을 꾸었을 것이다.

물론, 녹십자가 잘하는 분야에 집중하기 위해 개발했던 후보 물질을 양도했을 수도 있다. 

반면 저희 상황은 심각했다. 당시 내분비 질환 영업 마케팅을 잘했고 시장 점유율도 높았지만 규모에 비해 R&D 파워가 굉장히 약하다는 평을 들었다. 여기에 DPP-4 억제제인 자누비아 코마케팅을 통해 1000억 매출을 올렸는데 판권을 바람 맞는 결정적인 사건이 일어났다. 

# 자체 신약 개발 절실, 오픈 이노베이션 필요

회사 입장에서는 1000억원이 날라가는 상황이었고 굉장히 자존심이 상했다. 자체 개발 신약이 필요하다고 결심한 계기다. 신약 개발 니즈가 컸고 내분비계통 시장 점유율과 영업 마케팅 영역의 강점을 유지하고 싶었다. 

이뿐만이 아니다. 그때는 엔블로와 같은 SGLT2 약물은 인기가 전혀 없었다. 하지만 자체 연구가 녹십자의 후보 물질에 대해 많은 연구를 진행한 결과 해당 물질의 잠재력을 발견할 수 있었다.

결국 기나긴 협상을 마무리짓고 연구 개발에 집중한 결과 지난해 말 엔블로가 탄생했다. 굉장히 많은 병원이 엔블로를 처방하고 수출도 많이 하는 상황이다. 녹십자와의 오픈 이노베이션을 통한 초기 협력이 중요했다.

# 키 포인트는? "믿음과 신뢰"  

시계를 되돌려보면 "왜 2년이나 협상을 했을까"하는 안타까움과 아쉬움이 남는다. 엔블로가 결국 성공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과거로 되돌아가도 자신이 없었을 것이다. 국내 어느 제약사가 오픈 이노베이션 계약서에 도장을 자신 있게 찍을 수 있는 곳이 있을까. 그런 결정을 편하게 하도록 환경이 만들어지기도 쉽지 않다. 

다만 분명한 사실은 자신감이 중요하다는 점이다. 그 자신감의 원천은 결국은 파트너사, 자사의 연구진, 직원들의 신뢰와 믿음이다. 믿음과 신뢰가 모이고 쌓이면, 오픈 이노베이션 기회가 신약 개발의 성공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엔블로 사례가 또 다른 오픈 이노베이션 성공을 만드는 기폭제가 되길 바란다. 저희도 제2의 엔블로를 만들어야 하는 부담이 있지만 이번 성공 사례를 밑바탕으로 포기하지 않고 노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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