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성은아 박사
사진. 성은아 박사

산후우울증 약물 두 종이 나왔다. 브렉사놀론(상표명: 줄레쏘)이 2019년에 허가를 받았고, 경구 투여가 가능한 주라놀론(상표명: 주루주베)이 올해 허가를 받았다. 이들은 최초로 허가 받은 산후우울증 약물들이며, 산후우울증 외의 다른 우울증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산후우울증은 출산과 직접 관련되어 발병하는 우울증이다. 출산 후에 대부분의 산모는 불안과 우울, 무기력을 일시적으로 느끼지만, 5~10명 중의 한 명은 강도 높은 증상이 장기간 지속되는 우울증을 경험한다.

몇 가지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에서 산후우울증의 발병이 높은 편이다. 출산을 전후하여 체내에서 여러 가지 호르몬의 양이 급변하면서 산후우울증이 발병한다.

평소에 우울증의 성향을 가지고 있던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산후우울증에 걸릴 가능성이 높고, 한 번 산후우울증을 경험하면 다음 출산에서 걸릴 가능성이 더 높아진다.

임신과 출산은 육체적으로나 심리적으로 격렬한 변화를 겪는 과정이다. 사회 경제적 요인들과 함께 수면 부족, 출산과 관련된 인간 관계에 대한 기대와 실망, 책임감과 부담도 산후우울증의 발병에 기여하는 변수들이다. 

올 여름에 산후우울증과 관련된 사건 하나가 국제적으로 화제가 되었다.

캐슬린 폴빅이라는 호주의 여자가 4명의 자녀를 살해한 혐의로 장기 복역하다가 무죄로 석방되었다. 폴빅은 스무 살 무렵에 결혼을 해서, 이후 10년에 걸쳐 4명의 자녀를 출산했다. 자녀들이 태어나서 모두 짧게는 한 달도 안 되어, 길게는 1년을 겨우 생존하고 갑자기 사망했다.

결혼 생활은 유지되지 못하고, 폴빅은 호주 최악의 연쇄살인범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법원은 4명의 아이들이 연달아 우연히 사망할 수 없으니 고의적인 살해라고 보고 유죄를 선고했다. 폴빅은 평소에 일기를 썼는데, 죄책감과 분노로 점철된 기록은 그의 냉혹함을 보여주는 증거로 작용했다.

폴빅의 가정 환경도 그의 악명을 높이는 데에 한 몫을 했다. 친아버지가 친어머니를 살해하여 가정이 파괴된 가족력이 있으며, 폴빅은 입양 가정에서 성장했다.

폴빅은 아이들을 살해하지 않았다고 일관되게 주장해 왔다. 결국 변호사와 의사, 과학자들이 팀을 이루어 유전자를 분석해서 아이들이 유전적 결함을 가지고 태어났으며 이 때문에 자연사했다는 과학적인 증거를 제시함으로써, 폴빅이 무죄라는 판결을 20년 만에 끌어내었다.

두 명의 아이는 심근의 수축을 조절하는 유전자에 변이가 있어서 급성 심근경색으로 사망했고, 두 명의 아이는 또 다른 유전자 결함으로 인한 간질 발작이 사망의 원인이었다고 보고 있다. 아이들은 어머니와 아버지에게서 각각 유전자를 물려 받아 한 쌍의 유전자를 가진다.

결함이 있는 유전자들은 부계와 모계의 유전자에서 각각 기인한다고 보아야 한다. 산후우울증에 대한 사회적 편견이 한 여성의 인생에 파괴적으로 작용했음을 보여 준 사건이다. 단지 정황만을 보고 다른 원인을 파악하지 않은 채, 어머니를 아이들의 살해범으로 규정한 배경에 산후우울증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깔려 있다. 

산후우울증이 산모와 아기의 건강과 삶에 단기적으로나 장기적으로 어떻게 영향을 미치느냐는 충분히 짐작이 가능해서 구구절절 거론할 필요도 없다.

사진. 게티이미지
사진. 게티이미지

산후우울증의 약물 치료를 위해 일반적인 우울증에 사용하는 항우울제를 투여한다. 설트랄린(상표명: 졸로푸트)이 산후우울증 환자에 대하여 수행한 소규모 임상시험의 데이터를 가지고 있고, 수유를 해도 아기에게 영향이 적다고 알려져서 흔히 사용된다.

시탈로프람(상표명: 셀렉사), 에스시탈로프람, 플루옥세틴(상표명: 프로작), 파록세틴(상표명: 팍실) 등도 같은 계열의 약물들이다. 이들은 모두 신경전달물질 세로토닌을 증가시키는 약물들이다. 우울증과 불안을 해소하는 목적으로 투여하는데, 산후우울증약으로 따로 허가를 받지는 않았다. 

세로토닌을 조절하는 약물이 부작용이 적어서 가장 많이 사용되지만 모든 환자가 이들 약물에 반응하지는 않는다. 그럴 때에는 다른 종류의 우울증 약물이 사용된다.

벤라팍신(상표명: 이펙사)은 세로토닌과 노르에피네프린을 모두 증가시키는 약물이다. 벤라팍신을 사용하여 산후우울증에 대해서 수행한 소규모 임상시험의 데이터가 있다. 그 외에도 도파민을 증가시키는 약물, 노르에피네프린을 증가시키는 약물들이 사용된다.

이들 우울증 약물은 투여 후에 즉시 효과를 나타내지 않고 3-4주 계속 복용을 해야 효과를 나타내기 시작한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우울증 약물 개발에서의 맹점이다.

세로토닌을 증가시키든 노르에피네프린이나 도파민을 증가시키든, 약물이 체내에 들어가서 1차적인 타겟에 작용하는 시간은 오래 걸리지 않는다.

그런데 왜 3-4주가 지나서야 항우울이나 항불안의 효과가 나타날까? 약물이 1 차적인 타겟에 작용해서 나타나는 결과가 직접 우울증을 완화하는 효과를 도출하지 않기 때문이다.

약물이 장시간 신경전달을 지속적으로 자극하면 신경의 연결망에 영향을 주고, 이로 인한 2차적인 변화를 통해 항우울 효과가 나타난다. 우울증 약물을 지속적으로 투여 받는 동안 뇌신경계에서 구체적으로 무엇이 어떻게 변하여 우울증과 불안증이 해소되는가?

환자의 입장에서는 약물이 항우울 효과를 나타내는 계기가 되는 2차적인 타겟을 직접 자극해서 빠르게 효과를 보이기를, 그래서 약물을 투여 받으면 즉시 우울증이 완화되기를 바란다.

산후우울증 신약인 브렉사놀론과 주라놀론은 기존의 우울증 약물과 다른 방식으로 작용한다. 임신과 출산의 기간 동안 체내에서 여러 가지 호르몬의 양이 변한다. 특히 에스트로겐이나 프로게스테론 등의 호르몬 양은 임신 중에 높아져 있다가, 출산과 동시에 급강하하여 임신 전의 상태로 회복된다.

호르몬의 영향을 받는 생리 작용들은 호르몬의 급변에 대하여 빨리 적응을 하지 못한다. 호르몬의 급변으로 유발된 뇌신경계의 불균형이 산후우울증을 촉발한다고 보고 있다. 프로게스테론의 대사물인 알로프레그놀론도 임신과 출산에 따라 급변하는 호르몬들 중의 하나이다. 특히 임신 말기에 감소하기 시작하여 출산과 동시에 급감하는데, 산후우울증이 발병하기 쉬운 시기와 일치한다. 

알로프레그놀론을 합성해서 약물로 개발한 것이 브렉사놀론과 주라놀론이다. 이들은 스테로이드 호르몬제로서, 신경전달물질 가바를 인지하는 수용체와 직접 반응하여 신경계의 균형을 잡아주고 신경 회로에 영향을 주어 작용한다.

브렉사놀론을 경구 투여하면 체내로 거의 흡수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약물이 체내에서 대사되어 배출되는 시간도 짧다. 약물을 60시간 동안 지속적으로 정맥 주사를 통해 주입해야 한다. 주라놀론은 브렉사놀론의 화학 구조를 변형하여 경구 투여해도 흡수가 용이하도록 만든 약물이다. 체내에서 약물이 지속하는 시간도 브렉사놀론에 비해서 2-3배 길도록 개선되었다. 하루에 한 번, 두 주일 동안 복용한다. 

브렉사놀론과 주라놀론이 체내에 들어가면 즉시 항불안과 항우울 효과를 나타내고, 약물 투여를 멈춘 후에도 효과가 안정적으로 지속된다. 기존의 우울증 약물들이 수 주일 동안 계속 투여해야 비로소 효과를 나타내는 것과 다르다.

요즘 나오는 신약의 대부분이 그러하듯이 고가의 약이기 때문에 아직까지 대중적으로 사용되지는 못한다. 임상시험 외에는 투여한 예가 많지 않아서 산모에게 미치는 장기적인 영향이나 수유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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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후우울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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