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전북대학교 약학대학 정재훈 교수 (현.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 전문교육원장) 
사진. 전북대학교 약학대학 정재훈 교수 (현.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 전문교육원장) 

“유명 배우 OOO 씨, 마약 투약 의혹…”이라는 기사가 우리를 우울하게 만드는 아침이다. 우리 사회에서 겉으로 보기에는 부족한 것이 없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이 ‘마약중독’이라는 늪에 빠져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다. 

사람의 의지만으로 죽음의 늪에서 빠져나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마약의 실상을 모르는 사람들은 이 상황을 이해할 수 없다. 여러 차례 강조하였지만 ‘마약중독’은 신경생물·화학적 병변이 있는 만성질환이다. 로봇에 비유하자면, 입력-통합-반응의 알고리즘과 회로가 망가진 상태이다. 

겉이 멀쩡하고 통상적 행동도 다르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데, 감시의 눈길이 없는 곳에서 결정적 이상 반응이 나타난다. 정상화하려면 망가진 부분을 고쳐야 한다. 마약중독이 저절로 좋아질 수 없고 치료 과정에도 재발이 빈번하다. 

재발(relapse)은 회복의 한 과정일 수 있는데, 재발 시 약물 복용이 증가하고 과다 복용은 불편한 독성을 넘어 생명을 위협하는 수준에 이를 수 있다. 

미국의 NIDA는 “Can addiction be treated successfully?”라는 질문에 예, “중독은 치료가 가능한 장애로서, 중독자들도 중독 과학에 기반한 치료 기술을 통하여 약물 사용을 중단하고 정상적 삶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답하였다. 

과학적으로 보면 마약중독 치료의 첫 번째 옵션이 약물치료여야 하는데, 현재까지 좋은 치료제도 부족하거니와 개발 노력도 미흡한 상황이다. 

여전히 우리 사회는 적극적 치료보다 중독자들의 초인적인 노력을 기대하고 있다. 지난 칼럼에 이어 ‘마약중독 치료제’에 관한 과학자들의 의견을 전하고자 한다.

사진. 게티이미지
사진. 게티이미지

시납스 가소성 회복을 통한 중독 치료 

약물중독은 3단계 즉, 소비/폭식/중독→금단→갈망의 단계 주기로 이어지는데, 그 핵심 회로는 보상 경로라고도 불리는 중변연계(mesolimbic) 경로이다. 

다양한 기작을 통해 남용약물(마약)은 초기에 VTA-NAc(복부피개영역-측좌해) 회로의 도파민성 신경에서 도파민 방출을 증가시키고 도파민 자극이 보상과 다행감의 1단계를 유도한다. 

2단계 금단에서 시상하부와 뇌간, 전두엽 피질, 피질부편도체의 변형이 일어나고 3단계 갈망에서 선조체와 해마, 기저측편도체, 피질 전역의 변형이 일어난다. 

특히, 남용 약물은 위 신경회로에서 시냅스 가소성을 변경시켜서 장기적인 정신-행동 변화를 일으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례로 위 회로에서 신경흐름을 억제하는 GABA 신경의 전달을 조정하여 코카인의 보상과 강화 효과, 갈망을 줄일 수 있음이 동물실험에서 확인되었고, 바클로펜이 코카인 중독의 치료에 오프라벨로 사용되고 있다. 

어떻든, 가소성의 조정을 통해 중독 증상을 완화할 수 있고 가소성 변이에 관여하는 분자들이 중독 치료의 표적이 될 수 있다.

유전체와 전사 조절을 통한 중독 치료

남용약물이 유전자 발현의 변형을 유발하고 그 결과 약물중독이 지속되는 악순환에 빠진다. 유전자 조작 기술과 유전자 발현 분석, 약물중독-발현 간 기작 분석 등을 통해 약물중독과 특정 유전자 변형 간의 메커니즘이 확인되고 있다. 

일례로, 유전자 조작 기술을 응용하여 선조체에서 도파민 수용체 반응을 전달하는 GPRIN3가 코카인 유발 행동의 키 조절자임을 확인하였고 이를 조절하면 코카인 중독 증상을 완화할 수 있음도 알게 되었다. 

또한, Maged1의 발현을 약화시키면 코카인 중독 반응을 줄일 수 있고, Maged1의 비활성화는 약물 유발 도파민 방출과 글루타메이트성 시냅스 가소성을 손상시킨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즉, 유전자 조절-시납스가소성 변화-중독반응 변화 간의 기작을 알게 되었다. DNA 자체의 돌연변이 없이도 유기체의 수명 주기 전반에 걸쳐 환경적 자극 등에 의해 유전자 발현의 변형이 일어나는데, 이 유전자 발현의 변형은 단기적 또는 세대를 거쳐 유전되기 때문에 '후생적(후성유전적)'이라고 한다. 

일부 후성유전학적 변화가 약물중독 감수성과 약물에 의한 뇌신경 변화를 매개할 수 있다. 약물에 중독되면 측좌핵에서 히스톤 아세틸화가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아세틸화 효소와 탈아세틸화 효소의 균형이 깨진 결과이며 이를 약물로 조정하면 중독 반응이 조정됨을 확인하였다. 이와 유사한 발견들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이러한 시냅스 가소성과 후성유전학적 기작에 관한 발견들에 기초하여 Université Libre de Bruxelles의 Alban de Kerchove d’Exaerde 박사는 GluA2가 결여된 AMPA-수용체 길항제와 mGluR1 양성 조정제, N-아세틸시스테인, 탈아세틸화효소 억제제 등이 우선적으로 약물중독의 치료에 유효할 수 있음을 제시하고 있다. 

아울러, 연구개발 투자의 부족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 주요인으로 시장성·구매력과 함께 마약중독에 대한 사회의 인식을 지적하고 있다.

 미국에서도 일반 대중이 마약중독자를 ‘나약하고, 부도덕하고, 타락한 사람’으로 간주하며, 애써 마약중독을 사회적 문제가 아닌 개인의 문제로 치부하려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사회 인식은 치료제 개발을 위한 연구개발 투자의 큰 장애 요소이다.

미국에서 암으로 인한 연간 사망자는 약 60만 명인데, 마약류 과다 복용으로 인한 사망자는 10만여 명이다. 물론 마약중독에 따른 2차 질환은 포함되지 않은 수치이다. 

최소로 잡아도 암 사망자의 6분의 1 가량이 마약류 중독으로 사망하고 있다. 그런데 중독치료제 개발에 투자하는 비용은 항암제 개발비의 0.3%에 불과하다. 우리 곁에 좋은 마약중독 치료제가 없는 주된 요인이다. 과학은 있어도 돈이 없는 것이다.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이 시각 추천뉴스
랭킹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