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성은아 박사
사진. 성은아 박사

우울증 신약 스프라바토와 오벨리티는 지금까지 나왔던 약물과 많이 다르다. 작용 기전이 다르고, 속효성으로 작용한다는 점이 다르다. 스프라바토는 기존의 약물을 투여해도 우울증이 완화되지 않는 환자와 자살 충동이 있는 우울증 환자에게 적용하도록 승인을 받았다. 오벨리티도 기존의 우울증 약물에 효과를 보이지 않는 환자에게 적용할 수 있는 약물이다. 

대부분의 우울증 약물은 모노아민 신경계에 작용하는 약물이다. 모노아민은 신경전달물질 중에서도 세로토닌, 노르에피네프린, 도파민들을 묶어서 말한다. 뇌에서 모노아민이 부족하여 모노아민 신경의 소통이 원활하지 않게 되고 신경회로에 불균형이 생겨서 우울증이 발병한다는 모노아민 가설에 기초하여 20 세기 중반부터 우울증 약물들이 개발되었다. 이전에는 우울증을 약물로 치료한다는 개념조차 없었다가 항우울제들이 나오면서 이 질병에 대한 인식이나 치료의 개념도 달라졌다. 

하지만 경험적으로 나온 모노아민 가설이 완전하지는 않아서, 우울증이 어떻게 발병하고 진행되는가를 충분히 설명하지 못한다. 환자들이 적극적으로 약물 치료를 하게 되면서 항우울제의 사용이 늘어났지만 약물로도 증상이 완화되지 않는 환자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 우울증 치료에서 플라시보의 효과가 높다 보니 심지어는 모노아민을 조절하는 약물들이 정말 우울증에 효과를 나타내는가에 대한 논란까지 나왔다. 그래서 약물의 효과에 대하여 광범위하게 분석이 이루어지고 대규모의 임상시험이 재차 수행되었다. 결론부터 말하면, 우울증 약물은 분명히 실제적인 효과가 있지만, 우울증의 발병 과정이 복잡하고 다양하여 모노아민을 조절하는 약물로 증상을 완화시키지 못하는 환자들도 꽤 있다. 

환자는 보통 세로토닌 신경에 작용하는 약물을 처음 시도한다. 우울증 환자의 절반 정도가 1차 약물에 효과를 나타낸다. 환자가 1차 약물 치료에서 효과를 보지 못하면, 다른 종류의 약물로 바꾸어 투여를 한다. 하지만 순차적으로 종류를 바꾸어도 환자 3 명 중의 한 명은 기존의 우울증 약물로 증상을 완화시키지 못한다. 우울증 약물에 반응하지 않는 환자들의 치료를 위해서 모노아민 신경이 아닌 다른 종류의 신경에 관심을 돌리게 되었다.

사진. 게티이미지
사진. 게티이미지

우울증 약물은 더디게 효과를 나타난다. 환자가 항우울제를 투여해도 당장 효과가 드러나지 않고 평균 6-8 주 동안 약물을 계속 복용을 해야 비로소 증상 완화가 시작된다. 약물이 체내에 들어간 다음 1차적인 타겟, 즉 모노아민의 양을 조절하는 단백질에 작용하는 시간은 얼마 걸리지 않는다. 그런데 왜 환자가 효과를 느낄 때까지 여러 주의 시간이 필요힌가? 뇌에서 모노아민의 양이 변하여 즉각적인 항우울 효과를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모노아민 신경이 지속적으로 자극된 결과 신경 회로에 2차적인 변화가 생기고, 이로 인하여 항우울 효과가 나타난다고 보고 있다. 약물을 투여했을 때에 신경에 2차적인 변화가 유도되는 것을 신경의 가소성이라고 한다. 환자의 입장에서는 약물이 좀더 직접적으로 작용해서 우울증이 즉시 완화되기를 바란다.  

스프라바토와 오벨리티를 기존의 약물과 차별화하여 사용하는 근거는 이들이 기존의 약물들이 작용하는 신경회로와 다른 경로에 작용하기 때문이다. 스프라바토는 2019 년에 항우울제로 승인을 받았다. 스프라바토는 모노아민 신경회로가 아니라 다른 종류의 신경회로를 통해 작용하는 최초의 우울증 약물이다. 이 약물은 ‘글루타민’을 신경전달물질로 사용하는 신경회로에 작용을 한다. 뒤를 이어 2022 년에 승인을 받은 오벨리티도 역시 글루타민 신경회로에 작용한다. 

스프라바토의 주성분은 케타민이다. 케타민은 1970 년대에 마취제로 허가를 받았으며, 향정신성 작용 때문에 마약류로 지정되어 규제를 받는 약물이다. 케타민이 마취제로 승인을 받은 시기는 월남전이 한참이던 때와 맞물린다. 케타민은 전쟁에서 부상을 당한 군인들의 응급 처치를 위해서 마취제로 사용되었고 빠른 진정 작용을 유도하도록 투여되기도 했다. 일반 병원에서도 케타민은 응급 환자나 자살 시도를 한 환자들에 대하여 마취와 진정의 목적으로 투여되었다. 이런 사례들이 축적되면서 임상시험이 수행되었고 항우울제로 개발이 되었다.

케타민은 투여 후 한두 시간 내에 효과를 나타내기 시작하며, 한 번 또는 수 차례만 투여해도 효과가 있고, 그 효과는 여러 날에서 여러 주 동안 지속된다. 기존의 우울증 약물에 효과를 나타내지 않는 환자의 절반 정도가 케타민에 반응하여 효과를 나타낸다고 알려져 있다. 자살 시도를 했거나 계속해서 자살 충동을 느끼는 사람들의 증상도 짧은 시간 안에 누그러뜨린다. 잘 알려진 대로 케타민은 환각 작용을 나타내지만, 항우울증 작용은 이와 별개이다. 약물 투여 후에 환각 작용이 신속하게 나타났다가 가라 앉지만, 항우울 효과는 그보다 늦게 발현하고 지속적이다. 스프라바토는 비강에 분무하여 투여하는 제형으로 항우울제의 허가를 받았으며, 주사제로 투여하는 경우도 있다. 심혈관계나 신장에 대한 부작용과 오남용의 우려 때문에 병원에서 관찰을 하면서 투여하며, 여러 주 이상 연속 투여하지 못한다. 치료를 위해 장기간 투여를 하는 약물이 아니라, 단기간의 효과를 목표로 사용하는 약물이라고 보아야 한다. 

신경은 활동량에 따라 적응을 하는 가변적인 성질, 즉 가소성을 가진다. 신경과 신경이 서로 소통을 많이 하면 회로가 강화된다. 신경이 접촉하는 부위는 특히 유동적이어서 소통량에 따라 접촉이 강화되거나 무디어진다. 항우울제는 신경이 서로 접촉하는 부위에 가시적인 변화를 유도하는데, 이 변화가 신경 간의 소통을 조절하는 기초를 이룬다. 케타민은 어느 우울증 약물보다 짧은 시간 안에 가소성을 유도한다. 케타민 투여로 환자의 신경의 성질에 변화가 생기면, 환자는 이전에 반응하지 않던 다른 항우울제에 대한 감수성을 획득할 수도 있을 것이다. 케타민을 단기간 투여하여 치료가 힘들었던 환자로 하여금 다른 항우울제나 심리치료로 전환하도록 유도하고 준비시키는 목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 

오벨리티는 케타민과 유사한 방식으로 작용하면서도 부작용과 오남용의 우려가 훨씬 적으며 경구 투여가 가능하다. 오벨리티는 덱스트로메토르판과 부프로피온의 혼합제이다. 주 성분은 덱스트로메토르판이다. 덱스트로메토르판은 감기약의 성분으로, 기침을 억제하는 진해제로 오랫동안 사용되어 왔다. 덱스트로메토르판이 진해제로 시판된 후 약물의 진정 효과에 대하여 입소문이 났다. 처방이 필요하지 않아서 쉽고 저렴하게 구매 가능하여 청소년들이 오남용을 하는 사례들이 많다. 덱스트로메토르판이 글루타민 신경계에 작용하고 진정효과를 나타낸다는 점을 이용해서 항우울제로 개발되었다. 체내에서 덱스트로메토르판이 대사되는 속도가 아주 빠르지만, 부프로피온이 이에 대한 대사를 억제한다. 부프로피온 자체가 항우울제이다. 두 약물이 항우울 효과에 대하여 서로 시너지를 일으키는가는 입증되지 않았다.

오벨리티도 스프라바토와 마찬가지로 기존의 항우울제가 듣지 않는 환자에게 투여했을 때에 효과를 나타내며, 속효성으로 작용한다. 스프라바토와 달리, 오벨리티는 특별히 자살 충동을 가진 환자에게 투여하도록 허가를 받지 않았다. 덱스트로메토르판을 투여받은 환자의 자살 충동이 진정된 사례가 보고되어 있지만, 이에 대하여는 추가 검증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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