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성은아 박사
사진. 성은아 박사

지금 사용되는 주요 항우울제들 다수는 1990년을 전후로 승인을 받은 약물들이다. 지난 30년 동안 이렇다 할 신약이 거의 나오지 않다가 긴 가뭄을 끝내고 최근 몇 년 사이에 몇 가지 항우울제들이 승인을 받았다. 그 중에서도 올해(2023년) 9월에 FDA 승인을 받은 엑수아(성분명: 게피론)는 우울증 약물의 대명사로 알려진 프로작에서 진일보를 이룬 약물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우울은 건강한 감정 표현의 일부이지만 우울증은 치료가 필요한 병이다. 치료를 위해 항우울제를 투여하는 근거는 우울증이 뇌의 신경계에서 작용하는 화합물의 양적 불균형 때문에 생긴다는 가정에 기초를 둔다. 우울은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감정이다.

여기에 더하여, 개인의 성격과 성향, 가족 관계, 문화와 사회적 가치관이 우울증이 발병하는 과정이나 우울증이라고 인지하는 과정에 복합적으로 개입한다. 화합물의 불균형 때문에 우울증이 생긴다는 가정은 복잡한 정신 작용을 설명하기에 과도하게 단편적으로 보인다.

지극히 유물론적 가치관이라는 부정적인 시각 때문에 약물 사용을 꺼리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뇌신경계에 존재하는 화합물의 불균형을 잡아주는 약물들이 우울증을 개선하는 효과를 나타낸다고 임상적으로 알려져 있으니, 이 가정은 여전히 유효하다. 

여기서 화합물이란 신경전달물질을 말한다. 몇 가지 화합물들이 신경과 신경 사이의 소통을 매개하는 메신저 역할을 한다. 신경전달물질 중에서도 특히 세로토닌, 노르에피네프린, 도파민의 불균형이 우울증의 발현과 관련이 있다고 알려져 있다.

이들이 구조적으로나 기능적으로 공통점을 가지고 있어서 '모노아민(화합물의 구조 중에 아민 그룹이 한 개 있다는 뜻)'이라고 묶어서 부른다. 모노아민을 메신저로 사용하는 신경이 모노아민 신경이다.

'모노아민 가설'에 따르면, 뇌에서 모노아민이 부족하여 모노아민 신경 간의 소통이 원활하지 않게 되고 신경의 회로에 오류가 생겨서 우울증이 발병한다. 현재 사용하는 대부분의 우울증 약물은 이 가설에 근거해서 개발되었으며, 모노아민 신경계에 작용하는 약물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많은 화합물이 합성되고 약물이 개발되었다. 약물을 여러 가지 질병에 사용하던 과정에서 얻은 경험과 관찰이 축적되어 모노아민 가설이 나오고, 이 관찰에 근거하여 우울증 약물들이 개발되었다.

예를 들면 요즘은 별로 사용하지 않는 종류의 고혈압 약이 환자의 우울증을 심화하는 부작용을 나타내거나, 결핵약을 투여 받은 환자에게서 의도하지 않게 우울증도 개선되었다는 보고들이 나왔다. 이들 약물들이 뇌의 모노아민 신경에 작용하는 약물들이었기 때문에, 우울증이 모노아민 신경의 불균형과 관련이 있다는 가설이 나왔다.

게다가 항히스타민제의 부작용으로 진정작용이 나타나는데, 이를 역이용해서 화합물을 구조 변형하여 모노아민 신경계에 작용하도록 만들었더니 항우울 작용을 나타냈다. 

대부분의 항우울제들은 모노아민의 양을 증가시켜서 우울증을 완화하는 효과를 나타낸다. 우울증 약물에는 SSRI, 삼환계 약물, MAO 억제제 등 작용 방식에 따라 여러 종류가 있지만, 이들은 모두 결과적으로 신경계에서 모노아민의 양을 증가시킨다.

사진. 게티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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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승인을 받은 프로작 (성분명 플루옥세틴)은 우울증의 관리에서 정신분석 이론으로 유명한 프로이드에 필적하는 영향력을 미쳤다고 보아도 될 정도이다. 엘라이릴리가 개발한 이 약물은 SSRI (Selective Serotonin Reuptake Inhibitor, 선택적 세로토닌 재흡수 억제제)라는 단어를 생활용어로 자리잡게 할 만큼 상업적인 성공을 거두었다.

SSRI라는 단어는 신경계에서 세로토닌이 제거되지 못하게 하여 세로토닌을 증가시키는 약물이라는 의미를 가진다. 프로작 외에도 파록세틴(상표명: 팍실), 시탈로프람(상표명: 셀렉사) 등 다수의 약물이 유사한 방식으로 작용하여 세로토닌의 양을 증가시킨다.

세로토닌을 증가시키는 약물이 좋은 약효를 나타내고 비교적 부작용을 적게 일으키기 때문에 약물 치료를 할 때에 가장 먼저 사용된다. 문제는 대략 절반 좀 넘는 환자들에서만 이 약물이 효과를 나타낸다는 점이다. 환자가 약물에 반응하지는 않으면 다른 종류의 우울증 약물을 순차적으로 시도한다.

세로토닌과 노르에피네프린을 증가시키는 약물(벤라팍신, 상표명: 이펙사), 노르에피네프린과 도파민을 증가시키는 약물(부프로피온, 상표명: 웰부트린), 노르에피네프린을 증가시키는 약물(이미프라민, 레복세틴), 모노아민 모두를 증가시키는 약물 등이 있다. 

하지만 우울증 환자 3명 중의 한 명은 기존의 어떤 약물을 투여해도 증상의 개선을 보이지 않는다. 약물에 쉽게 반응하지 않는 환자일수록 치료 후에 재발하는 비율도 높다. 그래서 다른 기전으로 작용하는 약물이 개발될 필요가 있다.

비교적 최근에 개발된 빌라조돈 (2011년 승인)과 보티옥세틴(2013년 승인)은 모노아민을 증가시키는 동시에 신경의 활성을 직접 조절하여 약효를 나타낸다. 올해(2023년)에 승인을 받은 엑수아는 신경전달물질의 양을 증가시키지 않고 세로토닌 신경의 활성만을 직접 조절하는 최초의 약물이다.

엑수아는 세로토닌 수용체를 자극해서 세로토닌 신경의 활성을 직접 조절하기 때문에 세로토닌의 양을 단순히 증가시키는 약물에 비하여 효율성의 면에서 차이가 있으리라고 기대한다. 기존의 우울증 약물로 증상이 개선되지 않는 환자들에게 약물 선택의 폭이 넓어진다.

또한 엑수아는 다양한 종류의 세로토닌 수용체 중에서 특정 종류 (5HT1A 형 수용체)에 집중 작용하는 약물이기 때문에 세로토닌 신경 중에서도 필요한 신경만을 활성화한다. 기존의 우울증 약물과 비교해서 부작용이 적으리라고 기대되며, 실제로 체중 증가나 성기능 장애 등의 부작용을 보이지 않는다고 보고되었다.  

엑수아는 신약이지만 새로운 약물은 아니다. 2002년 신약 허가를 받으려고 FDA에 신청을 했으나 실패한 이후 재신청과 재심사를 반복한 끝에 금년에 허가를 받았으니, 심사와 허가에만 20 년 이상 걸렸다. 그 사이 약물의 소유권은 여러 회사를 옮겨 다녔다.

심사에서 계속 문제가 되었던 이유는, 임상시험에서 엑수아의 효과가 일관적이지 못했던 탓이다. 주요 임상시험에서 유효성을 보이고, 임상시험의 질적 수준도 높다고 평가를 받았음에도, 일부 임상시험에서 약물의 효과가 플라시보와 비교해서 두드러지지 않아서 승인의 발목이 잡혔다.

엑수아의 승인 과정은 우울증 약물 개발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보여 준다. 우울증 약물의 임상시험에서는 플라시보 효과가 높다고 알려져 있다. 임상시험에 참가하는 행위 자체가 우울증 환자의 입장에서 사회적 관계를 확대하는 기회로 작용하며, 동기 부여와 삶의 목표를 제공하여 일종의 심리 치료의 효과를 나타낸다는 말이 있을 정도이다.

엑수아는 결국 5000명 이상의 환자에게 임상시험을 하고 나서야 허가를 받았다.

우울증에 사용하도록 최근 승인을 받은 약물 중에 브레일라(성분명: 카리프라진)도 있다. 조현병과 양극성 장애에 사용되는 약물인데 2022년에 우울증에 사용하도록 적응증이 확대되었다. 역시 모노아민 신경계에 작용하는 약물로서 다양한 종류의 모노아민 수용체를 자극한다.

우울증에 단독으로 투여하는 약물이 아니라 보조 약물이다. 환자가 우울증약을 투여 받아도 증상 개선을 보이지 않을 때에 다른 종류의 우울증약으로 바꾸어 시도할 필요 없이 기존의 약을 계속 투여하면서 브레일라를 부가적으로 투여하여 우울증의 증상 개선을 도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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