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성은아 박사
사진. 성은아 박사

한국 갤럽의 2019년 조사에서 우리나라의 성인 10명 중의 두 명이 탈모로 고민하며, 그들 중의 절반은 자신의 탈모가 심각한 수준이라고 대답했다. 인구 대비 확대 해석하여 1천만 탈모인이라는 말까지 나온다. 의학적으로 근거있는 통계치가 아니더라도, 탈모로 고민하는 사람이 많음은 분명하다.

탈모를 치료하는 약이나 방법은 많지 않다. 탈모 치료제로서 미녹시딜과 피나스테리드(프로페시아), 두타스테리드가 있다. 이들은 모두 남성형 탈모제로 개발되었다.

최근 두 종의 약물 올루미언트와 리트풀로가 미국 FDA의 허가를 받아서 탈모약으로 추가되었다. 이들은 기존의 치료제가 나온 지 거의 25년 만에 나온 약물들이며, 최초의 원형 탈모 치료제이기도 하다. 

원형 탈모가 시작되는 계기는 보통 분명하지 않다. 유전적 요인과 환경적 요인이 작용하고 스트레스가 탈모의 원인이라고 하지만, 사실 왜 탈모가 되는지 모르는 경우가 많다. 젊은 사람이나 건강한 사람에서도 원형 탈모가 생긴다.

원형 탈모에 대하여 염증을 가라 앉히도록 스테로이드 호르몬을 투여한다. 미녹시딜을 사용하기도 한다.

미녹시딜을 개발할 때에 임상시험을 남성형 탈모와 원형 탈모 각각에 대해서 수행했는데, 원형 탈모에 대해서 효과가 크지 않아서 남성형 탈모에 대해서만 허가를 받았다. 그래도 원형 탈모의 증상이 가벼운 경우 효과를 나타내기 때문에 미녹시딜이 확대 적용된다. 

원형 탈모는 모낭에서 과도한 면역 반응이 일어나서 생긴다. 원형 탈모를 일종의 자가면역 질환이라고 인지하면서, 치료제 개발에 전환이 이루어졌다.

그 결과로 일라이릴리의 바리시티닙(상표명: 올루미언트)이 2022년에, 화이자의 리틀레시티닙(상표명: 리트풀로)이 2023년에 탈모 치료제로 허가를 받았다. 두 약물은 작용 방식이 유사하다. 일종의 면역 억제제이다.

면역 시스템은 우리의 몸을 보호하기 위해서 이물질이나 정상적이지 않은 물질을 제거한다. 때로는 면역 시스템이 신체의 일부에 대해서 과잉 반응을 하여 문제를 야기한다.

면역 시스템이 피부를 공격하면 아토피성 피부염이나 건선, 백반증 등의 피부 질환을 일으키고, 소화기관을 공격하면 염증성 장질환이나 궤양, 크론병을 일으킨다. 루푸스, 척추염과 류마티스성 관절염도 자가면역 질환들이다.

원형 탈모는 면역 시스템이 모낭을 공격해서 일어난다. 전혀 다른 종류의 질환들로 보이지만 발병의 과정이 유사하다. 유전자 분석 기술을 이용해서 분석했더니, 이들 질병의 발병과 관련된 유전자들 간에 공통 분모가 많았다. 그러다 보니, 원형 탈모 치료를 위해서 자가면역 질환에 사용되는 약물에 눈을 돌리게 되었다.

류머티즘 약물로 원형 탈모를 치료한 사례가 있다. 피부병을 앓는 청년이 예일 대학교 병원에 왔다. 별다른 건강상의 문제나 가족력이 없는데도 건선과 탈모가 심했다. 전신 여기저기에 건선이 있었고, 어릴 때부터 시작되어 퍼진 탈모 때문에 두발은 물론 눈썹도 없었다.

의사는 그에게 이제 막(2012년) 류머티스성 관절염 약으로 나온 토파시티닙(상표명: 젤잔즈)을 투여했다. 1년이 안 되어 건선이 개선되었고, 눈썹도 나왔으며, 피부병의 반흔으로 뒤덥여 있던 머리가 풍성한 금발로 채워졌다.

토파시티닙은 류머티스성 관절염 외에도 강직성 척추염, 건선, 염증성 궤양 등 자가면역 질환에 사용되는 약물이며, 원형 탈모에 대하여 임상시험이 진행되고 있다.

항암제인 룩소리티닙(상표명: 자카비)도 원형 탈모에 사용하도록 임상시험 중이다. 이 약물도 면역 억제제로서 골수암에 사용하도록 허가를 받았으며, 장기 이식 후 면역 억제제로도 사용하고, 아토피성 피부염과 백반증에도 사용한다. 

토파시티닙과 룩소리티닙은 모두 야누스 키나제 억제제 화합물들이다. 키나제는 세포에서 일어나는 갖가지 기능에 대해서 활성을 조절하는 단백질이다.

우리 몸에는 대략 500종류의 키나제가 있으며, 야누스 키나제는 그들 중의 한 종류이다. 야누스라는 이름은 신화에 나오는 두 얼굴을 가진 신에서 나왔으며, 이중적인 성격을 말할 때 흔히 인용된다.

누군가가 작명에 신경을 썼지만, 여기에서 이름이 가지는 의미는 특별할 것이 없다. 야누스 키나제가 약물 개발의 타겟으로 부상한 이유는 이들이 주로 면역 세포에서 작용하기 때문이다.

체내에서 염증이 일어나면 각종 사이토카인이 증가하고 이에 대해 면역 세포들이 반응한다. 면역 세포에 있는 야누스 키나제는 세포가 사이토카인에 대해서 반응하도록 하는 매개자의 역할을 한다.

야누스 키나제를 억제하면 면역 세포가 사이토카인에 반응하지 못하니, 과도한 염증 반응이 억제되고, 주로 항암제나 자가면역 질환에 사용하도록 개발되었다. 

토파시티닙과 룩소리티닙은 최초로 개발된 야누스 키나제 억제제들이며, 원형 탈모에 적용하기 위한 임상시험도 일찌감치 시작되었다. 하지만 정작 탈모 치료제로 허가를 받은 것은 후발 주자인 올루미언트이다. 2022년에 최초의 원형 탈모 치료제로 허가를 받았다.

탈모제로 허가를 받기 전에 이미 이 약물은 류머티스성 관절염 약으로 사용되고 있었고, 코로나 바이러스 팬데믹 동안에는 감염증으로 입원한 중증의 환자들에게 사이토카인 폭풍을 억제하도록 사용되었으며, 아토피성 피부염에도 허가를 받았다.

올해(2023년)에 허가를 받은 리트풀로는 두 번째로 나온 원형 탈모 치료제이다. 리트풀로는 야누스 키나제 억제제 중에서도 특이성이 높고 작용 스펙트럼이 적다. 다른 장기나 조직에 작용하는 기회를 줄여서 부작용을 낮추도록 개발한 약물이다. 백반증에도 사용하기 위해 허가 절차가 진행 중이다.

약물로 해결되지 않는 탈모에 대해 적용하는 치료들이 있다. 원형 탈모에 국한되지 않고 남성형 탈모에도 사용된다. 모발 이식은 약물보다 오래된 치료법이다. 환자의 두피에서 탈모가 진행되지 않은 부분을 탈모 부분에 옮겨 이식한다. 엄밀하게 말하면 모발 이식이 아니라 모낭 이식이다.

자가혈소판풍부 혈장 치료술(PRP, platelet-rich plasma injection), 또는 줄여서 자가혈 주사가 있다. 이름 그대로 자신의 피를 뽑아서 엉긴 부분을 가라 앉히고 맑은 부분을 탈모 부위에 주사한다. 치료의 기전은 구체적으로 알려져 있지 않으나 혈액 중에 풍부한 호르몬이나 기타 좋은 인자들의 도움을 받고자 하는 것이다. 정형외과 치료에 사용되다가, 탈모 치료로 영역이 확대되었다. 

이들 치료 방식에 공통점이 있다. 환자의 두피에 있는 모낭은 탈모가 되어도 머리털을 자라게 하는 잠재력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을 이용한 치료법들이다.

모낭에는 줄기세포가 있어서, 일생을 통해서 모낭에서 모발이 자라고 빠지는 과정이 반복된다. 한참 모발이 자라는 모낭도 있고, 휴식 상태에 있는 모낭도 있다. 휴식 상태에 있는 모낭에도 줄기세포는 여전히 있어서, 적절한 시기나 환경이 되면 다시 모발이 자라날 수 있다.

균형이 깨져서 성장기보다 휴지기에 있는 모낭이 많으면 탈모 상태가 된다. 휴지기에 있는 모낭을 깨우는 방법을 알면, 탈모 치료에 크게 도움이 될 것이다. 그래서 모낭의 줄기세포를 깨우는 방법과 약물 개발에 대한 연구가 많지만, 아직 구체적인 치료 방법으로 나온 것은 없다.

줄기세포를 이용한 탈모 치료도 개발 중이다. 줄기세포는 다른 종류의 세포로 성질이 바뀔 수 있는 세포를 말한다. 성인의 신체에서 골수나 지방 조직, 모낭 등에 줄기세포가 제한적으로 존재한다.

줄기세포를 탈모 부위에 주사하거나, 줄기세포가 분비하는 성장인자들이 들어 있는 배양물을 주사하는 치료들이다. 줄기세포 치료는 개발의 잠재력이 많은 영역이지만 현 시점에서 사용하기에는 아직 검증되거나 규격화되어 있지 않아서 효과나 안전성의 면에서 불확실성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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